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독일을 무서워하면 섬을 삽니다
카리브해의 ‘전통적’ 식민 세력은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그리고 스페인이었다. 여기에 덴마크와 스웨덴까지 한때 식민지를 확보하는 등 카리브해에서는 수 세기 동안 열강의 각축전이 벌어졌다.
그런데 19세기 들어 미국도 본격적으로 카리브해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어찌 보면 미국 바로 앞인데 미국이 안 나타나는 것이 더 이상할지도). 결국 미국-스페인 전쟁에서 미국이 승리하면서, 1898년 파리 조약*을 통해 미국은 스페인으로부터 쿠바와 푸에르토 리코를 넘겨받게 된다**. 아울러 덴마크령 서인도 제도의 매입도 논의 되었으나 덴마크 상원 인준 부결로 무산되고 만다.
하지만 1차 세계대전이 벌어지면서 상황이 바뀌게 된다. 당시 덴마크령 서인도 제도를 독일이 점령한 후 미국 코앞에 잠수함 기지를 세울 것을 우려한 미국이, 경제성을 상실한 식민지에 대한 지속적 관리 부담을 덜어내고 싶었던 덴마크를 설득해 매매 계약을 성사시킨 것이다. 결국 1917년 덴마크령 서인도 제도는 미국령 버진 제도가 되었다.
이렇듯 복잡한 역사를 갖고 있는 미국령 버진 제도이다 보니, 공항에 내리는 순간부터 무언가 미국령이긴 한데 미국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이 감싼다. 분명 미국 국기가 휘날리고 있지만 차는 좌측 통행을 하고 (미국 및 미국령 중 유일한 좌측 통행 지역), 경찰관은 전형적인 미국 경찰관의 모습이지만 동네 술집에서는 술 한 두 잔은 괜찮다며 술을 권한다 (그래도 음주 운전은 절대 하면 안 되겠다). 뿐만 아니라 분명 맥도날드에 웬디스까지 성업 중인데 뒷골목에는 수백 년의 (덴마크 식민) 역사가 흐른다.
공항에 내려 차를 빌렸다. 미국령이지만 난데 없는 좌측 통행 (과거 당나귀가 수레를 끌던 시절 좌측 통행이 정착되었고, 이후 미국령이 된 후 우측 통행으로 바꿔보려 했지만 사람들의 반대로 실패, 좌측 통행을 유지하고 있다) 에 조심 운전을 다짐하면서 길을 나섰다.
하지만 이 다짐도 무색하게, 채 5분도 되지 않아 아름다운 해변에 정신이 팔리고 말았다. 공항 바로 옆인데도 한없이 아름다운 바다색. 배가 고파 찾아갈 식당까지 정해 두었지만 더 이상 한눈 팔지 않기 위해서는 일단 멈추는 수밖에. 이렇게 시작된 ‘5분만 보고 가자’는 결국 Brewers Bay Beach와 인근 전망대까지 합쳐 한 시간이 넘어 버리고 말았다. 그사이 식당도 이미 점심 장사를 끝냈지만 아무렴 어떤가. 입으로 할 식사를 눈으로 대신 한, 호강한 기분이니.
카리브해에서 부족할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아름다운 해변일 것이다. 돌아다니면 다닐수록 ‘이 정도면 인생 해변’이라 생각했던 과거의 자신을 반성하게 되는 곳이니. 그러니 굳이 입장료를 받는 해변이 있다면 지상 최고의 해변은 아닐지라도 정말 훌륭한 해변일 터.
Magens Bay가 그랬다. 해적 소굴로 쓰이면 딱일 것 같은 깊은 만 안쪽에 (실제로 Sir Francis Drake가 여기를 근거지로 삼고 인근 항해선 중 약탈 대상을 물색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평화로운 비치가 형성되어 있고, 바다에는 요트가 둥둥 떠있는 그림 같은 풍경. 해변 매점에서 즐기는 맛있는 피자와 핫도그 (누가 미국령 아니랄까봐) 는 덤.
Charlotte Amalie는 딱 봐도 천혜의 항구이다. 항구 자체도 수심이 얕지 않은 데다, 항구 바로 앞을 Hassel Island와 Water Island가 지키고 있어 천연 방파제 역할을 한다. 게다가 도시 뒤를 가파른 언덕이 둘러싸고 있어 방어에도 유리했을 터.
그리고 오늘날 관광객 입장에서는, 이렇듯 도시 뒤에 가파른 언덕이 있다는 것은 끝내주는 경치를 선사할 전망대가 있다는 의미. 제법 번화한 도시 앞으로 섬이 막아주어 포근한 항구의 느낌이 연출되며, 다시 그 뒤로는 끝없는 바다와 하늘이 펼쳐져 넋 놓고 볼 수밖에 없게 만든다.
Charlotte Amalie가 본격적으로 건설된 것은 17세기 후반 덴마크에 의해서였다. 원래는 taphouse가 많아 Taphus (덴마크어로 taphouse를 의미) 로 명명되었으나, 당시 덴마크 국왕 Christian 5세의 부인이었던 Charlotte Amalie 왕비의 이름으로 개명하게 된 것.
이러한 역사를 반영하듯, 이 도시에는 생각보다 덴마크 식민 시절의 풍경이 많이 남아 있다. 도시 한가운데 위치한 Fort Christian부터 Dronningens Gade의 오래된 건물들까지, 한가롭게 산책하다 보면 이러한 이국적 요소들이 여느 미국 도시들과는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미국령 버진 제도로 향하기 전 가장 걱정했던 것 중 하나가 바로 음식. 미국령이다 보니 ‘혹시 식당에서 죄다 패스트 푸드만 팔면 어쩌지’ 생각에 살짝 걱정이 되었더랬다.
그러나 이는 기우. 아메리칸이나 패스트 푸드 외에도 다양한 식당들이 섬 이곳 저곳에 위치하고 있어 즐거운 식도락 생활이 가능하다. 확실히 여느 미국 도시를 여행하는 것과는 다른 느낌이다.
꼭 해봐야 할 일: Brewers Bay나 Magens Bay에서 해수욕 즐기기, Drake’s Seat에서 Charlotte Amalie 전망 즐기기, Charlotte Amalie 거리 탐방하기, 바다거북과 스노클링 해보기.
날씨/방문 최적기: 겨울 기준 매일 20~30도로 따뜻하며, 여름에는 25~33도로 다소 더움. 7월~11월 우기 및 12~1월 성수기 제외 시, 2~6월이 방문 최적기.
위치: 카리브해 북부 소앤틸리스 제도 (Lesser Antilles) 및 리워드 제도 (Leeward Islands) 에 속하며, 푸에르토 리코 (Puerto Rico) 섬 동쪽 약 60km에 위치.
시간대: 대서양 표준시 (한국보다 13시간 느림). DST (서머타임) 제도 없음.
항공편: 뉴욕, 애틀랜타, 워싱턴, 시카고 등 한국발 주요 행선지에서 세인트 토머스 공항 (STT) 까지 직항편 이용 가능 (비행 시간은 미국 본토 내 출발지 따라 상이하며, 통상 3.5~5시간 선).
입국 요건: 미국령 버진 제도가 미국령인 까닭에 미국 입국 규정이 동일하게 적용되어, 대한민국 국민은 미국령 버진 제도도 무비자 입국 가능 (최장 90일)*.
화폐 및 여행 경비: 공식 화폐로 미 달러를 채택하고 있어 별도 환전 불필요하며, 대부분 매장에서 신용카드 사용 가능 (택시 등 제외). Charlotte Amalie 지역에는 ATM 다수 존재.
언어: 미국령인 관계로 영어가 공용어. 따라서 영어 의사 소통에 문제 없으나, 현지인 간에는 Creole (현지어) 또는 스페인어도 종종 사용.
교통: 섬이 크지는 않으나 (동서 도로 종단 시 30km 선) 산이 많아 근거리 이동 외 차량 이용 필수. 택시 요금은 공항 기준 Charlotte Amalie 지역은 ~15달러 선, Magens Bay 지역은 ~20달러 선, Red Hook 지역은 ~25달러 선이나, 1인 기준 요금으로 추가 인원 당 추가 요금 붙으므로 주의. 렌터카는 하루 50~70달러 선이나, 좌측 통행이며 도로가 험해 운전에 자신 없는 경우 택시를 추천.
숙박: 섬 전역에 다수의 호텔이 있으며, 일부 고급 호텔 (일 600~1,000달러 선) 제외 대부분은 일 150~300달러 선으로 합리적인 편. 단, 호텔에 따라 외딴 곳에 위치하거나 시설이 낡았을 수 있으니 반드시 리뷰 등 확인 후 예약할 것. 빌라 렌트도 가능. 자세한 정보는 미국령 버진 제도 관광청으로 (https://www.visitusvi.com/places-to-stay).
식당/바: 대부분의 식당은 Charlotte Amalie 지역에 위치하며, 다양한 식당이 존재하여 즐거운 식도락 생활 가능. Oceana (캐리비언), French Quarter Bistro (프렌치), Stone House Café (아메리칸), Amalie Café (해산물), Prime at Paradise Point (스테이크), Blue 11 (파인 다이닝) 등을 추천. 자세한 정보는 미국령 버진 제도 관광청으로 (https://www.visitusvi.com/food-drink).
전압/콘센트: 110V/60Hz에 플러그 타입 A/B 사용 (즉, 미국과 동일). 따라서 대부분 한국 전자기기의 경우 여행용 어댑터 필요.
국제전화 국가 번호: +1-340.
주요 연락처: 긴급전화 (경찰/의료 911), 미국령 버진 제도 관광청 (+1-340-774-8784), 주애틀랜타 대한민국 대사관 (+1-404-522-16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