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생각해도 바하마는 참 아름다운 곳이지만, 바하마의 항공 교통은 상태가 그다지 좋다고 말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지연은 예사이고, 알 수 없는 이유로 취소되기도 한다. 최근 (2025년 8월) 영국의 한 유튜버가 하루만에 바하마의 주요 항공사 항공편을 모두 타보려 했다가 한 항공사의 지연 때문에 실패한 것을 보면, 그나마도 몇 년 새 나아진 것도 없는 듯하다.
그렇다고 카리브해의 항공 교통이 다 상태가 좋지 않은 것도 아니다. 비행기 연식은 대체로 좀 오래되긴 했지만, 그래도 그 구닥다리 비행기로 지연 없이 잘만 다닌다. 실제로 수십 개의 카리브해 섬들을 다니면서도 항공편 이슈로 크게 불편을 겪은 것은 딱 네 번. 그리고 이중 에어 캐나다의 항공편 연결 지연으로 토론토에서 예정에 없던 1박을 하게 된 것을 제외하면 (항공사 사정으로 이렇게 되었음에도 결국 세 시간을 기다려 호텔 바우처만 겨우 받았고, 대체 항공편은 끝까지 보상 받지 못했다...) 세 번이 모두 바하마에서 일어났다. 지연 1회, 사전 고지 없는 취소 1회, 그리고 가방 파손 1회. 이 정도면, 최소한 경험 범위 내에서는 타 지역 대비 바하마의 항공 교통이 유독 문제가 많았다고 볼 수밖에 없으리라.
엑수마의 경우 이 중 항공편 지연 때문에 문제가 생겼던 케이스. 원래 Bahamasair의 오전 항공편으로 엑수마에 내려가 한가하게 하루종일 섬을 돌아보려 했지만, 여행을 얼마 남겨놓지 않은 시점에서 이 항공편이 늦은 오후로 지연될 예정이라는 문자를 받게 되었다. 뭔가 대안이 없겠냐는 질의를 해보았으나... (예상대로) 보상은 고사하고 성의 있는 답변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 별 수 있나... 외국인 관광객이 감수하고 따라야지...
그래서 엑수마 여행은 난데 없이 '주마등 투어'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 도착해 차를 빌리니 이미 오후 다섯 시가 넘어버린 상황. 해가 지기 직전까지 조금이라도 분위기를 즐기다 호텔에서 좀 쉬고, 다음날 해 뜨자마자 길을 나서 체크인 직전까지 돌아보는 것이 그나마 할 수 있는 최대한. 그래봐야 네 시간 남짓이지만 그래도 그냥 다 포기하고 호텔에서 잠만 자고 다음 섬으로 뜨는 것보다는 낫지 않은가. 그 주마등 투어의 현장을 사진으로나마 남겨본다.
엑수마 공항. 소박한 터미널이지만 쾌청한 하늘과 함께 하면 휴양지 바이브로 돌변한다. 카리브해의 해는 확실히 마법을 부릴줄 아는듯.
엑수마의 정부청사 건물. 바하마는 핑크색을 참 좋아하는 듯하다. 이런 지방 관청 뿐 아니라 수도 나소의 국회 등 핵심 관청들도 대부분 핑크색인 것을 보면.
해질녘까지 짧게나마 드라이브를 즐기다 드디어 호텔에 입성. 18세기 말 이곳에 세워진 플랜테이션이 이 호텔의 기원이라 하니, 꽤나 역사가 깊다.
플랜테이션이 세워진 해를 기념하여 바의 이름도 '1783'인 모양. 그나저나 벽의 엑수마 지도가 꽤나 예쁘다. 바하마 섬들이 대개 그렇지만, 어찌 저리 신기한 모양이 나왔는지...
여튼, 바에서 즐겁게 한 잔 하고 나왔으니, 이제는 식사를 즐길 시간. 운치 있게 야외 풀사이드 좌석을 잡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날이 바로 발렌타인 데이! 어째 식사하는 사람들이 다들 커플이더라니 (가족 단위도 두엇 있기는 했지만)... 여튼 밥이 맛있었으면 됐지 뭐.
하지만 발렌타인 데이임을 알고 나니 내심 외로워졌던 것인지, 발길이 이끄는 대로 바에 한번 더 들른다. 바텐더와 담소를 곁들여 penicillin 한 잔 더. 외로움 치유 완료.
동틀 무렵 일어나 체크아웃. 조식도 못 먹고 가는 것은 아쉽지만, 그래도 엑수마의 풍경을 조금이라도 더 보고 싶으니까.
그런데 막 떠오르는 해가 일찍 나오길 잘했다며 칭찬을 해주는 것이 아닌가. 살짝 무리하는 것 아닌가 싶었던 마음이 녹아내리고, 도로의 끝까지 무작정 달려보기로 한다.
그렇게 Queen's Highway (바하마 많은 섬에서 주 도로의 명칭은 Queen's Highway로 붙여져 있다) 를 타고 남쪽 끝까지 이동하니...
... 진짜 과장 하나 한 보태고, 도로가 갑자기 끝나고 바로 앞에 바다가 넘실거린다. 과장 조금 보태서, 조금만 빨랐다면 바다로 돌진할 뻔. 여튼 이 평온한 풍경을 보라...
'도로의 끝 주마등 투어'를 마치고 후다닥 공항으로 돌아와 먼저 체크인부터 한다. 이렇게 한 시간을 더 벌었으니, 이제는 근처 딱 한 곳만 더 가보도록 하자.
그런데 딱 한 곳만 더 가보기로 마음 먹고 나온 Flamingo Beach가 의외로 예술이다. 새하얀 모래에 하늘색 바다가 아침부터 이리도 밝게 빛나지 않는가.
시간만 더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어 항공사에 대한 원망이 밀려오다가도...
... 그래도 새벽같이 일어나 이렇게라도 즐기고 갈 수 있음에 감사하게 되는 순간이다.
잔잔한 파도의 넘실거림이 마치 아쉬운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듯하다. 그래 언젠가는 또 올 기회가 있을 거야. 그렇겠지?
이제 다시 다음 섬을 향해 넘어갈 시간. 비행기가 제 시간에 기다리고 있어주니 이것만으로도 고맙다 (하지만 이 항공사는 이후 가방을 파손하게 되지만...).
이륙 직후 바다의 모습. 바다 색깔이 이렇게 나올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놀라울 따름. 확실히 관광자원 측면에서는 신이 불공평한 면이 있다.
이륙한 활주로가 보인다. 얇고 긴 섬이 저리도 아름다운 바다 한가운데 둥둥 떠있는 환상적인 장면.
엑수마 북쪽의 Book Cay와 Young Island. 엑수마가 경이로운 것이, 메인 섬도 섬이지만 섬 끝에서부터 150km 정도 이와 같은 작은 섬이 계속 이어진다는 것.
그리고 이들 중 상당수는 고급 관광지로 개발되어 관광객을 끌어들이고 있다. 왼쪽부터 Rudder Cut Cay, Musha Cay, 그리고 Cave Cay.
이 섬들이 보이지 않는다면 슬슬 나소에 도착할 때가 된 것. 이제 다음 섬을 즐기러 가볼까. 짧지만 즐거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