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나와 사는 1년 6개월이 조금 넘는 기간 동안
수없이 나와 다투면서, 그런 일이 있을때마다 툭하면 5분 거리에 살고 있는 시어머니 집으로 내달음질 쳤다.
다투지 않아도 갔고, 다퉈도 갔다.
심심하면 자고 오기도 하고 밥도 먹고 오고
때문에 외박은 그에게도 나에게도 대단한 이슈거리가 아니었다.
이번에도 틀림없이 그런 것이라 생각했다.
그동안 임신 8개월때부터 그에게 수없이 얻어터지면서도 한 번도 경찰에 신고를 한 적은 없었다.
난 그렇게 대범한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우리 아버지께 그렇게 꾸중을 듣고 호되게 야단을 맞고 다시 한번 잘 살아보겠노라 다짐을 한지 채 열흘을 넘기지 못하고 남편은 또다시 나에게 손을 댔다.
경찰에 신고한 일은 폭력에 상응하는 순간적인 나의 대처 방법이었으며 그저 본능이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그는 절대로 달라지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날짜조차 잊혀지지 않는다.
2017년 5월 18일.
어버이날이 지난지 고작 열흘째였다.
하지만 나의 신고가 그에겐 대단한 모욕감을 주었나 보다. 이혼 통보 문자라니.
그와 함께 살았던 1년 6개월이란 시간 동안 별의 별일을 다 겪고 마치 내가 막장드라마의 주인공이 된 양 드라마에서도 보지 못했던 방법으로 고통을 받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혼을 생각하진 못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는 그렇게 대범한 사람이 못되었다.
현실이 지옥 같고 이 지옥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알 수 없기에 막막하고 숨 막히는 끔찍한 현실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거지 같은 가정이
폭력과 다툼과 욕설이 난무하는 나의 이 가정이
무척이나 소중했다면 비열한 모순일까.
내 남편과 내가 낳은 아이와 그저 소박하고 행복한 평범한 가족의 일상을 꿈꿨지만 결국 그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남편은 나와 이혼하면 두 번째 이혼이다.
배다른 아이가 둘이나 있다.
때문에 나는 자만했는지도 모른다.
아무리 고통스러운 현실일지라도 이 사람이 두 번의 이혼을 선택하지는 않을 거란 나의 오만하고 불손했던 착각.
내 전 남편은 그런 사람이다.
한 번 결정을 내리면, 그 결정을 절대 바꾸지 않는다.
하늘이 두 쪽이 날지라도.
그래도 믿었다.
한동안 자기 어머니 집에서 머물며 생각을 하겠지.
그리고 어느 정도 화가 누그러지면 여느 때처럼 다시 돌아오겠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그러나 남편은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도 나의 연락을 받지 않았다.
이혼은 할 수 없다.
경찰에 신고를 한 일은 내가 경솔했다.
그저 다툴 때마다 때리는 그 습관을 고치고 싶었을 뿐이다.
나 혼자 내 아들을 키우기엔 역부족이다.
난 내 가정을 깨고 싶지 않다.
지금이 제일 힘든 시기일 거다.
결혼하고 1~2년이 서로 맞춰가기 위해 필요한 시간인데다가 우리는 처음부터 평범한 여느 부부와는 다른 조건이지 않았나.
그러니, 마음을 돌려 다시 한번 노력해 보자.
여러 차례 문자를 보냈지만 답변은 오지 않았다.
때롱때롱
문자 소리가 들리고 나는 헐레벌떡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xx 은행
1,500,000원 입금
잔액 1,500,480원
그가 보낸 생활비였다.
150만 원이라니.
지난달 아들의 돌잔치에 들었던 200만 원이 넘는 비용은 내 카드로 결제했다.
부모님과 오빠가 주신 150만 원은 카드값에 보태겠다는 명목으로 남편이 모두 가져갔다.
고로 나는 마이너스 상황이다.
하...
남편이 언젠가 농담 따먹기 식으로 했던 말이 기억이 난다.
- 오빠는 왜 생활비를 따로 안 주는 거야?
- 넌 수중에 돈이 있으면 나 버리고 도망갈 사람이야.
너는 참...
선견지명이 있구나.
앞이 캄캄했다.
결혼함과 동시에 나는 회사를 그만두고 전업주부로 들어앉았다.
결혼하기 전에도 아나운서가 되겠다며, 성우가 되겠다며 이 직장 저 직장 기웃거린 탓에 전문성을 갖춘 직장인이 되기에도 역부족이었다.
150만 원으로는 이번 달 생활비는 고사하고
돌잔치에 지출된 카드값을 메꾸기도 턱없이 부족했다.
우선 남편이 돌아오기 전까진 스스로 해결할 수밖에 없다. 이런저런 부연 설명을 해가며 돈을 더 달라고 한들, 줄 인간도 아니었다.
친정 부모님이나 오빠에겐 말할 수 없다.
남편이 또 때려서 경찰을 불렀더니 집을 나가 이혼을 요구한다는 말을 어떻게 부모님과 오빠에게 한단 말인가.
혹여라도 남편이 다시 돌아오게 되었을 때 미운 털만 더 박히게 될 것이다.
일단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안방으로 들어가 그동안 부모님이 남편 몰래 조금씩 주신 용돈을 헤아려본다.
야금야금 모았지만 100만 원도 채 되지 않는다.
이걸로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보석함을 열어보니 팔 수 있는 14k 액세서리들이 눈에 띈다. 순금은 없지만 아쉬운 대로 150만 원은 나올 것 같다.
우선 이것으로 버티자.
조금 지나면 화를 가라앉힌 남편이 아무 일도 없단 듯이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와 밥을 달라고 하겠지. 버티자. 어떻게든 그때까지만 버티자.
상황이 이쯤 되니 딸아이 픽업을 해야 하는 건지도 의문이 들었다.
이제 초등학교 2학년이 된 딸아이는 핸드폰이 있다.
- oo야 엄마가 데리러 가면 되지?
- 아니, 할머니가 온다고 엄마 오지 말랬어
아... 벌써 너희끼린 얘기가 착착 진행되고 있구나.
남편이 집을 나가고 하루 이틀은 홀가분했다.
어차피 이러다가 돌아올 테니까.
지금껏 그래왔으니까.
그러나 3일째가 돼도 남편이 돌아오지 않자
나는 조금씩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모른 채 해맑게 웃으며, 뒤뚱거리는 아들을 보니 차오르는 감정을 주체할 수가 없다.
아들만 생각하면 정말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았다.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정말이지 그랬다.
가슴이 미어질것 같아.
낮에는 아들을 돌보면서 어떻게든 잊고 지낸다.
하지만 아들이 잠든 밤이 되면, 지금 나에게 벌어진 이 상황이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가 없다.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대체 내가 왜 이런 일을 겪어야만 하는 건가.
가여운 내 아들은 도대체 무슨 죄란 말인가.
신경이 곤두서고 온몸의 촉각은 슬픔에만 몰두되어 있다.
그렇게 열흘쯤 지난 어느 날 시어머니의 전화가 온다. 그동안 나의 전화를 줄기차게 무시하던 시어머니였다.
- 우리 아들 약이랑 옷 좀 챙기러 지금 간다.
전 남편은 B형간염 보균자이다.
(이 사실도 결혼 후 한참 지나서, 남편의 와이셔츠를 다리려고 옷장을 뒤적이다 몰래 숨겨놓은 약봉투를 발견하고서야 알게 된 사실이다)
꾸준히 약을 복용해야 하는 사람인데, 급히 집을 나가다 보니 약을 가져가지 않은 모양이다.
시어머니는 자신의 아들이 걱정되어 약과 여벌의 옷을 챙기러 우리 집을 방문했다.
- 내 아들이 없으니 집이 휑하구나.
(한참 뜸을 들이더니)
이쯤에서 접어라.
- 어머니, 잘못했어요.
제발 oo 아빠 설득해서 집으로 돌려보내 주세요.
어머니가 말씀하시면 그 사람 집으로 올 거예요.
우리 아들은 어떻게 해요 어머니.
제가 더 잘할 테니 제발 이혼만은 막아주세요.
- 우린 한 번이 어렵지 두 번은 어렵지 않다.
넌 성격을 너무 빨리 드러냈어.
앞으로 oo(딸아이) 픽업하지 않아도 된다.
9월 말에 이 집 전세 계약 끝나니 그때까지 집 비워라. 우리는 oo(딸아이) 가르쳐야 해서 너랑 네 아들 살 집 해줄 돈은 없다.
네 아들 데리고 너희 친정으로 가렴.
네 엄마가 아무리 새엄마라도 너랑 네 아들을 길거리로 내쫓기야 하겠니
남편의 옷과 약을 챙겨든 시어머니는 내 심장을 찌르는 상처들을 내뱉고 그렇게 차갑게 돌아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