버진 고다 (Virgin Gorda)

The Fat Virgin

by LHS





콜럼버스는 카리브해의 많은 섬을 돌아 다니면서, 이런 저런 흔적을 남겼다. 그리고 이 아름다운 섬에는… 이름 ‘테러’를 하고 간 모양이다. 배가 이 섬에 접근할 때 보이는 섬의 모습이, (그냥 처녀도 아니고) 마치 뚱뚱한 처녀가 옆으로 누운 모습과 같다 하여 The Fat Virgin이라고 이름 붙였다 한다. 그래서 이 섬에 뜬금 없이 ‘gorda’ (스페인어로 ‘뚱뚱한 여인’이란 뜻) 라는 단어가 붙게 된 것.


하지만 이름 ‘테러’ 정도에 눌릴 아름다움이 아니다. 섬을 한번이라도 돌아보고 이름을 붙였다면 아마도 이 섬에 ‘환상의 섬’ 정도 이름을 붙이게 되지 않았을까. 그런데 사실 ‘환상’ 정도의 단어로도 이 섬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표현하기는 어려울 듯 싶다. 백문이 불여일견. 직접 보고 판단하는 수밖에.





버진 고다 섬 남쪽에는 자연이 놀다 간 흔적이 널려 있다. ‘The Baths’라 불리는 지역이 바로 그것인데, 거인들이 거대한 화강암 바위로 구슬치기라도 했던 것처럼 거대한 화강암 바위가 이곳 저곳에 막 널려 있다. 그래서 길을 가다가도 갑자기 이곳 저곳에 놓여 있는 거대한 기암 괴석이 눈에 들어오고, 해변에도 각종 기암 괴석이 이곳 저곳에 자연 수영장을 만들어 두었다.


그러니 지루할 새가 없다. 해변에도 기암 괴석이 포인트를 주니 그동안 보던 해변들과 전혀 다른 느낌이 들고, 또 이 바위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면 숨겨진 자연 수영장에 드나들 수도 있다 (물론 위험한 곳에는 비집고 들어가지 말아야 하겠다).


그런데 일단, 이것저것 다 떠나서, 엄청나게 아름답다. 이 세상 풍경이 아니다.





이 아름다움에 취해 The Baths를 구경하면 할수록 경외감과 함께 궁금증이 도진다. 아니 진짜, 자연은 대체 어떻게 이러한 풍경을 만들어 냈을까. 실은 자연의 분노로 이 섬 근처에 거대한 화산이라도 있어, 이 화산에서 거대한 용암 덩어리들을 이 섬에 던져 댄 것이 아닐까. 실은 과거의 지옥이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오늘날의 천국이 된 것은 아닐까.


이런 저런 상상을 하며 걷다 보니 어느새 해변을 지나 바위 틈을 탐험하게 된다. 밧줄 등이 잘 설치되어 있어 별 어려움 없이 넘을 수 있는데, 바위를 한번씩 넘어갈 때마다 숨겨져 있는 다음 비밀 공간에 도달하게 된다. 여전히 이 세상 풍경은 아님이 확실하다.





이젠 답을 낼 시간. 사실 The Baths는 자연의 분노로 형성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오랜 시간 자연의 인고가 만들어낸 걸작이다. 먼 옛날 이 섬이 화산 활동으로 형성된 이래, 이 섬 지하에 잠자고 있던 화강암들이 (화강암은 마그마가 지하에서 천천히 식어 굳어져야 형성되기 때문) 오랜 침식 활동을 통해 드디어 지상에 노출된 것. 이후 파도와 비바람이 화강암의 약한 부분부터 조금씩 긁어냈고, 그 결과 남은 화강암이 거대한 기암 괴석이 된 것이다. 그러니 이 화강암 기암 괴석이 동글동글한 모양을 하고 있는 것은 순전히 긴 세월 동안 침식 작용의 결과인 셈.


이 걸작을 선사한 자연에 경외와 감사의 마음으로 계속 걷다 보면 Devil’s Bay까지 마저 지나 다시 출발했던 곳으로 나오게 된다. 입장료가 아깝네 마네를 따질 것이 아니라, 이곳에 와볼 수 있음에 감사해야 함을 깨달으면서.





The Baths의 감동을 뒤로 하고 차를 몰아 섬 북쪽으로 이동한다. The Baths까지 이미 봐 버렸으니 이제 더 이상 이를 뛰어넘는 감동은 없겠다는 성급한 결론과 함께. 그리고 이 생각은 불과 20여 분만에 깨지게 되었다.


별로 크지도 않은 섬이기에 20분 정도만 달리면 섬 북쪽에 도달할 수 있고 (Bitter End나 Oil Nut Bay도 버진 고다 섬의 일부이지만, 도로가 연결되어 있지 않아 이 쪽에 가보려면 배를 타야 한다), 이 외딴 산등성이에 Hog Heaven이라는 식당/바가 하나 있다. 그런데 지나면서 언뜻 보이는 전망이 장난이 아니다. 왠지 오늘 저녁은 여기여야만 할 것 같았다.


그때부터 3시간은 있었던 듯하다. 거센 바람이 쉴 새 없이 몰아치는 황량함이 있지만 그 바람이 시원해 청량했고, 바다와 하늘이 쉴 새 없이 만들어내는 라이브 쇼에 도저히 떠날 수가 없었기 때문. 그 클라이막스로 석양이 구름과 함께 만들어 내는 석양 쇼는 도저히 눈을 뗄 수가 없는 장관이었다. 거기에 즉석에서 구워 주는 바비큐와 칵테일까지 있으니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었다.





그렇다고 버진 고다 섬의 다른 부분이 아름답지 않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섬 곳곳에 수준급 아름다움이 존재하는데, 단지 워낙 유명한 곳이 있다 보니 눈에 덜 들어오는 것일 뿐. 이는 사실 대부분 카리브해 섬에서 공통적으로 발견하게 되는 현상이다. 유명 관광지를 가보고 대만족하는 것은 물론이지만, 사람도 별로 없는 한적한 해변이나 마을에서 의외의 행복감을 느낄 때도 많다.


그래서 카리브해 여행은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섬, 그리고 그 섬에서도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스팟을 찾아 나서는 여정이 되어야 한다.





버진 고다 여행 계획 중에 이 섬에도 공항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포장도 되어 있지 않은 조그마한 활주로 그리고 창고 같은 ‘터미널’이 전부이지만, 이 섬에 평지가 거의 없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 정도라도 크게 감사할 일. 하지만 정작 항공편이 없어 항공 대신 페리를 이용해야만 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끝났으니, 항공편도 언젠간 다시 늘어나리라.


아울러, 지금은 폐허에 불과하지만, 과거 이 섬에는 동광이 있어 채굴 작업이 이루어졌던 모양이다. 하지만 경제성 부족으로 19세기 중반 폐쇄된 이래 이 지역은 염소들만 한가하게 풀을 뜯는 곳이 되었다.





꼭 해봐야 할 일: The Baths 제대로 탐방하기 (탐험로도 걷고, 해수욕도 즐기고, 절경 앞에 멍도 때리고), Hog Heaven에서 석양 즐기기, 청정 바다에서 다양한 수상 스포츠 즐기기.

날씨/방문 최적기: 겨울 기준 매일 20~30도로 따뜻하며, 여름에도 25~32도로 크게 더워지지 않음. 7월~11월 우기 및 12~1월 성수기 제외 시, 2~6월이 방문 최적기.

위치: 카리브해 북부 소앤틸리스 제도 (Lesser Antilles) 및 리워드 제도 (Leeward Islands) 에 속하며, 토르톨라 섬 동쪽 약 10km에 위치.

시간대: 대서양 표준시 (한국보다 13시간 느림). DST (서머타임) 제도 없음.

항공편: 토르톨라 섬 Road Town과 Beef Island (공항에서 도보 10분 거리) 에서 1~2시간마다 버진 고다행 페리 운행 (탑승 시간은 30분 선). 토르톨라 공항 (EIS) 까지는 산후안 (SJU), 세인트 토머스 (STT), 산토 도밍고 (SDQ), 신트 마르턴 (SXM), 안티가 (ANU) 등지에서 각각 하루 1~6편 정도 직항편 운항 (비행 시간은 0.5~1.5시간 선). 그리고 이들 공항까지는 뉴욕, 애틀랜타, 댈러스, 워싱턴, 보스턴, 시카고, 디트로이트 등 한국발 주요 행선지에서 직항편 이용이 가능 (비행 시간은 2~5시간 남짓)*.

입국 요건: 영국령 버진 제도는 (당연히) 영국령이며, 대한민국 국민은 무비자 입국 가능 (최장 30일이라 하나, 항공권/숙박 등 여행 계획에 맞게 체류 기간 부여하니 유의).

화폐 및 여행 경비: 공식 화폐로 미 달러를 채택하고 있어 별도 환전 불필요하며, 대부분 매장에서 신용카드 사용 가능 (택시 등 제외). ATM이 하나밖에 없으니 (Spanish Town의 Scotiabank ATM) 충분한 현금 소지 권장.

언어: 영어가 공용어로 영어 의사 소통 문제 없으나, 현지인 간에는 Creole (현지어) 종종 사용.

교통: 생각보다 섬이 작지 않고 (섬 종단 거리 12km 정도) 언덕이 많아, 근거리 이동 외 택시나 렌터카 이용 필수. 택시 요금은 거리에 따라 다르며, 페리 터미널 기준 The Baths, Mahoe Bay는 5~10달러 선, Gun Creek는 ~30달러 선. 렌터카는 하루 60~100달러 선이나, 영국령인 관계로 좌측 통행이며 도로가 험해 운전에 자신 없는 경우 택시를 추천. 아울러 Bitter End와 Oil Nut Bay 지역은 도로 미연결로 배로 이동해야 하니 참고. 자세한 정보는 영국령 버진 제도 관관청으로 (https://www.bvitourism.com/search/results?cf%5B%5D=7&cf%5B%5D=61).

숙박: 숙박 시설이 다수 존재하며, 대부분 Spanish Town과 Mahoe Bay 지역에 위치. 대부분 일 150~300달러 선이나, Rosewood Little Dix Bay 등 고급 호텔은 그보다 비쌀 수 있어 (일 1,000달러 이상) 예산 등 고려한 선택 필요. 빌라 렌트도 가능. 자세한 정보는 영국령 버진 제도 관광청으로 (https://www.bvitourism.com/search/results?cf%5B%5D=7&cf%5B%5D=2).

식당/바: 대부분 Spanish Town 지역에 위치. Hog Heaven (바비큐), CocoMaya, Chez Bamboo, Top of the Baths (캐리비언) 등을 추천. 자세한 정보는 영국령 버진 제도 관광청으로 (https://www.bvitourism.com/search/results?cf%5B%5D=7&cf%5B%5D=16).

전압/콘센트: 110V/60Hz에 플러그 타입 A/B 사용 (즉, 미국과 동일). 따라서 대부분 한국 전자기기의 경우 여행용 어댑터 필요.

국제전화 국가 번호: +1-284.

주요 연락처: 긴급전화 (경찰 311, 의료 911), 영국령 버진 제도 관광청 (+1-284-852-6020), 주영국 대한민국 대사관 (+44-20-7227-5500), 주도미니카공화국 대한민국 대사관 (+1-809-482-6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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