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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제나 Aug 16. 2022

# 24.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이별

아들을 남편이 양육하기로 결정하고 나서부터

더 이상 시부모와 마주할 일은 생기지 않았다.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남편은 전과 달리 혹이라도 아들이 낯을 가릴까

퇴근 후 매일 같이 집에 들러 아들과 2~30분 시간을 보내고 돌아갔다.

오히려 이혼을 결정하기 전보다 그 면상을 더 자주 보는 듯했다.

기뻐해야 하나.


집에 와도 이미 끝을 맞이한 낯선 부부는 서로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필요한 말은 오직 비겁한 문자로만 주고받으며 죽음처럼 고요한 침묵의 시간을 보냈다.

그 오랜 정적을 깨고 내가 그에게 말했다.


- 이혼하고 싶지 않다고 했잖아.


그에게서 어떤 답을 들을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며 던진 말은 아니었다.

잠시 침묵하던 그가 말한다.


- 넌 우리 집을 견뎌내지 못할 애야.


대꾸할 말이 생각나지 않는다.

네 말이 맞아.

난 너희 부모와 네 딸을 감당할 수 있는 그릇이 못돼.

그걸 알았다면 처음부터 결혼하지 말았어야지.

서로의 인생을 갉아먹어놓고 있는 대로 상처를 후벼 파 놓고, 내 아들과 네 딸에게 이런 큰 상처를 줘놓고. 뭐? 이제 와서 우리 부모를 견뎌내지 못할 애라고?

참 뻔뻔하기도 하지.

너를 원망하기도 지친다.

너도 나도, 어리석고 비겁한 우리 둘 모두의 잘못이니.

아들 가정에 끊임없이 간섭을 해대며 며느리를 쥐 잡듯 잡은 너희 부모님도 잘못.

가장으로서 중심 잡지 못하고 부모 돈의 노예가  너도 잘못.

의붓딸을 진심으로 품지 못하고, 남자 보는 눈이 더럽게도 없었던 나도 잘못.

잘못 없는 람이 있다면 그의 딸과 나의 아들뿐이니.

모든 것이 어른들의 아둔한 잘못이다.


엄마와의 이별을 아는지 모르는지 나의 아들은 그저 해맑고 눈부시다.

아들은 모르지만 엄마인 나만 아는 마주하고 싶지 않은 슬픈 현실.

이별.


나는 아들이 눈을 뜨고 활동하는 동안은 최대한 

슬픔을 억누르고 감춘다.

괜스레 등신같이 눈물이   같을  화장실로 달아나 슬픔을 변기 물과 함께 흘려버린다.


최대한 많은 사랑을 주고 싶다.

내가 해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내 아들에게 주고 싶다.

그런데 추억을 만들려고 해도 돈이 없다.

주머니엔 고작 몇만 원이 전부이다. 젠장.


안방 화장대에 들어가 남편에게 받았던 액세서리들과   되는 금부치들을 들고 가까운 금은방으로 향했다.

이럴  알았으면 남편한테 순금을 받아놓는 건데.

뼈저리게 아쉽네.

금은방에서 그동안 연애하며 남편에게 받은 금부치들을 팔면서,  액세서리들과 함께 남편을 향해 

남아있던 조금의 미련마저 함께 떨어 버렸다.

  되는 행복했던 찰나마저도.


70만 원.

내 수중에 남아있는 전 재산이다.

이제 이 70만 원과 오빠가 다달이 보내준 생활비로

 아들에게 최고의 기억을 만들어  것이다.


고맙게도 오빠네 부부가 주말마다 와줬다.

아들을 데리고 동물원에도 가고 공원에도 갔다.

아무것도 모르는 천진난만한 아들은 뜨거운 뙤약볕에도 오랜만에 외출이 신이 나나보다.

매일 엄마와 둘이 지내다 여러 사람이 시끌벅적하니 그것도 즐거운 모양이었다.

아들은 넓은 잔디밭에서 하루 종일 비둘기를 쫓으며 녹초가  정도로 뛰어다니더니 그 사랑스럽고 예쁜 뺨이 복숭앗빛으로 발갛게 물들었다.

저 사랑스러운 아이를 이제 매일같이 안을 수도 만질 수도 없다고 생각하니 등신 같은 어미는 또 가슴이 미어진다. 죽을 것같이 괴롭다.

맹세코 열세 살에 엄마를 백혈병으로 떠나보낼 때보다 몇 배는 더 괴로운 듯하다.

정말 억장이 무너져.


아들과 둘만 남은 평일에는 동네 엄마들과 어울려 키즈카페도 가고 집 근처의 놀이터나 가까운 공원에서 함께 시간을 보냈다.

한참 아이들 사이에서 전염병이  시기라 엄마들 모두 예민했을 텐데도 곧 다가올 나와  심장의 

이별 앞에 모두들 희생을 각오해 줬다.

고마워.


난 금붙이를 판 돈으로 아들과 둘이 수족관에도 가고 놀이동산에도 갔다.

아직 수족관이나 놀이동산이 즐거울 나이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아이가 행복해하고 기뻐하길 바라면서.

이제 17개월  아들은 엄마와의 슬프고도 행복한  순간을 영영 기억하지 못하리라.

그렇지만 아이는 기억하지 못할지라도 나는 엄마니까 어떻게든 무엇이든 해야만 했다.


아들이 태어났을 때 가까운 사진관에서 아들의 성장앨범을 계약했었다.

 패키지에는 산후조리원에서  태어났을 때의 사진, 50 사진, 100 사진,  사진, 그리고 3 때의 사진까지 찍어주기로 계약이 되어 있었다.

돌 사진까지는 남편과 아들과 함께 했지만

아들이 3세가 되었을 때 나는 아들 곁에 없다.

사진관에 전화를 했다.


- 혹시 성장앨범 계약했는데요.

사정이 있어서 그런데 3 사진을 지금 미리 앞당겨 찍을  있을까요?


- 어떤  때문에 그러신가요?


- ... 이민을   같아요.


- 그럼 다음 주 주말 촬영 가능하신가요?

남편분까지 모두 같이 오실 거죠?


- .. 아니요. 다음  촬영은 평일이든 주말이든 

상관없는데요. 남편은 이미 출국해서 저랑 아이 둘만 찍을 거예요.


거짓말이 어쩜 이리 술술 나오는지.

아들과 둘이서 오래도록 남을 사진을 찍어놓고 싶었다. 인터넷으로 저렴한 티셔츠  장을 같은 디자인으로 구입했다.

사진 찍을 때 아들이랑 둘이 입어야지.

아들의 띠인 원숭이 모양에 탄생석인 작은 다이아몬드가 박힌 미아방지 실버 목걸이도 주문했다.

목걸이 뒷면에 내 전화번호를 넣어서.

혹시라도  집에서 우리의 면접을 방해해 아들과 영영 헤어지게 되면 이 번호를 보고 엄마한테 연락할  있길.


나는 그저  아들이 엄마에게 버림받은 것이 아니라 세상  누구보다 아들을 사랑하는 엄마가 어쩔  없이 사랑하는 아들을 돌봐주지 못하는 상황이란  아이에게 변명하고 싶었다.

하지만 아이는  말을 이해할 수도, 기억할 수도 없는 17개월 아기이다.


8월의 어느 날.

서른여섯 번째 내 생일.

생일이었지만 가족도 친구도 나의 생일을 축하해 

주러 오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이런 날 아들과 그저 집에 둘이 있자니, 담담한 척하려 했던 마음도 괜스레 무너질 것 같다.

무척 더운 여름날이었지만 아들을 아기 띠로 안고 가까운 곳에 놀러 가기로 했다.


우리가 함께  곳은 내가 무척 좋아하는 장소였고, 남편과의 추억이 서려있는 덕수궁.

초록한 여름 잔디가 무성한 덕수궁 잔디에서 아들과 둘이 행복한 추억을 남길 것이다.

이제 완벽히 컨디션을 되찾은 우리 아들은 잔디밭에서 뛰고 걷고 달린다.

도대체 비둘기를 왜 이렇게 좋아하는 건지.

비둘기들을 날려 보내며 깔깔대고 웃는 모습이 

너무나 사랑스럽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행복하고 슬픈 감정이 한 번에 몰아친다.

하지만 오늘은 절대 울지 않을 거야.

얼굴이 벌게져서 뛰어다니는 우리 아들이

관광  외국인들에게도 꽤나 사랑스러워 보였나 보다. 아들을 안고 영어로 말을 건다.

글로벌한 사랑꾼.

 아들 : )


한참을 뛰노니 배가 고픈지 찡찡댄다.

나는 아들을 안고 근처에 아기가 먹을 수 있는 음식을 파는 곳이 있는지 살펴보았다.

마땅치가 않았다.

덕수궁 근처를  바퀴  끝에 점심 메뉴를 순두부로 결정했다.

들깨 순두부랑 떡갈비를 주문해서 아들이랑 함께 먹어야지.

뙤약볕에서 에너지를 모두 쏟아냈는지 식당에 들어선 아들은 아기띠 속에서 곤히 잠이 들어있었다.

아이를 옆에 눕히고, 혼자 먹는 생일날의 순두부.

밥을 먹으면서 혼자 울고 있는 아기 엄마가 짠했는지 순두부집 사장님은 조용히 따뜻한 보리차를 

내려놓았다.


- 체하니까 보리차부터 마셔요.


순두부  숟가락을 뜨다 보니 곤히 잠들었던 아들이  잠에서 깨어 해맑은 눈으로 엄마를 바라본다.


. 사랑스러워.


그래. 이 짧았던 결혼생활이 나에게 꼭 지옥이었던 것만은 아니야.

너의 그 웃는 얼굴을 볼 수 있다면 엄마는 어떤 것도 견딜 수 있어.

나는 다시 그때 그 시간으로 돌아간다 해도,

너희 아빠를 만나고 사랑할 거야.

그래야만 너를 만날 수 있으니까.

하지만 아들아.

너를 만나는 대가가 엄마는 참으로 지독하게 아팠단다.


잠에서  순두부와 떡갈비를 오물거리는 아들을 보니  모습이 사랑스러우면서도 가여워 나는    울음을 쏟아냈다.

눈물로 가득한 식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려고 나서는데 친한 언니가 전화를 한다.


- 제나야 오늘 생일이지?

지금 어디야? 언니 지금 퇴근하는데 우리 집에 가자!

가서 저녁 먹고 아이들 같이 놀게 하면 어때?


- 언니, 마침 언니 회사 근처야!

좋아요. 집에 같이 가요!!!


오늘도 곁에 둔 좋은 사람 덕에 잠시나마 외로움을 잊어낸다.

우리 집에서 택시를 타고 30 정도 걸리는 거리에 사는 친한 언니다. 언니 집에서 아이들이 노는 동안 언니는 내게 미역국을 끓여줬다.

말로 표현할  없는 고마움과 슬픔이 뒤범벅되어 미처 수저를 들지 못하고 멍하니 미역국만 바라봤다.


- 힘내, 제나야.    거야.


그리고 내 손에 쥐여 준 택시비까지.

언니 고마워,

정말 고마웠어.


시간은 점점 더 빠르게 흘러갔고 계약해 놓은 오피스텔 집주인에게 연락이 왔다.

짐이 빠졌으니 청소를 하러 오라고.

입주청소 따위는 부를 형편이 못되어 아들을 아기 띠로 안고  시간 동안 지하철로 이동해 내가 앞으로 혼자 살아갈  집에 도착했다.

부모님과 함께 집을 청소하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아들은 그저 신이  좁은 방을 뛰어다니며 깡충거린다. 그러다 피곤해졌는지 1.5룸의. 5방에서 

베개도 이불도 없이 찬 바닥에 모로 누워 잠이 들었다. 모습을  아버지가 꽤나 가슴이 아프셨나 보다. 화장실로 들어가 눈물을 훔치신다.

나 역시 찬 바닥에 누워 곤히 잠이 든 내 아들을 보니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억장이 무너진다.


나는 알지만 내 아들은 알지 못한다.

 엄마와 헤어져야 한다는 것을.


하루하루 아들에게 최선을 다하고 내게 남아있는 사랑이란 감정을 모두 담아 아들에게 내어주려 노력했다. 시간이 천천히 가길 기도했지만, 안타깝게도 시간은 나의 마음을 기다려주지 않았다.


그렇게 약속한 9월 25일을 하루 남기고,

아들과 헤어지기 전날.

 동에 사는 가장 친한 엄마네 집에서 아이들을 함께 먹이고 놀게 하고 목욕을 시킨 , 늦은 저녁 집으로 돌아와 아들과 둘만의 시간을 보냈다.

아들은 이제 막 18개월이 되었다.

사람이 눈물을 흘리는 것을 봐도 그 깊은 감정을 헤아릴 수 없는 나이다.

아들의 얼굴을 만지고 쓸으며 그 조그맣고 보드라운 살결을 안고 또 안았다.

살면서 지금 이 순간을 얼마나 후회할지.

그렇게 아들을 보고  보고 안고  안았다.

내 볼을 몰랑한 아들의 볼에 갖다 대며, 아들의 체온을 오롯이 느끼고 싶었다.


아들아,

엄만 정말 너를 너무나 사랑해.


늦은 저녁, 현관의 번호 키를 누르는 소리가 들려온다.

띠. 띠. 띠. 띠.

남편이 아들을 데리러 왔다.


- 내일 너 이사해서 연차 내려고 했는데 잘 안됐어.

 이사 잘해라.


아들을 안은 남편은 아들과 함께, 그렇게 현관문을 나섰다.

아빠 품에 안긴 조그만  심장은 조금 있으면  엄마를   있을  알고 저렇게 해맑게 웃으며 엄마에게 빠이빠이를 하는 거겠지.


 심장이 반짝이며 웃는다.


아들은 나와 함께 보냈던, 둘 만의 시간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이곳에 시집와 내 뱃속에 있을 때부터

매 순간 오롯이 너와 나, 단 둘 뿐이었다는 것을.

엄마가 얼마나 너를 많이 사랑하는지,

너를 지키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그리고 너와의 헤어짐은 엄마에게 또 다른 지옥이라는 것을.


아들은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그게 가장 나를 슬프게 한다.

나와 함께 했던 그 모든 순간을 기억할 수 없다는 것.


남편은 나의 슬픔은 자기와는 상관없는 일인 .

조금의 여운도 남기지 않고  소리가 나게 현관문을 나섰다.


저 사람, 나를 뜨겁게 사랑했던 그 사람이 맞는걸까?

그의 뒷모습조차 차갑고 냉정하다.


그렇게 길고 긴 슬픔의 밤이 시작된다.

오늘 밤은 단 한숨도 잠들 수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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