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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제나 Jun 30. 2022

#16. 지옥의 끝에 또 다른 지옥이 있다.

언제였더라.

아마도 이혼 전 마지막 추석으로 기억된다.

여느 명절 때처럼 나는 아들을 데리고 남편 없이

시댁에서 음식 준비를 했다.

다른 점은 어린 아들이 있으니 아들을 업고 일을 한다는 것.

시아버지는 뉴스를 퍼레이드로 보며 티브이에서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딸아이는 깐족깐족 거리며

- 왜 우리 집은 애미들만 일해?

약을 올려댔고, 첫 명절에는 기막혀 아무 말도 못 하고 서있던 나였지만 이제 어느 정도 여유가 생겨 맞받아친다.


- 그래~oo야 너도 나중에 커서 꼭 아빠 같은 사람한테 시집가~~ 알았지?

- 싫어!

- 왜 아빠 잘생기고 부자고 똑똑하고 너무 좋다며 : )


송편을 찐다며 마당에 있는 소나무에서 솔가지를 따오라고 하기도 하고,

잡채에 초록색이 없다며 텃밭에서 부추를 따오라고 하기도 했으며,

갈비찜에 밤을 넣어야 하니 밤을 주워오라고 하기도 하는 여느 때와 별다를 바 없이 특별한 것 없는

추석 연휴였다.


이틀간 남편 없이 아들과 서재에서 잤다.

남편이 오고 나서 하룻밤을 더 잤다.

남편에게 부탁을 했다.


- 제발 부탁인데, 이번 명절에는 연휴 지나고 다음 날은 집에 가자. 일이 좀 있다고 해봐, 일이 있어서 오늘은 올라가야 한다고.

나 삼일 자고 당신 하루 잤으면 됐잖아.

어머니께 제발 잘 둘러대줘봐 부탁이야 응?

- 알았어


그래, 이번에는 제발 잘 좀 해봐.

나 너무 힘들어. 허리가 아파 죽겠으니 제발 좀 부탁한다!

한번 믿어볼게!!!


믿을 사람을 믿어라,

이쯤 되면 너도 등신이야 안제나.


- 엄마, 얘 힘들다는데 우리 그만 올라갈게.


응? 이건 또 뭔소리야.

야! 정신차려 뭐라는거야 지금?


- (드러누워있던 시어머니가 용수철이 튕기듯 벌떡 일어나며) 뭬야? 가족이 왜 가족이니? 함께 있어야 가족이지?

(어머니, 제가 가족이긴 했나요? 넌 남이라면서요. 넌 남이다. 말씀 하신게 불과 얼마 전이에요.)

아무리 시집이라면 시금치도 싫다고 하지만,

명절인데? 뭐?

- 어머니. 아기도 너무 어리고 해서 이번 명절만 먼저 올라갈게요. oo 아빠는 다시 내려보낼게요. 어머니.


그렇게 해서 명절 연휴 3일 차, 나와 아들만 실어다 준다는 조건으로 우리는 우리의 집으로 향했다.

차에 오르려는 찰나 시어머니 왈,


-다시는 그러지 마래이!


뭘 그러지 말라는 건지 알 수는 없었으나,

죄송합니다를 몇 번 연발하고 나서야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9시가 넘은 늦은 시간이었다.

연휴 끝 무렵의 고속도로는 무척 한산했고 이동하는 차량은 거의 없었다.

그렇다고 해도 아직 돌이 지나지 않은 자신의 아들이 타고 있는데, 이 인간이 갑자기 레이서 흉내를 낸다. 아무리 운전병이었어도, 평소 취미가 바이크 타는 거였어도, 아무리 자기 엄마 집에 도로 가고 싶었어도, 차 안에는 자신의 아내와 어린 아들이 타고 있었는데 이 되먹지 못한 인간은 한밤중 레이싱을 시작했다.


시속 150km 가 넘었다.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는 좌우로 한껏 휘청거리며, 고장 난 오뚝이처럼 뒤뚱대기 시작했지만,

남편은 아랑곳이 없었다.

앙다문 입과 멈출 줄 모르는 가속만이 그가 얼마나 화가 나있는지 지레 짐작하게 했다.


1시간 반이 넘는 거리를 40분 만에 도착하고서

우리가 살고 있는 아파트 13층 문 앞에 3박 4일 시댁에서 머무르기 위해 바리바리 쌌던 짐들을 내려놓더니, 잘 자란 말도 없이 아들과 나에게 눈길도 주지 않은 채 제 엄마의 집으로 다시 달려갔다.


이제는 서럽지도 않다.

곤히 잠든 아들을 침대에 뉘여놓고, 맨발로 나와

찬찬히 짐을 옮기고, 씻지도 못한 몸을 아들 옆에

조용히 뉘여본다.

모자라고 험악한 부모 밑에서 아들만큼은 건강히 잘 자라주었다. 두어 번 병원에 입원을 하고, 폐렴으로 고생하며 그때마다 번번이 어린 아들에게 네블라이저를 강제로 입에 대야 했던 못나고 죄 많은 엄마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비교적 밝고 씩씩하게 잘 자라 어느덧 돌을 맞이하게 되었다.

발육이 좋은 편이어서 돌이 되기도 전 10개월 차부터 자박자박 잘도 걷던 예쁜 내 아들.

아들.

이름만 떠올려도 가슴이 무너질 것 같은

내 유일한 아킬레스건이다.


내 주변에서도, 또 남편의 친척들도

우리의 재혼 사실을 아는 이는 거의 없었다.

내 지인들과 친척들은 내가 초혼인 남편과 결혼한 것으로 알고 있었고 남편의 측근들은 가까운 친척과 친구 몇을 제외하면 남편의 이혼 사실조차 몰랐다.

나는 그저 그렇게 그의 전 와이프 자리를 대신하고 있을 뿐이었다.


때문에 돌잔치를 성대하게 치를 수는 없었기에 직계가족이 모여 조촐히 돌잔치를 치르기로 했다.

서울의 한 고궁에서 촬영도 하고, 소박하지만 깔끔하고 고급스러운 한정식집을 예약해 가족만의 조용한 돌잔치를 치렀다.

돌잔치에 들었던 200만 원이 넘는 비용은 남편의 카드로 지불했는데, 남편은 아마도 돌잔치 때 받는 축의금으로 카드값을 대신하고자 했나 보다.


그런데 웬일,

우리 부모님은 돌 팔찌 세 돈과 현금 100만 원을,

우리 오빠 부부는 돌 반지 한 돈과 현금 50만 원을,

서민인 우리 집은 이러했는데, 그렇게 부자라고 자랑하던 시부모님은 고작 돌 팔찌 세 돈이 전부였다.

남편은 당황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돌 팔찌가 담겨있던 주머니를 다시 한번 탈탈 털어보는 것으로 자신의 눈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신했다.


돌잔치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현금을 잔뜩 기대했던 남편은 자기 부모의 욕을 시작하더니 집에 들어서자마자 그 쓸데 없는 입을 놀리기 시작했다.


- 아버님이 주신 거랑 형님이 주신 돈 다 내놔

- 무슨 소리야? 아까 못 들었어?? 엄마가 나랑 oo이 필요한 거 사서 쓰라고 주신 거잖아.

- 아 됐고 카드값 내야 되니까 다 내놓으라고!!!

- 싫어, 이건 엄마가 나 쓰라고 준거야. 오빠가 생활비도 안 줘서 나 현금 없는 거 알고 부모님이 주신

건데 이걸 왜 내놓으라고 해?

- 아 몰라 내놓으라고!!!

- 그럼 어머니가 주신 돌 팔찌 내놔.


이렇게 부모님과 오빠에게 받은 150만 원을 갈취당했다. 나에게 비상금은 1원도 없다. 젠장.

때마침 예의 그 무서운 휴대폰 벨 소리가 또 울린다.

보나 마나 어머니겠지.


- 너희 돌잔치 때 쓴 과일 다 못 먹지 않니?

  유모차에 싣고 와라.

- 어머니가 과일 갖고 오래.

- 주지 마! 돈도 안 주는데 과일을 왜 달래!


잔뜩 심통이 난 남편을 뒤로하고 아들을 유모차에 태우고 유모차 짐칸에 수박이며 멜론이며 잔뜩 실어 중간에서 시어머니와 만났다.

과일만 받아들고 얼른 들어가는 시어머니.

휴우, 이것으로 돌잔치도 마무리되나 보다.


돌잔치가 지나고 얼마 되지 않아 어린이날과 어버이날, 내가 챙겨야 할 날들이 돌아왔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시부모님이 손녀딸만 데리고

일본으로 4박 5일 동안 여행을 가신단다.

올레!!!! 이 말은 4박 5일간 나는 자유라는 말이다.

내 마음대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다.

일본에 가시니 전화도 드리지 않아도 된다!


행복해... 흑. 너무 행복해서, 숨통이 트여서 눈물이 나려고 하네. 훌쩍.

없는 형편이지만 여행 가신다는데 조금이라도 용돈을 드리는 것이 맞을 것 같아 남편에게 얘기하니,

주지 말란다. 뭐 하러 주냐고 한다.

그러더니 딸아이에게


-가서 아빠 선물 꼭 사달라고 해!


한심한 인간, 쯧쯧.

하는 수없이 꿍쳐놓은 쌈짓돈을 꺼내 은행에 가서 엔화로 바꿔 봉투에 담았다.


-어머니, 얼마 못 넣었어요. 가서 맛있는 거라도 사드세요.


그렇게 우리 가족끼리 단란하게 보낼 수 있는 날들이 펼쳐질 거라 기뻐하며 이륙하는 일본행 비행기를 행복한 맘으로 떠나보냈다.

이제 남편아, 퇴근하면 바로 집으로 와서 아들 좀 봐주렴. 나도 좀 천천히 씻고 천천히 먹고 그렇게 있어보고 싶다.

제-발.


시어머니가 한국 땅에 없자, 남편은 역시 퇴근하고 바로 집으로 귀가했다. 그런데 저녁을 먹자마자 대뜸 시아버지 집에 가야 한다는 것이다.


- 아버님 집에 왜가는데? 이 밤중에?

- 아빠가 닭이랑 개밥 주래. 같이 가자! 아들도 데리고!!!

- 뭐? 개밥? 진짜 개밥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시간이 몇 신데 지금 아기를 데리고 거길 가?

혼자가!!!


참으로 대단하지 않을 수가 없다.

아들과 며느리를 떼어놓는 방법도 어쩜 이리 신박할까. 머리가 참으로 좋은 두 노인네다.

개밥이랑 닭 모이라니.


주변에 아무도 없나 보지?

개밥을 미리 4일 치 주고 오면 큰일이 나는 거지?

착실한 남편은 그렇게 4박 5일 동안 엄마 아빠가 시키는 대로 매일같이 퇴근 후 40킬로를 밟고 시골집에 내려가 개밥과 닭 모이를 주었다.


일본에서 시부모님과 딸이 들어오고 며칠 뒤,

어버이날이 다가왔다.

어버이날에는 친정아버지가 연차를 내셔서

친정에는 어버이날 당일에 가기로 하고

그전 주말에는 시부모님을 모시고 가까운 식당에서 식사를 대접하기로 했다.

이미 그 사이 몇 번을 다투고 살림을 부수고 고성과 폭력이 난무했던 부부 사이라 서로를 향해 고운 말, 다정한 말 한마디 하지 않는 깨져버린 부부 사이였다.


그래도 할 도리는 해야지.

시부모님이 아시면 절대 안 돼.

우리 부모님이 아시는 것도 절대로 안 돼.

메서드 연기를 보여주자!

나는 여우주연상 감이니까!


굳은 결심을 한 채 시부모님을 모시고 집 근처 가까운 해물탕 집에 가서 해물탕 대자와 해물찜 대자를 주문하고 상차림을 하는데, 이제 막 걷기 시작한

아들은 요리조리 움직여대며 물을 엎고

숟가락을 들고 난리 블루스를 치기 시작했다.

눈치가 보이기 시작한 나는 아들을 엎고 밖으로 나와 근처 공원에서 꽃구경도 시켜주고 뛰놀게 하며 아이를 돌보고 있었다.

한참 뒤, 남편이 나와 말한다.


-너도 가서 밥 먹어


빨리도 생각해 주네.

기쁜 맘으로 한술 떠보려 식당으로 돌아와 보니

먹다 남은 콩나물 대가리와 새우 대가리, 게 껍데기, 미더덕 한웅큼이 눈에 띈다.

웅? 뭘 먹으라는 거지? 새로 시켜줄 건가?

설마 내 건 덜어놓지 않은 건가?

나는 게 껍데기를 씹으라는 건가?

식욕이 가셨다.


그리고 어버이날,

오랜만에 하루를 꼬박 친정에서 보낼 수 있게 시어머니 허락을 받았다.

다행히 남편도 쉬는 날이다.

부모님이 우리 아들이 너무 보고 싶다며 빨리 오라고 재촉하시는데 남편은 오후 3시가 다 되도록 외출 준비를 하지 않는다.

침대에 누워 하루 종일 새 폰을 만지작거리는 통에 속에서 천 불이 나지만 집에서 손주와 딸이 보고 싶어 기다릴 부모님 생각을 하며 참고 참고 또 참아본다.


-안 갈 거야?

-이것만 하고

-이것만 하고라고 한 게 몇 시간째잖아,

  안 갈 거냐고?

-이것만 하고 간다고


싸움의 시작이었다.

귀에 꽂고 있던 이어폰을 집어던지며 싸움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고 결국 그날, 남편은 우리 부모님을 또 한 번 바람 맞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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