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제나 Jul 13. 2022

# 20. 너와 함께 살고 싶어. 내가 너의 엄마니까.

2017년 9월 25일.

신혼집의 전세 만기 일자였다.

길바닥에 나앉지 않으려면 9월 25일까지는

무슨 일이 있어도 아들과 함께 살 공간을 마련해야 했다.

시간은 3개월 남짓 남아있다.

아버지께서 나와 아들이 살 방 한 칸은 만들어주신다고 했지만 그 말 한마디에 기대, 손놓고 있을 수만은 없던 터였다.


나는 틈이 나는 대로 한부모 가정이 받을 수 있는 여러 가지 혜택을 알아봤지만 그 혜택은 현실과는 너무 동떨어진 수준이었으며, 그마저도 나는 해당사항이 없는 항목이 더 많았다.

무엇보다 어린 아들의 양육을 맡기고 일터로 나가야 하는데, 보조 양육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이 없었던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엄마는 나에게 말했다.


-왜 내가 남의 자식을 키워주니?


화가 나서, 답답한 마음에 하신 말씀이겠거니 하고 넘겨보려 해도 아직까지 목구멍에 박힌 가시처럼

그 말이 쉽게 넘어가지 않는다.

나는 보조 양육자도 없고 직업도 없다.

아이 아빠는 꼬박꼬박 양육비를 줄 사람이 절대 아니다.

하늘 아래 나와 내 아들 둘만 존재하는 듯하다.

머리카락 한올부터 발가락 하나하나까지 사무치게 외로워.


엄마가 살아계셨으면 분명 나와 내 아들을 도와주셨을 텐데.

겉으론 모진 말을 해가며 타박을 했어도, 분명 우리 둘을 거두어주셨을 거다.


만약에.

세상에 가장 슬픈 단어.


만약에 우리 엄마가 살아있었다면.

가슴 아파해도 내가 어쩔 수 있는 현실이 아니다.

생각해서 무엇하리. 가슴만 미어지지.


이런저런 방법을 찾아보고 알아보는 동안 모자가정끼리 모여살며, 아이를 서로 돌봐주고 그 사이 엄마는 나가서 일할 수 있는 복지구조를 발견했다.

하지만 이 또한 나에게는 해당사항이 없었다.

이 복지제도는 부양자의 소득을 검토하여 대상자를 결정하는데, 나의 경우 아버지의 소득도 꽤 높은 편이었고, 전 남편이 될 사람의 소득 역시 중위 이상이었기 때문에 이 프로그램에 해당이 되지 않는다는 안내를 받았다.

참 재미있는 제도 아닌가?

아버지든 전 남편이든 그들이 아무리 부자여 봤자 나는 가난하고, 그들이 가난한 나를 반드시 도와줘야 할 의무가 없는데 부양자들이 돈이 많으면 가난한 당사자에게는 복지혜택을 주지 않는단다.

당사자인 나는 수중에 돈 100만 원도 없는 무일푼인데 말이다.

모자가정 시설을 알아보고 있다는 말을 오빠에게 전히니 오빠가 말한다.


- 네가 아들데리고 시설로 들어가면 아부지나 내 마음이 너무 아플것 같아.


오빠의 말을 들으니 코끝이 매워지고 가슴이 울컥한다.


이쯤 되니 가히 절망적이지 않을 수 없다.

어렸을 적 돌아가신 엄마의 친언니, 이모가 떠오른다. 이모는 경제적으로 많이 어려우시지만 다행히 낡고 오래된 집이 한 채 있으셨고 집의 꼭대기에

조그마한 다락방이 있었던 것이 떠올랐다.

내가 초등학교 5학년  엄마의 백혈병이 병되고  뒤로 1 만에 세상을 떠나실 때까지

이모는 본인의 유일한 자매이자 이모에게 남달랐던 여동생인 나의 엄마를 끝까지 간병해 주셨다.

그랬기에 아버지가 일터에 나가 돈을 벌어 엄마의 병원비를 충당할 수 있었던 터였다.

이모부도 돌아가시고, 집안에 가장이었던 큰언니까지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 둘째 언니와 이모만 그 집에 살고 있는데, 이모에게 직접 나의 상황을 말하기엔 내용이 너무나 충격적이다.

갖은 일을 겪으며 많이 쇠약해진 이모에게 차마 나의 상황을 말할 수는 없었다.

평소 친구처럼 친하게 지내는 한 살 터울의 사촌 언니에게 전화를 걸어 사정을 말했다.

그동안 별의 별일을 다 겪어낸 언니여서 그런지,

그다지 많이 놀라지는 않는 듯 보였다.


- 다락방은 언제든 빌려줄 수 있어.

하지만 엄마가 아이를 돌보기는 무리일 거야.

근데 제나야, 너 꼭 네 아들을 데리고 이혼해야겠니?

넌 평범한 가정에서 자라서 잘 모르겠지만,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태에서 혼자 아이 키우는 거, 아이한테도 못할 짓이야.

그래도 지낼 곳이 필요하다면 언제든 우리 다락방으로 와. 엄마한테는 내가 말해놓을게.


가슴이 뜨거워졌다.

사촌이면 아무리 가까워도 한치 걸러이다.

정말 이모네 집으로 들어갈지 미지수였지만,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이 하나 더 있다는 것은 나에게 위로감을 주었다.

나는 최대한 여러 가지 대안을 마련해놓고 가능한 가장 나은 자리를 선택할 생각이다.

너희들이 법적으로 대응하겠다고 하니, 이제 나도 법적 절차를 알아볼 차례겠지.

하지만 무일푼의 나는 사선 변호사를 선임할 경제적 여유가 없다.


그 해는 아버지가 정년퇴임을 코앞에 두고 있던 때였다. 엄마는 아버지가 시끄러운 잡소리 없이 무사히 퇴임을 하실 수 있도록 법적 절차를 밟지 않길 바라셨다.

재산분할이나 위자료, 양육비 등 내가 그에게 청구할 수 있는 금원이 있는지, 있다면 얼마인지

그 여부를 알아보기 위해 변호사를 만나야만 했다.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던 아들 친구의 엄마들이 여기저기 좋은 정보를 많이 전해주어 무료로 상담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주기 시작했다.

이혼 과정에서 상처도 많이 입었지만, 주변의 도움을 정말 많이 받았다.

그들에게 신의 가호가 함께 하길.


그들은 나에게 한 달에 한 번씩 성당에서 진행하는 무료법률상담과 서울시에서 진행하는 무료법률상담, 그리고 변호사 지인과의 상담 등을 예약해 주었다.


여름 더위가 시작되어 한참 뜨거워지기 시작한 계절, 이제 생후 16개월이 되어 꽤나 튼튼하고 무거워진 아들을 아기 띠로 안고 나는 무료법률상담을 다니기 시작했다.

무료법률상담을 진행하는 변호사들은 이혼전문 변호사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내가

승소할 수 있는 대안을 주지는 못했다.

그저 법전에 나와있는 민법 조항을 설명하며, 포괄적인 얘기만 해주었을 뿐.

힘들게 찾아가 그곳에서 들었던 이야기는, 아이가 잠들면 해가 뜰 때까지 밤새 인터넷 속에서 내가 찾아낸 정보와 별다를 바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무엇이든 해야만 했다.


나는 혼인 기간이 2년이 채 안 되므로, 재산분할할 여지가 없다.

그도 나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폭언을 했지만, 나 역시 위해를 가했으므로 위자료를 청구해도 500만 원 미만일 것이다. 때문에 변호사 선임료를 지불하고 나면 수지 타산이 맞지 않는 금액이니

재판을 하는 것이 나에게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혼을 하게 되면 내가 그에게 청구할 수 있는 유일한 금원은 소액의 위자료와 민법에서 정해놓은 최소한의 양육비뿐일 것이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찾아간 변호사들을 만나고 나니 마음은 더욱 착잡해졌다.

마치 사형 일자를 받아놓은 교도소의 죄수처럼 초조하고 불안한 마음으로 하루하루 이어지는 날들이었다.


평소처럼 아들을 돌보며 아들과 둘이 먹을 저녁식사 준비를 하고 있는데 시어머니의 연락이 왔다.


- 30분 뒤에 아버지랑 같이 갈 테니 집에 있어라


왜 온다는 걸까.

무슨 일로 온다는 걸까.

혹시라도 예전처럼 심하게 꾸중을 듣고 다시는 안 그렇겠다고 맹세하면 다시 아이 아빠를 집으로 돌려보내 준다는 건 아닐까?

감자를 볶던 손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가스레인지에 불을 끄고 아이 기저귀를 한 번 갈고선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켜보려 했다.

혹시 모른단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법률상담을 받으러 다니면서 시부모로부터 당한 폭언을 녹음하지 못한 게 한이 되어 혹시라도 벌어질 상황에 대비를 해야겠단 생각을 했다.


집 근처 마트에서 구입한 초소형 녹음기를 가슴 깊숙이 넣어두고 시부모님이 오시길 기다렸다.

30분이 30년같이 더디게 흘러갔다.

약속했던 시간보다 조금 늦은 시간, 마침내 시부모는 함께 그 모습을 드러냈다.

돌아서는 척하며 몰래 가슴 안쪽의 녹음기를 켰다.

잘 있었냐는 안부의 인사 따윈 일말도 없이 집을 한번 널찍이 둘러보더니 시어머니가 아들을 업고 서성이기 시작한다.

시아버지는 나에게 앉으라는 말도 없이 예의 굳게 다문 얼굴을 하고선 우리 집 거실에 아빠 다리를 하고 앉아 재킷 안주머니에서 꼬깃꼬깃한 종이 몇 장을 꺼내놓았다.


- 너 우리 손녀딸 때렸니?

- 아버님,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 (휴대폰에 저장되어 있는 사진을 보여주며)

네가 때렸다면서? 허벅지가 벌겋지 않니.

네 시어머니가 그러는데 네가 우리 손녀딸을 때렸다면서?


하아... 정말 때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던 적은 부지기수였으나 나는 하느님께 맹세코 딸아이의 몸에 손을 댄 적이 없다.


- 아버님, 정말 아니에요. 저는 oo 이를 때린 적이 단 한 번도 없어요.

- 어떻게 증명할 테냐?

- 제 돌아가신 어머니를 걸고 맹세할게요.

oo이 아빠와는 다투면서 몸싸움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맹세코 oo 이를 때린 적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나는 바보가 아니다.

조금만 피곤해서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어도 딸아이는 눈치가 삼백 단이다.

내가 딸아이의 질문에 건성으로만 대답해도 자기 할머니에게 쪼르르 달려가


-오늘도 엄마가 새엄마 티 냈어


하며 일러바치는 똘똘한 아이다.

그런 아이를 내가 때렸다고?

때리면 할머니한테 쏜살같이 달려가 MSG까지 쳐가며 새엄마의 민낯을 만천하에 드러낼 아인데

내가 바보도 아니고 대놓고 아이를 괴롭히고 때린다고?

발상 한번 기맥히네.

아버님, 전 그렇게 베짱이 두둑한 사람이 못됩니다.


- 모두 다 네 탓으로 이혼한다는 사실 확인서와 각서다. 너는 분노조절장애가 있고 그로 인해 남편과 딸을 힘들게 해서 모두 다 네 잘못으로 이혼하는 것이니 여기에 동의한다는 사인을 해라.

그러면 내가 이걸 가지고 네 남편이 이혼을 못하도록 설득해 보마.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말 같지도 않은 얘기였지만,

당시에 나는 이성의 끈이 실한가닥만큼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저 그들이 말한대로 진짜 죄인처럼 울고 또 울고 머리를 바닥에서 떼지 못한 채 석고대죄를 할 따름이었다.


- 아버님, 저는 이혼하고 싶지 않아요. 이혼할 수 없습니다. 제발 한 번만 살려주세요. 아버님이 하라는 대로 다 할 테니 제발 이혼만은 막아주세요.


결국 나는 그 종이 쪼가리에 내 이름을 갈겨쓰는 것으로, 두 시간이 넘는 석고대죄를 마쳤다.


- 너는 죄인이다.

혹시라도 내 아들이 설득되어 집으로 돌아오면 정신병원에 다니면서 그 화내는 병을 고치도록 해라.

너 때문에 네 아들한테도 정이 안 간다.

그리고 아무리 남편이 집에 없어도 여자가 단정하게 하고 있어야지.


모진 말을 들으면서도 나는 시아버지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이혼만은 막아달라 눈물로 호소했다.


- 네가 이러면 내가 집에 가서 잠을 못 자.


아버님 저는 남편이 집을 나가고 잠을 못 잔 지 한 달이 넘어갑니다.

그렇게 차가운 한 마디를 남긴 시아버지는 시어머니를 데리고 집을 나섰다.

시부모님이 방문한다는 연락을 받았을 때 일어날 수 있는 상황들을 참 열심히도 생각했지만, 이런 상황은 내 예상을 뛰어넘는 일이었다.

한참 멍해진 나는 나에게 폭언을 퍼붓는 그 순간, 사고 회로가 끊겨버렸다.

때문에 가슴 깊숙이 넣어 놓은 녹음기의 완료 버튼을 누르지 못한 채 자리에 주저앉아 아들을 안고

한참을 울었다.

너무나도 차가운 여름의 밤에 발코니 너머로 보이는 한강은 유독 반짝이며 차갑게 흐른다.


이전 19화 # 19. 내 편이 되어줄 수는 없나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