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랜드 바하마 (Grand Bahama)

B cut

by LHS

혹시, 자동차 타이어를 갈아본 적이 있는가. 평생 해볼 기회가 없던 타이어 교체 작업을 그랜드 바하마에서 해보게 되었다 (도대체 이 기구한 (?) 바하마 여행 스토리는 언제까지 이어지는 것인가...).


안 그래도 사전 고지 없는 항공편 취소 때문에 아바코에 하루 더 묶여 있는 바람에, 그랜드 바하마는 당일치기 주마등 투어로 만족해야 하는 상황이 된 판이었다. 그래서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서둘렀지만, 렌터카 업체가 공항 외부에 위치해 있어 (공항 정책인 듯하다) 셔틀을 타고 나가는 데에만 이미 30분은 소요. 그래도 최대한 빨리 차를 빌려 일단 섬의 서쪽 끝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차가 좀 덜덜거리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이상한 기분이 들면서도 '렌터카 상태가 안 좋아 그런가보지' 정도의 안이한 생각으로 계속 달렸는데, 섬의 서쪽 끝 리조트 게이트에서 직원이 앞쪽 우측 타이어가 터진 것 같다고 알려주는 것이 아닌가. 안 그래도 바쁘게 돌아야 하는데 기어코 타이어까지 터져 버리다니... 게다가 타이어를 한 번도 갈아본 적이 없는데. 진짜로 큰일이 나버렸다.


그런데, 사람 마음이 참 신기한 것이, 절망에 절망이 겹치니 오히려 냉정해지는 것 아닌가. 아무리 Hertz라지만 이 나라에서 비상출동 서비스를 요청해도 오는 데에만 1시간 이상은 걸릴 것이니, 스페어 타이어 교체를 한 30분 내로만 막을 수 있다면 일단 어떻게든 렌터카 영업소까지 돌아가 차량 또는 타이어 교체를 요청하는 것이 빠르겠다는 계산이 섰다. 그렇다면... 어디 보자...


일단 트렁크에서 스페어 타이어, 유압잭, 렌치를 꺼내왔다. 일단 휠커버까지는 쉽게 벗겨내고, 다음에는 타이어 고정 볼트를 풀어야 하는데 이게 영 풀리지를 않는다. 하지만 결국 렌치에 올라타 온 몸의 무게를 실어 눌러대니 생각보다 수월하게 풀리는 것 아닌가 (무거운 몸이 도움이 될 때도 다 있군...). 그 다음부터는 점점 속도가 붙었다. 펑크난 타이어를 낑낑 벗겨내고, 스페어 타이어를 그 자리에 그대로 다시 끼우고, 그리고 고정 볼트는 반대 방향으로 온 몸의 무게를 실어 조이고. 마지막으로 휠커버는 그냥 끼우지 않고 (어차피 영업소에 돌아가면 교체해야 할 것이니) 작업 종료. 양손이 기름 범벅이 되었지만 그래도 30분 정도에 끝낸 것이 어딘가. 의기양양해진 마음으로 기름때를 씻어 내고 다시 영업소로 향했다.


영업소에서는 미안해 하면서도 내심 아침에 확인했던 타이어가 한 두 시간만에 갑자기 터지는 것은 좀 이상하다는 생각인 듯했다. 하지만 노면 상태가 항상 좋을 수만은 없는 곳이 카리브해이니, 잠시 갸우뚱거리고 나서는 별다른 문제 제기 없이 순순히 다른 차량으로 바꿔 주었고. 그래도 평생 처음 해본 타이어 교체 작업을 성공적으로 마친 것이 내심 자랑스러웠기에 (그것도 지구 반대편에서!), '비상출동 서비스 요청하려다가 시간 너무 오래 걸릴 것 같아서 그냥 직접 갈고 들어온 것'이라 말하는데... 직원의 답이 예상과는 전혀 달랐다.


'아, 어차피 비상출동 서비스가 없기 때문에, 우리한테 전화했더라도 직접 교체해서 돌아왔어야 했을 거야.'


아니, 온라인으로 예약할 때 분명히 제공되는 것으로 명시되어 있었고, 렌트 시 받아 들었던 계약서에도 비상출동 번호까지 적혀 있었는데. 그런데도 이들은 그냥 자신들의 방식대로 영업을 해오고 있었던 것이었다. Hertz라는 이름을 달고서도 말이다.


정리를 해보면... 원래 계획했던 체류 시간은 24시간. 이 중 사전 고지 없는 항공편 취소로 날아간 시간이 17시간에 렌터카 스페어 타이어 갈고 영업소 돌아가 차량 교체하는데 2시간 더 날아가고 나니 결국 남은 시간은 5시간. 그래서 결국 점심 식사도 포기하고 가능한 범위 내에서 최소한의 주마등 투어로 만족하는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래도 바하마까지 가서 스페어 타이어 교체 실습을 해본 것은 평생 잊지 못할 기억이 되리라.


20210217_083245.jpg 그랜드 바하마 공항. 특이하게도 항공사나 행선지 별로 터미널이 다른데, 꽤나 헷갈리는 경험이었다.


20210217_091312.jpg 카리브해에서 보기 힘든 조선소와 대규모 항구 시설. 금융과 관광을 독차지하는 수도 Nassau에 비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Nassau 다음으로 많은 GDP를 창출하는 섬이다.


20210217_110738.jpg 그랜드 바하마 서쪽 해안으로 나가니 바로 앞에 시추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나중에 보니 별 소득 없이 돌아갔다는 듯.


20210217_102314.jpg 섬의 서쪽 끝 West End (참 정직한 이름...) 에 도착하니 준수한 리조트가 있다. 원래 점심 먹고 가려 했으나... 타이어 펑크 때문에 기껏 와서 타이어만 고치고 출발.


20210217_103955.jpg 바닷가에 아무렇게나 버려져 있는 조개 껍질 무덤. 그런데 이 조개가 conch이다 보니 껍질 무덤도 꽤나 예쁘다.


20210217_133712.jpg Lucayan 국립공원 안내판. 바하마의 국립공원 중 방문객 수 2위에 빛나는 주요 관광지이다. 시간이 별로 없으니 이곳 하나만 들러보는 것은 아쉽지만...


20210217_125706.jpg 주차장에 차를 대고, Gold Rock Beach 쪽으로 걸어간다. 데크 설치가 잘 되어 있는 것이 국립공원은 국립공원이다.


20210217_125804.jpg 하지만 데크 설치가 필요한 이유가 하나 더 있다. 바닷가임에도 습지이기 때문.


20210217_125647.jpg 실제로 꽤나 큰 맹그로브 습지가 형성되어 있다.


20210217_130009.jpg 습지를 지나 걸어가다 보면 갑자기 조그마한 실개천이 나온다. 나름 Gold Rock Creek이라는 이름까지 붙여져 있는데, 바다와 평행하게 흐르다 바다로 흘러 들어간다.


20210217_130229.jpg 그런데 이게 왜 볼때마다 신기한 느낌이냐 하면...


20210217_130517.jpg ... 실개천에서 눈만 돌리면 바로 저렇게 아름다운 바다가 보이기 때문. 아름다운 바다를 봐버렸으니 바다의 유혹을 이길 길은 없고, 어서 걸어가야 한다.


20210217_131340.jpg 드디어 바다가 눈앞에. 이번에는 살짝 청록빛 빛깔을 띠는 신비한 바다이다.


20210217_131451.jpg 게다가, 바람이 꽤 세서 먼 바다에 파도가 연신 몰아치는데, 얕은 앞바다에 와서는 영 맥을 못 추는 것이 어딘가 귀엽다.


20210217_132900.jpg 왼쪽에는 Gold Rock Creek과 습지가 있는데, 바로 오른쪽에는 바로 해변과 모래사장이다. 꽤나 신기한 풍경이지만 사진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이 정도가 한계.


20210217_134442(0).jpg 그랜드 바하마 섬에도 15km씩 쭉 뻗은 도로가 존재한다. 텅 빈 도로, 앙상한 나무와 구름 잔뜩 낀 하늘이 만들어내는 기묘한 분위기. 이게 카리브해에서 만날 수 있는 풍경이라니.


주마등 투어를 마치고 다시 공항에 도착. 이번에 이용할 항공사 터미널은 무려 가건물 상태 (다행히 지금은 새 건물을 완공한 듯하다)... 가운데 작은 문이 터미널 입구이다.


20210217_143235.jpg 터미널이 가건물이니 대합실도 있는 것이 다행일 지경. 더 일찍 도착했으면 기다리다 심심해 큰일날 뻔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니 이 또한 신기한 경험.


그래도 터미널이 가건물이지 비행기가 모형인 것은 아니니까. 드디어 Nassau로 돌아가는 비행기에 탑승한다. 볼때마다 느끼지만, Embraer ERJ 시리즈는 참 날렵하게도 생겼다


20210217_155456.jpg 비행기가 공항을 이륙한다. 공항 뒤로 Freeport 시가지가 그리고 그 뒤로 푸른 바다가 보인다.


20210217_155658.jpg 비행기가 그랜드 바하마 섬을 빠져나가는 순간. '비자발적 주마등 투어'가 너무나도 아쉬워서라도 다시 한번 꼭 와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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