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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제나 Aug 05. 2022

# 22. 결단

아들은 다인실에도 입원하지 못했다.

호흡기 질환이면서 면역이 약한 터라 비슷한 질병을 앓고 있는 아이와 2인실을 사용하거나 1인실에서 

혼자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주머니에  돈이 1원도 없던 터라 보험처리를 한다 해도 병원비를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마음이 무거워졌다.

입원한지 3일쯤 지났을까.

담당 교수님이 말했다.


- 이 아이는 소아천식일 확률이 높습니다.

때문에 다른 아이들보다 감기에 자주 걸리고,

감기에 걸리면 열도 많이 나고 많이 아플 것이며,

때문에 입원하는 일도 빈번할 겁니다.

일단 지금 폐렴 증세가 심한 상황이니 증상이 가라앉으면 퇴원을 고려해 보도록 하죠.

당분간은 입원을 해야할 것 같습니다.

소아천식은 성장하면서 좋아질 확률이 높으니

너무 심려하지 마세요.


내가 태교를 잘 못해서일까.

임신 중에 스트레스를 너무나 많이 받아서 아이의 면역이 안 좋아진 걸까.

아니면,  주변 모든 사람들.

심지어 태아보험에 가입했을  방문했던

보험설계사조차 부러워했던 우리 집의 한강 뷰.

올림픽대교와 강변북로가 만나는 곳에 위치한 나의 신혼집은 뷰가 아름다웠던 대신 도로의 한가운데 있어 공기의 질은 몹시 나빴다.

그곳에서 태어나고 1 6개월이 넘는 시간을 사는 동안 아들의 호흡기가 이토록  좋아진 걸까?

내가 게을러 더 자주 집안의 먼지를 쓸고 닦지 못해

 아들이 천식에 걸린 걸까.


자괴감이 든다.

아니 죄책감인지도 모르지.

아이가 아픈  무조건 엄마인 나의 잘못이다.


귀속에서 교수님의 말씀들이 왱왱거리며 공기 중으로 흩어진다.

나는 지난 몇 달 동안 그저 멘붕상태였다.

아이를 돌봐야 하니 정신을 바짝 차리고 눈을 동그랗게 떠보려 해도 자꾸 맥이 빠지고 머리가 멍해진다.

살면서 이토록  어깨가 무거웠던 적이 있었을까.

내 마음이 이토록 외롭고 공허한 적이 있었을까.

... 가슴이 답답하다.


내가 아이를 홀로 키우려면 돈을 벌 수밖에 없다.

친정 부모님은 절대 아이를 돌봐주지 않을 것이며,

니가 아이를 데리고 이혼하게 되면 부모님이 사는 동네의 근처로도 오지 말라고 공표하셨다.


내가 돈을 벌러 나가는 동안 아이는 어린이집에 맡겨져야 한다. 아이를 키워본 엄마들은 익히 알고 있겠지만, 어린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면 감기에 걸려오는 상황이 빈번해진다.

그런데 교수님이 뭐라고 하셨는가.

 아들은 감기에 걸릴 확률이 높고, 걸려도 남들보다 심하게 아플 것이며, 때문에 병원에 입원하는 일도 왕왕 있을 것이라 했다.

그럼 아이가 입원하면 나는 일터에  나가게  것인데, 그게 자주 반복된다면 어떤 회사에서  사정을 봐주며 일할  있도록 배려해 주겠냐는 말이다.

회사에 못 나가게 되면 나는 아들과 뭘 먹고 뭘 입고 살아야 하나.

가슴이 정말 답답하다.

끝내 이혼을 하고 살던 전셋집에서 맨몸으로 쫓겨나게 되면 나는 아들을 어린이집에 맡기고 직장에 나가 돈을  계획이었다.

그런데 이건 또 무슨 변수란 말인가.

심하게 예민한 상태이다.

누가 뭐라고  건드리기만 해도 머리끄덩이를 잡고 귓방맹이를    있을 만큼 나는 지금 너무나도 심약하고 예민한 상황이다.


그런데, 아들이 잠결에 몸부림을 치다 발등에 꽂아놓은 링겔줄이 빠져버렸다.

하아.......

응급실에 있을  꽂아놓은 링겔줄이 빠질까 아이 손에 양말을 씌워놓고 잠시도 한눈팔지 않으며 아이를 조심시켰다.

링겔줄을 다시 꽂으려면  자지러지는 아이의 몸을  거대한 몸뚱이로 짓눌러 아이를 결박하고 

굵은 바늘을 찔러야 하는데.

기어코 링겔줄이 빠져버리고 말았다.

간호사에게 호출을 했다.

아이를  안고 주사실로 향해, 이전처럼 아이를  몸으로  눌러 움직이지 못하게   발등에 혈관을 찾아 주삿바늘을 찔렀다.

근데 뭔가 어설프다.

한 번, 두 번,

내 아들은 뒤로 넘어가게 울어대는데

이 간호사는 응급실 간호사와 다르게

내 아들의 여리디여린 발등을 생선포를 뜨듯

여러 번 쑤셔대기만 한다.

서너 번 반복될 때까지는 참았다.

아이가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며 눈물이 쏟아졌지만 이를 악물고 참아내며, 어서 빨리 혈관에 주삿바늘을 꽂길 바랐다.

일곱 번 이상의 생선 포 뜨는 행위가 반복되자

초 예민 모드였던 나는 더 이상 참아지지 않았다.

차라리  몸을 쑤셔댔으면 이렇게 아프지 않았을 것을.


-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아기 경기 일으키는 거 안 보이세요?

응급실에서는 한 번에 바늘 꽂았는데 지금 애한테 몇 번을 찔러대는 거예요?

다른 간호사 불러주세요.

선생님한텐  이상 맡길 수가 없어요.


-   바꿔서 해드릴게요.


민망해하는 간호사 선생님이 보이지도 않았다.

내가 결박을 풀자마자 눈물 콧물 흘리며  품으로 안겨드는 가여운  아들만 보일 뿐이었다.

그 조그만 발이 만신창이다.

아기의 발에  상처만큼  심장도 함께 뜯겨져 나갔다.


잠시  다른 간호사 선생님이 왔고, 나는 뜨거운 눈물을 목구멍으로 힘껏 넘기며 울며불며 매달리는 

아기를    몸으로 제압했다.

다행히 바뀐 선생님은 한 번에 혈관을 찾아

내 팔뚝만큼 두꺼운 링거주사바늘을 내 아들의 발등에 꽂았다.

이때 아들의 트라우마가 대단했는지, 발가락에 심박수를 체크하기 위한 집게만 꽂으려 해도 아기는 뒤로 넘어가며 울어댔다.


마음이 아프다.

억장이 무너진다.

왜.

하느님 도대체 왜.

내가 의붓딸을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고

겉으로만 좋은 새엄마인 척 한 벌을 이렇게까지 주시는 건가요?

그럼 그 벌은 제게만 주세요.

제가 진 죄니까요.

모든 벌은 제가  받을 테니 제발 아무 잘못 없는 가여운  아들만은 부디 지켜주세요.


눈물을 흘리며 기도를 하고 하느님을 원망했던 날들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가 입원한지 며칠 지났을 무렵.

친정 부모님이 방문하셨다.

혼자 고생을 해봐야, 여자 혼자 아이 키우는  얼마나 힘든지 안다며 일절 도움을 주지도 찾아오지도 않았던 부모님이셨다.

원망스러운 순간도 많았으나, 그래도 아이와 나를 보러 와준 부모님을 보니 마음이  이상했다.

아이를 쓸어만지고 나와 아이를 보며 가여운 눈빛을 보내던 엄마가 내 손에 하얀 봉투 하나를 쥐어주신다.


- 아기랑 , 먹고 싶은   먹어

그리고 제나야. 봐라.

능력 없잖니. 우리도 너를 도울 형편은 못된다.

능력 없는 네가 이혼하면, 너만 밑바닥 인생을 사는아니라  아들까지 밑바닥 인생을 살게 만드는 거야.

 생각해.


부모님이 집으로 돌아가시고, 늦은 저녁 여느 때와 다름없이 남편이 병원에 들렀다.

오직 한마디만 한다.


- 씻고 


그럼 나는 아무런 대답도 없이 수건을 들고 세면장으로 향한다.

그날 저녁은 조금 다른 풍경이었다.

여느 때처럼 씻고 나와 머리도 말리지 못하고 아이에게 향하는데 남편이 미처 끄지 못하고 내려놓은 휴대폰이 보였다.


- 보라카이 5 6 xx 항공. 1,460,000


해외여행을 계획하는 모양이다.

여행 사이트에서 동남아 여행을 서핑하고 있었던 흔적을 내 아들의 입원실 침상에서 확인했다.

띵하게 멘붕상태였던 내 머리에 뇌파가 흐른다.

나랑 내 아들이 이렇게 개고생하고 있는데, 넌 해외여행을 계획 중이었던 거니?

동시에 낮에 병원에서 엄마가 내게 했던 말도 오버랩된다.


- 너만 밑바닥 인생을 사는  아니라  아들까지 밑바닥 인생을 살게 만드는 거야.


그래.

지금 살고 있는 동네에는 대한민국  5병원이 10 거리에 있고 부유한 아버지와 그보다  부유한 조부모. 굳이  살부터 어린이집에 가지 않아도 되는 양육환경.

조금  자라면, 잘난 아빠와 함께 해외여행도   있겠지.


가진 거라곤 아무것도 없이 그저 사랑만   있는 가난하고 무능력한 엄마와 사는 것보다 어쩌면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아이와 함께 살고 싶은  그저  욕심이 아닐까.

내가 아들과 떨어져 사는 것이 힘이 들어

내가 아들을 못 보고 사는 것이 견딜 수 없어

그저 내 이기심에 내 멋대로 아이의 인생을 망치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남편은 아이들의 양육에 그다지 관심이 없는 사람이다. 늙은 시부모는 사랑하는 손녀딸 하나 키우기도 벅차하며  아들은 나를 닮아 정이  간다고 한다.

내가 어떻게 해야 할까.

차라리 아이가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나이라면

아이에게 물을 것이다.


엄마보다 널 조금  사랑하는 아빠와

까칠하고 폭력적인 이복누나도 있고 하지만

부유하고 안전한 환경에서 자라고 싶니?

아니면.

많이 가난하고 단칸방에서 최저임금 수준으로 살아야 하지만 엄마의 사랑을 듬뿍 받는 환경에서 자라고 싶니?


삶이 고되고 물질적으로 어려운 상태에서

아이에게 얼마나 사랑을   있을까.


고통스럽다.

이런 선택이 누구의 몫도 아닌  몫으로 남아야 한다는  너무나 괴롭다.


한 번은 그런 일도 있었다.

 질문에 답을 찾지 못한 나는,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집 근처 중학교를 어슬렁거리다가 눈에 띄는 학생에게 질문을 던졌다.


- 학생,  뭐하나 물어보고 싶은  있는데... 시작하는 나의 질문.


착한 학생들은  황당한 아줌마의 질문에  부러지게 대답했었다.


- 답할 가치가 없어요.

왜냐하면 우리 부모님은 이혼하실 리가 없거든요.


내 얼굴이 뜨거워지는 게 절로 느껴지던 기억이다.

이제 결단을 내려야 할 순간이다.

 번도 고민해   없던 일이며, 난생처음으로 부모님과 척을 지며 대립하면서까지 나는 아들을 내가 키우겠다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는 그 고집만으로 상황이 호전될 것 같지 않다.

아무것도 모르는 내 아들.

말도 잘 못하는 내 아들.

뽀얗게 말간 얼굴로 힘들고 아픈 병실에서

오로지 등신 같은 어미만 의지하고 있는 내 아들.

죽을 것 같이 괴롭다.

차라리 죽어버리고 싶다는 생각도 부지기수로 했었다.


결단을 내리자.

그날 저녁 찾아온 남편에게 처음으로 말을 걸었다.


- 아이 네가 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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