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로 언뜻 보면, 하버 아일랜드는 일루서라 섬 바로 옆에 붙어 있는 이름 없는 섬 중 하나처럼 보인다. 하지만 당장 바하마 관광청 웹사이트에서부터 이 섬을 꽤나 비중 있게 소개하고 있는 것을 보면 (Eleuthera and Harbour Island라 표현) 이 작은 섬에 무언가 있다 싶었다. 게다가 'a quaint, seaside town with storied New England-style architecture'이라는 관광청의 표현, 어딘가 끌리지 않는가. 때로는 이런 느낌을 믿고 잠시 가보는 것이 좋지 싶다. 그 덕에 바하마 여행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곳 중 하나를 방문할 수 있었으니.
일루서라의 Three Islands Dock에서 하버 아일랜드로 향하는 워터 택시를 탈 수 있다. 배가 조금 작아 보이지만, 그래도 쾌속으로 달려 10분이면 도착한다.
하버 아일랜드에 슬슬 도착하는데, 고급 요트가 가지런히 정박해 있다. 이거 이거, 생각보다 좋은 곳에 와버린 것 아냐?
반대쪽을 보니 이번에는 깔끔하게 정돈된 마을이 바닷가를 따라 늘어서 있는 모습. 빨리 돌아보고 싶다는 호기심을 자극한다.
기대감에 부품어 있는 사이 드디어 도착.
이 섬에서는 전동 카트나 자전거만 대여가 가능하다. 부두에서 즉석으로 전동 카트를 하나 빌려 출발 (단, 섬이 작아 1~2km만 걸으면 대부분 오갈 수 있긴 하다).
신나게 카트를 몰다 보니 딱 봐도 해변으로 향하는 오솔길이 나타났다. 살짝 보이는 바다의 푸른색이 은근히 부르는 듯하다.
그렇게 만난 해변의 모습이 너무나 평온하면서도 밝게 빛난다. 하버 아일랜드의 동쪽 해안 거의 대부분이 이토록 아름다운 해변으로 구성되어 있다.
아무도 없는 아침, 이 시원한 해변을 혼자 오롯이 받아 들인다.
동녘의 강렬한 태양이 바다와 모래사장에 광채를 더한다.
이 바다 바로 앞 별장에 사는 사람들은 매일같이 이 풍경을 볼 수 있겠지.
누군가의 친절을 발견. 저기 앉아서 조금 쉬어도 좋겠지.
아름다운 바다를 보고, 파도 소리를 듣고, 바다 내음을 맡고, 바람의 맛을 보고, 바람의 촉감을 느낀다. 그렇게 한 시간은 구경한 것 같다.
한참을 즐기다 다시 길을 떠난다. 이 섬은 길 하나 하나에도 어딘가 역사가 서려 있는 느낌.
동쪽 해변과 대조적인 서쪽 해안. 얕디 얕은 바다와 파도 하나 없는 잔잔함이 평온함을 극대화한다.
섬의 동쪽 서쪽 돌아다니며 즐기다 보니 문득 커피 한 잔이 땡긴다. 그런데 이렇게 아름다운 카페를 발견. 참새는 방앗간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법이다.
외부도 예쁘게 꾸며져 있었지만, 내부도 깔끔한 모습이다. 게다가 커피뿐 아니라 건강 주스에 샌드위치까지 다 갖춰져 있다. 메뉴를 보고만 있어도 호강하는 느낌.
결국 '커피 한 잔의 여유'에서 '균형 잡힌 아침식사의 여유'로 판이 커져 버리고 말았다. 뭐, 이 또한 여행의 묘미이니까. 겸사 겸사 휴대전화도 밥 좀 먹이고, 오히려 좋지.
예상에 없던 호사를 즐긴 후 다시 길을 나서고, 이번에는 섬의 서쪽 해안을 따라 천천히 카트를 몰아본다.
해안 도로가 잘 정돈되어 있어 구경할 맛이 난다. 부동산에 들러 별장 가격이라도 물어보고 싶은 상쾌한 기분 (아 물론 돈은 없습니다만).
누군가가 만들어둔 조그마한 부두. 다른 부두처럼 나무 데크 하나 안 갖춰져 있지만, 어딘지 정감이 가는 모습에 잠시 카트에서 내려 걸어가본다.
부두가 소박하게 설치되어 있다 보니, 부두 끝에서 바라본 바다가 당장이라도 몸을 휘감을 듯 넘실거린다.
아마도 저 앞집 주인이 설치한 부두일 터. 이 분의 센스 덕에 잔잔한 바다를 바라보며 제대로 멍 때릴 수 있었음에 감사.
다시 길을 나선다. 잘 닦여 있으면서도 어딘지 고풍스런 느낌이 나는 도로도 지나고...
... 이렇게 멋스럽게 지어진 교회도 지나간다 (이 교회는 영국 성공회 소속).
그러다가 다시 한번 발견한, 해변으로 나가는 오솔길. 이번에도 바다의 푸른 빛깔이 거세게 유혹한다.
오솔길을 반쯤 걸어갔을 뿐인데도 벌써 기대감이 극대화되는 미친 빛깔.
오솔길의 끝에서 새하얀 모래와 푸른 바다가 격렬히 환영해준다.
모래가 핑크색으로 빛난다 하여 해변의 이름도 'Pink Sand Beach'. 이런 환상적인 해변이 섬의 동쪽 해안을 따라 몇 킬로미터씩이나 이어진다니, 그저 부러울 따름.
실제로 잘 관찰해 보면, 강렬한 태양을 받아 빛나는 모래의 색깔이 핑크빛을 띤다. 이정도면 진심 천상계의 풍경이 아닌가.
이 신비로운 해변에서 한가하게 승마를 즐기는 가족. 진심 평화롭지 아니한가.
엇 그런데 승마의 흔적이 남아버렸는걸. 어떻게 치우지...
하지만 걱정할 필요가 없다. 이렇게 잔잔한 파도가 금방 깨끗하게 정리해줄 테니까. 다시 거울처럼 매끈해졌다.
구름이 시시각각 태양의 앞을 지나가면서, 구름이 태양을 가린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이 극단적으로 대조되는 신비한 장면이 연출된다.
해변에서 또 한번 충분히 멍 때리다 보니 어느새 출출해지는 것이 간단히라도 점심을 즐겨야 할 듯하다. 현지인의 추천을 받아 방문한, 비교적 소박해 보이는 식당.
하지만 하버 아일랜드가 그렇듯 소박할지언정 잘 정돈된 모습이다. 평온한 마음으로 자리에 앉아 식사를 주문한다.
물론 칵테일도 한 잔 필요하겠지. 이렇게 좋은 섬을 놓치지 않고 방문한 스스로에게 주는 선물.
그리고 이내 나온 Cracked Conch. Conch 조개를 적당한 크기로 썰어 튀긴 요리인데, 비린내 하나 없는 쫄깃한 식감에, 갓 튀겨 먹는 그 맛이 일품이다.
생각 외로 즐거웠던 하버 아일랜드. 한나절 즐겁게 잘 놀았지만 더 있고 싶은 아쉬움이 앞서는 곳. 꼭 다시 방문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