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2월 25일.
결혼하고 두 번째, 내 아들이 태어나고 처음으로 함께 맞는 크리스마스였다.
그리고 이날은 내 결혼식에 부케를 받은 친한 친구의 결혼식이기도 했다.
결혼식은 백 프로 참석하지 못한다.
시어머니는 가족끼리 함께 축하해야 할 기쁜 성탄절에, 뭐 정확히 말하면 가족을 위해 나의 희생이 필요한 날에, 나 혼자 친구의 결혼식을 가는 일은 허락하지 않았다.
미리 친구에게 그날 중요한 일정이 있어 참석하지 못할 것 같다고 사정을 얘기하고 양해를 구한 터였다.
속이 많이 쓰리다.
별스러운 크리스마스를 맞이하지는 못하더라도
오전에는 성당에 가서 미사를 드리고
오후에는 가족들과 케이크라도 자르며,
아들이 태어나 처음으로 맞이하는 크리스마스를 축하할 계획이었다.
그래, 나는 다 계획이 있었어.
그런데.
핸드폰이 울린다.
벨 소리조차 석연치 않다.
이 불길한 예감...
시어머니였다.
- 지금 동네 아줌마들 애들 데리고 연극 보러 간다고 하니 너도 얘 데리고 연극 보고 저녁까지 먹이고 들어와라. 네 아들은 내가 봐줄게.
어머니...
그 아주머니들은 저 안 좋아해요.
새엄마라고 은따시키고 껴주지도 않고요.
그 아이들도 어머니 손녀딸 안 좋아하고요.
누가 반긴다고 오늘 같은 날 그 모임에 가라는 건가요?
오늘도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반항의 멘트는 침과 함께 삼킨다.
이제 8개월쯤 된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내 아들은
오늘도 엄마의 모유는 먹지 못한다.
미리 짜놓은 젖도 없는데. 분유로 아이 끼니를 챙겨 남편과 함께 시어머니 집으로 향한다.
시아버지는 진즉 시골에서 올라와 시어머니 집에 함께 계셨다. 아들을 맡기고 딸아이만 데리고 나와 아무도 반기는 이 없는 모임에 가야 한다.
모두가 행복하고 즐거워야 할 성탄절에, 왜 나는 이러고 있어야 하나.
아 맞다. 난 죄인 이랬지.
엄마들은 연극을 보지 않는다.
아이들만 극장으로 들여보내고, 엄마들은 삼삼오오 모여, 어디 학원이 유명하다더라,
누구네 집은 벌써 수영을 시작했다더라 하는 엄마들만의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연극이 끝날 때까지 쭈뼛거리며 두 시간 남짓한 시간을 복도에서 기다린다.
다행히 내 또래 한 엄마와 말이 트이며 조금씩 친분을 나누기 시작했다.
이렇게 고마울 때가.
연극이 끝나니 6시가 다 되었다.
엄마들이 동네 삼겹살집에서 저녁을 먹자고 한다.
여기 따라가지 않으면 딸아이가 할머니한테 이를 것이다.
- 할머니, 엄마가 또 새엄마티 냈어.
하아... 이 아줌마들은 가족이 없나.
크리스마스 저녁에 가족이 아닌 동네 아줌마들과 삼겹살이라니.
생각지도 못한 신박한 성탄절 저녁이다.
삼겹살집에서도 막내인 나는 연신 고기를 구워대고
딸아이는 삼겹살 가게 안에 있는 놀이방에서 신나게 놀다가 고기를 먹기 시작했다.
나도 한 점 집어먹으려던 찰나, 문자가 온다.
이제 집으로 돌아오라는 시어머니의 문자였으면 하는 소박한 바람으로 휴대폰을 였었는데,
오늘 결혼식을 치른 친구의 아버님이 돌아가셨다는 부고의 메시지였다.
결혼식은 기쁜 날이다.
기쁜 날이니 내가 참석을 못 해도 덜 미안했다.
미리 양해를 구했고 유선으로 축하도 해줬다.
내가 가지 못해도 많은 친구들이 축하해 주고 기뻐해 줄 거란 생각에 미안한 마음은 있었지만 그래도 견딜만했다.
하지만 장례식은 다르다.
본인의 결혼식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이건 지구가 두 쪽이 나도 반드시 참석해야 하는 일이라 생각했다.
망할 삼겹살 파티가 끝나자마자, 딸을 끌고 빛의 속도로 시댁에 갔다.
나는 할 도리 다했어.
시키는 대로 연극도 구경시켜줬고 삼겹살도 먹였어.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용기를 내본다.
- 어머니, 저 오늘 결혼한 친구가 갑자기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해서요.
지금 장례식장에 가봐야 할 것 같아요.
- 오늘 좋은 날이니 내일 가라. 내일 내가 아들 봐줄게.
- 어머니, 내일 발인한다고 해요. 오늘 꼭 가봐야 할 것 같아요. 죄송하지만 저 지금 다녀와야 할 것 같아요.
- 그럼 네 남편 데려가지 말고 너 혼자 다녀와라.
집에서 친구 아버님의 장례식장은 승용차로 가면 40분 거리, 대중교통으로 가면 1시간 40분이 넘는 거리이다.
안타깝게도 그 당시 나는 장롱면허여서 운전은 하지 못했다.
어머니가 말씀하신다.
- 너 혼자 가라.
그래, 혼자라도 가라고 한 게 어디야.
8시가 넘어서 장례식장으로 출발했다.
자신의 결혼식 날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큰 아픔을 겪은 친구를 보니 마음이 무너져내렸다.
내 결혼식엔 불러제껴 부케까지 받게 해놓고,
나는 시어머니의 허락을 구하지 못해 결혼식 참석도 못 했다. 늘 밝고 씩씩했던 친구를 보니 눈물이 쏟아져 내린다.
장례식이 끝나고 부리나케 시어머니 집으로 향했다.
시간은 자정이 넘은 시간.
초인종을 누르니 시어머니가 굵은소금 한 되박을 가지고 나와 나에게 뿌리고 나서야, 남편과 아들을 내보낸다.
참으로 고된 성탄절이다.
이제서야 아들과 상봉했다.
내 아들과의 첫 성탄절은 그렇게 지나갔고,
그것이 아들과 함께 보낸 마지막 성탄절이었다.
새해가 되고 사람들은 새로운 다짐과 기대로 들떠있었지만 나의 일상은 달라진 것이 없었다.
나는 여전히 시어머니가 시키는 대로 새엄마에 충실한 삶을 살았으며, 이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면 남편과 다투고 악다구니를 쓰다 얻어맞는 그런 일상을 반복하고 있었다.
재미가 없다.
지금의 나는 내가 아니다.
시부모가 시키는 대로 움직이는 꼭두각시 내지는 아바타일 뿐.
속은 시커멓게 타들어가면서도 아무렇지 않게 행동하는 내 스스로가 혐오스럽다.
이것 보게, 나 완전 연기파였네.
그저 부모의 장점만 닮아 빼어난 얼굴로 건강히 자라주는 아들을 보는 것이 내 삶의 유일한 낙이다.
슬픔 속에서도 고통 속에서도 시간은 흐른다.
꽃 피는 봄이 되고 내가 초등학교 6학년 때 돌아가신 어머니의 기일이 되었다.
장모의 기일이지만 시어머니도 남편도 내 어머니의 산소에 갈 생각이 없어뵌다.
어머니의 산소는 멀리 지방의 선산에 모셔져있고
그곳은 대중교통으로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1년에 고작 한 번, 엄마의 기일이 돼서야
나는 오빠의 차를 얻어 타고 산소에 가서 애달픈 엄마를 만나고 온다.
어찌 됐든 지금은 남편이 생겼으니, 남편의 차를 타고 아들을 데리고 엄마의 산소에 가고 싶었지만
시어머니도 남편도 우리 엄마 산소에는 갈 생각이 없는 듯하다.
별수 없이 아들만 데리고 오빠 부부와 함께 엄마 산소에 다녀왔다.
그곳에 누워 나와 내 아들을 보며,
우리 엄마는 얼마나 가슴을 치며 통곡을 했을지.
이미 돌아가신 엄마를 두 번 죽이는 꼴이 될까, 서럽게 차오르는 슬픔을 거세게 억누른다.
집에 돌아왔지만 역시나 남편은 없다.
또 자기 엄마 집에 갔나 보네.
이제는 놀랍지도 않지만 그래도 오늘 같은 날은
나와 함께 있어줄 수는 없었던 거니?
한참 만에 남편이 들어왔다.
뇌가 없는 건지 생각이 없는 건지 사랑이 없는 건지
산소에 다녀온 나에게 말한다.
- 딸이랑 한강에서 자전거 탔어
그래 뒈지게 좋았겠다 자전거 타서.
정녕 너는 소시오패스인 것이 확실하다.
어쩜 저렇게 빤빤한 얼굴로 자전거를 탔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내 엄마 기일에, 처가 식구들이 어린 아들과 나를 실어 가고 실어다 주는 이 상황에 자전거를 타고 싶었구나? 그건 네 아이디어니? 아니면 너희 어머니 아이디어니?
이쯤 되니 밀알만큼 남아있던 남편에 대한 애정이 완전히 소멸되었다.
함께 있는 게 고통이구나.
불현듯 임신 막달에 어떤 날이 떠오른다.
오빠가 회사에서 승진을 해서 승진턱 겸, 동생 출산 잘하라는 의미로 점심을 사겠다고 식사에 초대를 했다. 어머니께 허락을 받고 다녀오려는데 본인이 아들의 차를 쓸 일이 있으니 4시까지 차 가지고 다시 집으로 오라고 명했다.
오빠네 집에서 우리 집은 차로 40분이 넘는 거리다.
12시 점심 식사에 초대받았는데 왕복 2시간에 식사시간 2시간, 밥만 먹고 오란 얘기다.
시부모님은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끝내주는 외제차가 있다. 그런데 굳이, 그 외제차를 두고 처갓집에 밥 먹으러 간 아들의 차를 쓰겠다고 고집 피우는 건
무슨 심산일까.
켜켜이 쌓아두었던 분노가 한 번에 터진다.
이 미친 집구석에서 더 이상 콧구멍으로는 숨을 쉴 수가 없다.
쌓여있던 분노는 화산이 폭발하듯 거침없이 터져 올랐다.
소파에 있던 쿠션을 집어던지고 미친년처럼 소리를 지르고 악다구니를 썼다.
정말이지 미쳐돌아버릴 것 같은 현실이었다.
우리 엄마의 기일날,
나는 남편에게 입술이 터지도록 맞았다.
두려운 마음에 아들을 데리고 택시를 탄 뒤 친구의 집으로 도망쳤다.
-나 하루만 재워줘.
친구의 집 방 한 칸에 아들과 누워 서러운 그 밤을 달래보려 했지만 내 마음은 얻어터진 내 입술보다
더 새빨갛게 멍이 들어버렸다.
이제는 정말 돌이킬 수 없어.
친구 집에서 쪽잠을 자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아들이 친구가 기르는 화분으로 손을 뻗는다.
- oo야, 너 그 화분 잎사귀 뜯으면 이모가 어떻게 변할지 몰라.
하루 재워달라고 하는 게 불편하지 않을 만큼 아주 친한 친구였다.
그런데 그 친구가 말귀도 못 알아듣고 말도 못 하는 내 아들에게 무심코 던진 이 말이 가슴에 비수가 되어 상처로 남는다.
정말 상처투성이로구나.
아침이 되고 친구의 눈치가 보여 더 머무를 수가 없다. 택시를 탈 돈 한 푼도 내게 남아있지 않다.
아들은 배가 고픈지 찡찡거린다.
하는 수없이 아들을 아기 띠로 안은 채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향한다.
아직 나에게 돌아갈 집이 남아는 있는 건가.
2시간이 넘는 시간이 걸려서야
남편이 출근하고 없는 우리의 집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나는 그렇게나 소중히 지켜내고 싶었던
내 가정이 깨어지는 소리가 들리고 있음을 서서히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