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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제나 Aug 24. 2022

# 25. 나는 그렇게 원래의 내 자리로 돌아왔다

오전 8.


잠을 자고 싶어도 한숨도 잘 수 없었다.

아이를 남편에게 보내고, 내 몸의 모든 수분이 눈물이 되어 흘러내렸다.

 이상  기운조차 없어졌을  나는 아직 아이의 체취가 남아있는 침대에 누워 끊임없이 아이가 누워있던 자리를 만지고  만졌다.


죽음처럼 고요한 시간이 너무도 천천히 흘러갔다.

그렇게 해가 뜨고, 나는 마지막으로 이곳에서 반짝이는 한강의 아침 햇볕을 바라보리라.

상념에 젖어 베란다  풍경을  놓고 바라보고 있는데 초인종 소리가 들린다.


-이삿짐센터입니다.


일찌감치 출발하시겠다던 부모님보다 한발 앞서

미리 계약해놓은 이삿짐센터가 먼저 도착했다.

이미 소파나 장롱, 에어컨처럼 내가 이사할 좁은 공간에 들어갈  없는 덩치가 있는 물건들은 처분한 뒤여서 짐도 별로 없었다.


휑해진 거실 한가운데 서서 나는 아직도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휑해진 가슴을 안고 멍하니 서있을 뿐이다.

바삐 몸을 움직여 짐을 정리하고 이삿짐센터 직원들에게 요리조리 설명도 하고 지시도 해야 하지만

나는 그저 넋이 나간 여자처럼,

심장 어디 한 귀퉁이가 뜯겨져 나간 여자처럼,

멍하니 서서 그들이 열심히 설명하는 문장들을  귀로 흘려보내며


-네네, 그렇게 하세요.


성의없는 대답만 늘어놓았다.

이삿짐센터가 한참 바삐 짐을 싸는 사이.

부모님이 도착하셨다.

역시나 5분 거리에 사는 시부모란 작자들은 코빼기도 내비치지 않았다.

그럼 그렇지. 넌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구나 안제나.

그런 얼토당토않는 기대 따위를 하다니.

가족이란 이름 아래 함께 할 때도,

나에게 중요한 일이 일어났던 그 어떤 순간에도

나를 외면하고 등한시했던 그들이,

이제 남으로 돌아서는 전 며느리의 이사를 지켜보러 올 리는 만무하다.

아둔한 .


짐이 별로 없어서인지 이삿짐 포장은 쉬이 끝났다.

고작  시간 반도 채 지나지 않아 나의 짐은 모두 작은 트럭으로 옮겨졌다.


텅 빈 집에 서있다.

아버지는 뒤로 눈물을 훔치시며 '에잇' 한마디로 불편한 감정을 드러내시더니 현관문을 힘껏 발로 차시곤 이삿짐센터 직원들과 나가버리셨다.


나는 무엇이 미련이 남아있던 걸까.

한참을 거실에 서서 집안을 정성스레 돌아본다.

이곳에는 아직도 내 아들의 행복한 웃음소리가 남아있다.

남편과 아들,  식구가 소소히 기뻤던 몇 안되는

찰나들도 곳곳에 서려있다.

나는 이곳에서 신혼의 행복을 기대하며 소소한 신혼살림들을 채워 넣고 커튼을 달고, 가족을 위한 요리를 하고 그렇게 남들처럼 평범한 결혼생활을 시작했었다.

나를 사랑해 주는  남편과, 내가  자신보다  사랑하는  아들과 행복하고 소소한, 평범하고 단정한 그런  가정의 아내가, 어머니가 되고 싶었다.

어쩌면  모든 것은 내가  의붓딸 아이를 진심으로 끌어안고 사랑하지 못했기에 그 아이에게 지은 죄를 내가  아들과 떨어져 살아야 하는 벌로서 받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가정이 정말 갖고 싶었고, 편안하고 안정된 가족을 꿈꿨지만 나의 소박하고도 헛된  꿈은 그렇게 가벼이, 2년의 시간도 채우지 못한  허무하게,

아프게 그렇게 끝나버렸다.


베란다의 한 귀퉁이에 화분을 올려두었던 조그마한 나무 사다리가 있다.

나는 따로 챙겨놓았던 주머니 속의 물건들을 그곳에 하나씩 올려놓았다.

시어머니가 주셨던 나무 묵주,

시아버지가 주셨던 옛 재봉틀,

아이의 체온계며 네블라이저며, 아이를 보낼  메모까지 붙여 꼼꼼히 적어보냈지만 미처 챙기지 못한 아이가 좋아했던 장난감,

그리고 우리의 가족사진까지.


내가 이곳을 떠나고 나면, 아마도 남편은 다음 세입자가 들어오기  한 번쯤  집을 다시 찾아올 것이다. 그때  물건들을 발견할  있겠지.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은 텅 빈 집의 한 가운데서

부모님과 이삿짐센터 직원들도 모두 내려가 나를 기다리는 와중에 나는 나의 짧고도 강렬했던, 하지만 너무나도 아팠던 나의 결혼생활과 그렇게 영원한 

이별을 고했다.


나의 마음은 으스러지고, 나의 영혼은 상처로 얼룩졌지만 여전히 오늘도 한강은 눈부시게 아름답다.


이제 정말 안녕이다.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으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니 친하게 지냈던 아들 친구의 엄마들이 아기들을 유모차에 태우고 마중을 나왔다.

내가 아들과 병원에 입원해있을 , 나에게 아기용품과 보호자 용품을 챙겨주었던 언니는 그 여린 마음을 숨기지 못하고 계속해서 눈물을 훔친다.

평소 눈물을 잘 보이지 않던 엄마도 끝내 고개를 돌리고 눈물을 보이신다.

어젯밤 내내 온몸으로 울어서인지, 나는 더 이상 눈물이 나지는 않았다.

그저 괜히 강인한 , 아무렇지 않은 ,


- 언니  지내.  괜찮으니까 울지 .

앞으로 지금처럼 자주는 못 보더라도 종종 소식 전하며 지내자.

혹시라도 왔다 갔다 하다가 우리 아들 보게 되면 사진이라도 몰래 찍어 보내주는  잊음 안돼!!!

그동안 정말 너무 고마웠어 모두들.


마지막 인사를 끝으로 나는 아버지의 차에 올라 그곳을 떠났다.

살던 곳에서 이사할 집까지는 약 40km.

차로는 한 시간이 채 안 되는 거리지만, 지하철로는 두 시간 가까이 되는 거리이다.

한참 고속도로를 달려 커다란 고물상을 끼고 도니

앞으로 내가 혼자 살아가야 할 조그마한 오피스텔이 보인다.


현타가 온다.

나는 하루아침에 한강이 보이던  집에서 고물상 , 술집이 즐비한 대로변  귀퉁이의 작은 오피스텔로 주거지가 바뀌었다.

인생 참.

사람 팔자 뒤웅박이라는 옛말이 온몸으로 절실하게 와닿는다.


굵직한 짐들은 다 처분하고 왔음에도 불구하고

침대며 냉장고며, 세탁기.

모두 오피스텔에 들어갈 사이즈가 아니다.

사다리차를 부르지 않아 현관문으로 짐이 들어가야 하는데 냉장고 문짝을 떼어내도 들어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모두들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 보아도 답이 나오지 않아  냉장고를 급히 처분하고 조그만 중고 냉장고를 사야 하나 고민하던 그때,

냉장고 문짝도 떼고, 현관 문짝도 떼어 겨우겨우  커다란 냉장고를 12평의 조그마한 오피스텔에 욱여넣었다.

여기저기 찌그러지긴 했지만, 냉장고 때문에 이삿짐센터 직원들도 워낙 고생한 터라 누굴 원망할 수도 없었다.

사실 냉장고가 찌그러지든 말든 그런 소소한 일은 관심 꺼리도 되지 않았다.

앞으로  인생이 진짜 걱정인데 그깟 냉장고쯤이야.


다음은 나의 라지 킹사이즈의 매트리스.

전 남편은 186cm에 85kg의 건장한 체격을 갖고 있었다.

신혼살림을 보러 다닐 때도(결혼 전에는 몸만 와도 된다더니) 자기는 킹사이즈 침대에서  자니 라지 킹사이즈로 침대를 준비해달라고 요청했었다.

때문에 유명 브랜드의 가장  침대를 사고 이불이며 침대커버며 침대 사이즈에 맞추느라  꽤나 들었던 기억이다.

여하튼 이제 혼자서는 그 침대에서 떼굴떼굴 굴러다니고도 남을 수 있게 되었다.

문제는  매트리스도 현관으로 들어가지 않아 구기고 접고 성인 남자  명이 붙어 용을  끝에 겨우 집안으로 들여왔는데, 이삿짐센터 아저씨가 많이 힘이 드셨는지 한마디 하신다.


-  침대에선 여섯 명이 자고도 남겠어요 껄껄.


남편이 끝내 욕심냈던 나의 자그마한 식탁,

그리고 아이 옷을 넣어두었던 서랍장,

혼수 준비할  나는 괜찮다는데도 엄마가 끝끝내 사주셨던 큰 사이즈의 고급 화장대까지.

다행히 버리는 물건 하나 없이, 작은 나의 새집에

테트리스처럼 물건들이 차곡차곡 채워졌다.

도배를 하고 오지 않아 중간중간 흠집 난 벽에는 아들의 사진을 가득 채웠다.

장식장에도, 책장 위에도, 벽면에도

어딜 봐도 내 아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몸은 떨어져 있어도 언제나  보고 싶어.


이사를 마치고 대충 정리를 끝내고 간단히 청소를 했다.

입주하기 전 부모님과 청소를 해놓은 데다,

좁은 집을 가구와 가전제품으로 가득채우니

발디딜대도 없이 좁아져 청소할 공간도 많지 않았다.

부모님을 모시고 밖에 나와 돼지갈비를 먹는데,

이사하느라 빠졌던 혼이 다시 들어와 또 눈물샘이 슬슬 시동을 건다.

그렇게 울었는대도 눈물이 마르지 않았나보다.

식사를 마친 부모님과 별 다른 얘기는 할 수 없었다.

부모가 그렇게 뜯어말렸던 재치자리로 시집가 얻어맞고 시집살이하며 살다가 끝내 2년도 못살고 쫓겨난 마당에 서로가 서로에게 무슨 말을    있었을까.


나의 작은 집으로 돌아온 엄마는 바닥에 앉을 공간도 없어  침대에 걸터 앉더니 핸드백에서 하얀 봉투 하나를 꺼내신다.


- 이걸로   생활비하고, 오늘  안와도  .


봉투를 열어보니 오만원짜리 열장이 단정하게 들어있다.

오십만원.

이제  수중에 있는  재산은   오십만 원이 전부이다. 그리고 나는 이곳에서 새롭게 살아가야 한다.


부모님이 떠나고 나니 아들의 빈자리가 더 뼈아프게 느껴진다.

밥은 먹었을까.

엄마가 안 보여서 울지는 않았을까.

아프지는 않을까.

 잊으면 어쩌지.


경력단절, 이혼녀인 내가 

돈을 어 먹고 살아야 하는 두려움보다

이 좁은 공간에서 앞으로 나 홀로 살아가야 한다는 막막함보다

이제  살배기  아들에게 잊혀지는 것이 그 무엇보다 두렵고 서러운 이혼녀가 이곳에 있다.


이제부터 나는 철저하게 혼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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