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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제나 Jul 08. 2022

# 19. 내 편이 되어줄 수는 없나요?

돌아올 거라고 믿었다.

시어머니는 우리의 이혼을 바라기라도 했던 것처럼, 마치 기다렸다는 듯 본인들에게 이혼은 한 번이 어렵지 두 번은 어렵지 않다고 떠들어댔지만,

이혼이 어디 그렇게 쉬운 일이던가.

그것도 아이가 있는 부부가 말이다.

예전에 남편이 지나가며 했던 말이 떠오른다.


- 이혼도 내가 하고 싶을 때 할 거야


이런 식으로는 못 살겠다고 악다구니를 쓸 때마다

남편이 나에게 던졌던 그 말,

이혼도 자기가 하고 싶을 때 하겠다던 그 말이 씨가 되어 돌아왔다.

그래. 지금이 니가 이혼하고 싶은 그때로구나.

그래서 너는 또 어머니 등 뒤에 숨어 이혼조차도 부모를 통해 해결하려 하는구나.

참 너답다.


5월 18일.

역사 속에 비극이 벌어졌던 그날로부터 수십 년이 지난 지금, 나의 인생에도 비극이 펼쳐지고 있다.

친정식구에게 이 사실을 알리지 않으려 발버둥을 쳤지만 이제 알려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남편은 돌아오지 않는다.


부모님과 오빠에게 모든 사실을 털어놓고 이혼 당하게 된 현실을 알렸다.

처음에 내 얘기를 들었던 부모님은 니가 어떻게 했기에 상황이 그렇게까지 됐냐며 나를 벼랑 끝으로 몰아세우기 시작했다.

하아... 아버지 엄마, 제발 나 좀 살려주세요.

아버지께서 그때 나에게 했던 말을 지금 당신은 기억하지 못하시겠지만, 나에게는 지워지지 않는 얼룩처럼 너무나도 선명히 남아있다.


- 맞는 김에 몇 대 더 맞고 넘겼어야지,

경찰을 불렀다는 건 끝내겠다는 거나 다름없다.


아버지, 그래서 이 모든 상황이 제 잘못이라고요?

몇 대 더 맞았어야 했다고요?

아버지 딸이 그렇게 끔찍한 지옥 속을 살고 있었는데 몇 대 더 맞았어야 했단 말인가요?

나에겐 내 편이 되어줄 가족조차 없단 말인가.

서늘한 외로움이 온몸을 감쌌다.


그저 내가 바랐던 건,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니.

아버지가 미리 알아주지 못해 미안하구나.

걱정 마라. 너한텐 가족이 있다.

돌아올 가족이 있으니 울지 마라.


속은 썩어 문드러져도 나를 위로해 주고 내 고통을 함께 안아줄 내 편이 필요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부모님은 완강히 나를 밀어냈다.

게다가 아들은 무슨 일이 있어도 내가 키우겠다는 나의 고집 때문에 부모님과는 점점 더 멀어져 갔다.

엄마는 나의 연락을 받지도 않았다.

매일같이 연락해오는 아버지는 이혼할 거면 아이는 그 집에 주고 오라는 말뿐이었다.

능력도 없는 네가 무슨 수로 아이를 키울 거며,

우리는 네 아들 양육을 전혀 도울 수 없으니 아이를 보내라고.

내 생명보다 더 소중한 내 아들을 그 집에 주고 오란다.


나는 안다.

전처의 딸과 전처는 면접을 하지 않는다.

딸아이는 말로는 생모를 미워하고 욕했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선 자신을 낳아준 엄마를 지독히도 그리워했음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또한 학교에서 교우관계가 좋지 못하고 공격적인 태도를 보인 것도 아이 엄마의 사랑을 오롯이 받지 못해서 였음을 나는 안다. 알 수 있다.

너무나도 간절히 느껴졌으니까.


내가 내 아들을 그 집에 놓고 온다면

내 아들도, 딸아이와 같은 삶을 살아갈 것이다.

그 사실을 알기에 나는 내 아들을 그 집에 두고 올 수가 없다.

아버지께 목놓아 울며 말했다.


- 아버지 나 살겠다고 어떻게 내 자식을 두고 와요.

지금껏 나하고 둘이만 지내던 애를, 나 먹고살자고 어떻게 그 집에 두고 오냐고요.

제발 저 좀 살려주세요, 저는 아이랑 헤어져서는 못 살아요.


통곡을 하며 설득을 해도 아버지는 완강했다.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 알 수 없을 만큼,

결혼생활보다 더 고통스러운 시간이 하염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모두가 적으로 돌아선 가운데 단 한 사람,

오빠만은  편이 되어주었다.


매월 150만 원씩 생활비를 보내겠다던 남편은 첫 달 150만 원을 시작으로 둘째 달은 70만 원 셋째 달은 0원, 마지막 달 150만 원으로 그 약속을 어설프게 지켜나갔다.

내가 아는  인간은 절대 양육비를 따박따박 보내지 않을 위인이다.

본인의 딸이 운동화가 낡아서 사달라고 졸라도


-할머니한테 사달라고 해, 나 돈 없어


라고 말하던 인간이다.

딸아이에게도 아들에게도 부성애 따위를 갖지 않는다. 가장 중요한 건 자기 자신이라고 떠들던 주둥이였다.


첫 달 남편이 보내준 150만 원으로는 돌잔치 비용을 갚기도 빠듯했다.

가지고 있던 액세서리와 쌈짓돈을 모두 꺼내놓아도

당장 벌이가 없는 나로서는 지금 이 현실이 그저

속수무책이었다.

오빠도 결혼해서 아내가 있었고 한 가정의 가장이었지만, 순하고 착한 새언니의 배려로 나에게

매달 150만 원의 생활비를 보내왔다.

일하느라 바쁠 텐데도 매주 우리 집으로 찾아와

나와 아들을 보살피고 함께 시간을 보내주었다.

오빠는 주말마다 우리를 데리고 가까운 공원에 가기도 하고 아들을 안고 꽃도 보여주고 나무도 보여주며 나와 내 아이에게 최선을 다해주었다.

오빠가 말한다.


- 난 아버지랑은 반대야.

니가 어떻게든 강해졌으면 좋겠어.

생활력도 키우고 멘탈도 강해져서 보란 듯이 아들이랑 잘 살았으면 좋겠어.

넌 이제 우리 집 막내가 아니야.

한 아이의 엄마고 가장이야.

마음을 단단히 먹어.

oo 잘생겼으니까 나중에 아이돌 시키자! 돈 많이 벌 거야 ㅎㅎㅎ


나로 인해 아버지와 오빠도 대립했다.

오빠는 내가 내 아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너무나도 잘 알았기에, 아들이 없으면 사람처럼 살 수 없을 인간이란 걸 알았기에, 어떻게든 아들과 내가 함께 살 수 있도록 가족이 도와주기를 바랐고


반면 아버지는 손주보다는 딸의 젊은 인생을 더 걱정하셨다.

아직 너무나 젊고 결혼생활도 비참히 짧았으며,

경제적 능력도 없는 당신 딸이

아들을 데리고 힘들게 살아갈 것이 못내 가슴이 아프셨던 모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식이기는 부모 없다 하였는가.

엄마는 여전히 나의 전화도 받지 않은 채 내 마음을 할퀴었지만 아버지는 완강했던 마음을 조금씩 푸시는 듯했다.


- 니가 oo 데리고 산다고 하면, 내가 조그만 방 한 칸은 얻어주마.

- 아버지, 정말 감사합니다. 그리고 정말 죄송합니다.

그렇게 아버지와 오빠의 응원에 힘입어 나는 아들과 둘이 살아갈 방도를 찾기 시작했다.


P.S. 이혼 과정을 쓰고 읽으면서 참 많이 울었습니다. 이제는 잊힐 때도 됐다고 생각했고 그렇다고 믿었는데 아이와 헤어지는 일, 가족에게 상처를 주고

가정을 깼던 그때 그 일은 지금까지 제 인생에서 가장 큰 고통이었던 것 같습니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퇴고하며 다시 한번 읽는 순간에도 묻어두었던 그때의 감정이 떠올라 저미는

슬픔을 주체할 수가 없습니다.

제가 이혼 과정을 겪던 당시, 인터넷으로 이런저런 글들을 찾아보며 나와 비슷한 상황에 처한 사람이 적은 글 속에서 위로를 받았던 기억이 따뜻이 남아있습니다.

그저 내가 적은 이 글을 읽은 누군가가,

그것이 고작 단 한 사람뿐일지라도,

위로받고 또 조금은 편안해질 수 있길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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