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초록한 산도 좋고, 파랑 파랑한 바다도 좋은가. 그렇다면 과들루프를 추천함직하다. 언뜻 나비 모양의 섬 한 개처럼 보이지만, 실은 두 개의 섬 (서쪽의 Basse-Terre와 동쪽의 Grande-Terre) 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 그런데 이 두 섬의 자연환경이 상당히 대조적이어서, 서쪽의 Basse-Terre 섬은 산세가 상당히 험준할 뿐만 아니라 최고봉 La Grande Soufrière 산은 무려 높이 1,467m에 달하는 활화산인데 반해, 동쪽의 Grande-Terre 섬은 비교적 평탄한 지형이 이어진다. 그렇기에 산과 물과 바다가 모두 Basse-Terre와 대조되어 지루할 새가 없다.
Route de la Traversée를 통해 서해안으로 향하던 중 이름 없는 전망대에서 바라본 모습. '첩첩산중'이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 험준한 산세 아닌가.
Cascade aux Ecrevisses. 열대우림 속에서 수영을 즐기는 기분이 얼마나 시원할지 상상도 안 간다.
드디어 산을 빠져나와 서해안과 조우. 바닷가까지 험준하게 뻗어나온 산세가 아름다우면서도 만만치 않아 보인다.
Plage de Malendure. 화산암으로 만들어진 검은 모래가 퇴적되어 만들어진 해변이다 보니 어딘가 야성적인 느낌을 준다.
하지만 모든 해변이 저렇게 야성적인 것은 또 아니다. Grande Anse 해변의 경우 멀리서 봐도 확연히 밝은 색 모래.
설레는 마음으로 Plage de Grande Anse로 내려가보니, 생각보다도 더 좋은 느낌이다. 고운 모래가 넓게 펼쳐져 있고, 잔잔한 바다가 넘실거린다.
이런 평온한 느낌을 원했다. 좋아, 이곳에서 석양까지 지켜보며 한가한 마음을 되찾는 거야. 그렇게 해수욕을 즐기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조용히 지는 해를 바라보았다.
그래도 밥은 먹어야 하니, 숙소에 짐을 푼 뒤 근처 Bas-du-Fort 지역의 식당가를 방문한다. 곳곳에서 밤 늦게까지 흘러나오는 흥겨운 분위기.
그래도 카리브해에 왔으니, 현지 요리를 먹어야겠지. 그런데 현지 식재료와 향신료 등등이 들어간 것은 분명히 맞는데, 프랑스 요리 기법이 섞인 느낌이다.
신기해서 하나 더 주문해본 조개 요리도 마찬가지. 분명 카리브해의 강렬한 맛이지만 군데 군데 프랑스 요리의 흔적도 섞여 있다. 그런데, 이게 또 은근 끌린다.
Marie-Galante와 Terre-de-Haut를 돌아보고 다시 과들루프로 돌아온 날. 이번에는 조금 더 고상한 호텔. 사탕수수밭에 안긴 플랜테이션 같아 이국적이다.
그래서 그런지, 호텔 어디에서든 풍족한 자연을 느낄 수 있도록 조경에 신경을 많이 써두었다.
수영장도 숲속 옹달샘 컨셉인 듯하고...
... 객실로 향하는 길도 푸릇푸릇하다.
하다 못해, 방에서 문만 열어도 자연이 눈에 들어온다. 이 정도면 조경에 진심인 사람들 아닌가.
호텔의 자연 환경에 만족해 간만에 방에서 뒹굴 뒹굴 휴식을 즐기다, 저녁 식사를 먹으러 식당으로 이동. 밤에도 제법 운치 있는 모습이 흥을 돋운다.
그런데 이 흥의 결에 왠지 모를 청량감이 섞여 있다 (아마도 며칠간 강행군 뒤 간만에 휴식을 즐겼기 때문일지도). 와인보다는 맥주에 가까운 느낌이다.
그리고 음식도 복합적인 풍미보다는 어렵지 않은 심플함이 더 낫겠다. 하여 주문한 랍스터 파스타에 맥주 한 잔을 곁들이니, 이곳이 바로 천국이다.
간만에 잠도 푹 자고 일어나니 다시금 푸릇푸릇한 자연이 눈앞에 있다.
아침부터 늘어져 있는 고양이를 바라보고 있으니 한 두 곳 덜 돌아보더라도 푹 쉬기로 한 것이 옳았구나 싶다.
그래도 관광을 아예 포기할 수는 없으니, 체크아웃 후 다시 출발. 근처에 럼 양조장이 있는 모양이니 먼저 퀵하게 한 곳만 들러볼까 생각했는데... 왜 이렇게나 깔끔한 것이지?!
바다가 살짝 보이는 풍경도 너무나 상쾌하고. 갑자기 기대치가 확 올라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내부 전시장은 더욱더 잘 꾸며 두었다 (Longueteau 양조장 이거 요물이구만). 이렇게나 신경 써 꾸며 두었는데 퀵하게 찍고 가는 것은 예의가 아닐지도.
게다가 직원의 해박한 설명에 반해 연신 이것 저것 마셔보다 보니, 결국 한 시간을 눌러앉게 되었다. 그렇다면 원래 가보려 생각했던 곳들은 거리가 멀어 포기해야 한다...
... 그렇다면, 이렇게 된 이상 기존 계획은 다 갈아엎고 럼 양조장만 줄창 방문하는 편이 낫겠다. 일단 바로 옆 Karukera부터 들러본다.
Longueteau와는 꽤 다른 분위기이지만, 의외로 이 양조장은 럼 숙성/블렌딩에만 집중하고 럼 원액은 Longueteau에서 공급 받기 때문에 결국 형제인 셈.
전시장 바로 옆 창고에서는 럼이 한창 숙성 중인 모양.
그리고 여기에서도 몇 가지 럼을 마셔볼 수 있었다. 럼도 충분히 고급화가 가능하다는 점을 재삼 깨달으면서.
이번엔 Papa Rouyo로 이동... 했는데, 여기는 아예 럼 양조장 같지도 않은 분위기이다. 왜일까.
아니나 다를까, 이곳은 원래 맥주 양조장이었지만 약 5년 전부터 럼 양조에도 뛰어든 것 (그래서 한 켠에는 맥주 생산 시설이 즐비하다).
그러다 보니 아직 5년 이상 숙성된 럼은 없는 상태이지만, 다양한 시도를 지속하며 품질 개선과 라인업 확장에 열심이라고.
그리고 이곳에서도 또 한 번 다양한 럼을 마셔볼 수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Montebello에 방문. 사탕수수 착즙 등 주요 공정이 바로 옆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평소 다른 섬에서 봐오던 통상적인 럼 양조장과 가장 비슷한 느낌이다.
실제로 전시장 바로 앞에서 사탕수수 착즙이 한창이다.
물론 전시장에서는 다시 한번 몇 가지의 럼을 마셔볼 수 있었고. 어찌 이리 양조장마다 캐릭터가 다 다른 것인지, 확실히 과들루프가 럼에는 진심인 듯하다.
럼 투어를 성공적으로 마쳤으니, 편안한 마음으로 Grande-Terre 쪽에서 두어 곳만 돌아보기로 한다. 일단 Plage de Bois Jolan을 방문.
특이하게도 바다 바로 앞까지 숲이 형성되어 있어 모래사장은 넓지 않지만, 독특한 해변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무심코 하늘을 쳐다보았다 우연히 발견한, 해와 구름이 싸우는 순간. 햇빛을 받아 가장자리가 밝게 빛나는 구름이 성스럽게 보일 지경이다.
공항으로 돌아가기 전 마지막으로 Plage de Sainte-Anne에 방문. 이 평온한 모습을 보고 있자니 비행기 타러 가기 싫어진다.
지역 주민과 관광객이 모두 물놀이를 즐기고 있는 대화합의 현장.
거기에 새 두 마리까지 함께 노는 (?) 찰나의 순간.
공항으로 돌아가기 전 근처 KFC에 들러 해장 (?) 을 시도한다. 그런데 진짜 KFC 매장까지도 카리브해 다른 섬들보다 확실히 깔끔하게 꾸며둔 느낌.
공항에서 탑승을 기다리는데, 터미널 모양도 원형으로 독특하게도 지어 두었다. 프랑스인의 미적 감각이 반영된 것이려나.
여튼 드디어 마르티니크행 항공편에 탑승. 프랑스가 가미된 카리브랄까. 확실히 여느 카리브해 섬들과는 다른 경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