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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ingonthewall Dec 29. 2022

작용과 반작용

세대론의 부정변증법


MZ세대론은 그것이 규정하고 있는 세대의 범주가 과도하게 넓고, 따라서 실질적으로 아무런 세대적 공통점을 공유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하나의 세대로 묶고 있다는 이유에서, 바로 그 MZ세대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정작 MZ세대는 자신들이 MZ세대라는 공통된 소속 의식을 가지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MZ세대론은 수많은 개인들에 관해 특정한 인식 틀에 입각하여 공통된 형질을 추출할 수 있게 하는, 개개인을 하나의 집단으로 다룰 수 있게 하는 '비약적' 일반화의 인식론적 편익을 충분히 취하고 있지도 못하다. 즉, 그것은 너무나도 폭넓은 규정에 의거하고 있는 나머지, 자체의 의미를 모호한 것으로 남겨놓고 있다. 그리하여 MZ세대론은 말 자체의 의미에 불과한 것이거나 '요즘 것들'에 대한 불특정한 관념만을 함의하고 있을 따름이다.


무엇보다 세대 담론 자체의 수명이 다해가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세대 담론은 더 이상 이전처럼 보편 다수에 대한 효과적인 인식 틀로서 기능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심화되고 있는 계층 분화, 미디어 다양성의 증대와 같은 '동시대성'의 가능성을 확장시키는 여러 요인들에 의해, 오늘날 공통된 세대 경험의 지평은 한없이 협소해져만 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사람들은 같은 시대를 살면서도 동시대를 살아가는 다른 이들과 같은 경험을 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일련의 동질성을 공유하는 세대의 실체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적어도 그 구분은 과거에 비해 매우 희미한 것이 되어있다.


MZ세대론은 그 시작부터 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라는 전혀 별개의 분류를 아무런 고찰없이 기계적으로 접합해서 만들어 낸 일종의 '억지 밈'에 불과했다. 즉, MZ세대론은 단순히 인용되기 위해 할당된 개념에 불과한 것이며, 수식의 기능을 배제한 이름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은 의미하지 않고 단순히 지시한다. 이러한 사실이 MZ세대론을 대하는 모두의 입장을 난처하게 만든다. 인터넷 밈meme이 맥락을 가리지 않는 무분별한 활용에 의해 '인지 자원을 점유하는 복제자'로서 생명력을 갖게 되듯이, MZ세대론도 어떤 이유에서든 그것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게 되면서 담론으로서의 '영생'을 획득한다. 즉, MZ세대론에 대한 반발과 비판이 도리어 그것을 진지한 논의의 대상으로 만든다. 모종의 반향을 만든다는 사실, 무시될 수 없으며 그렇게 생각된다는 사실이 그것에 의미를 부여한다. 격렬한 부정에 의해서, 그것은 부정에 선행하는 실체, 변증법적 대상으로서 전제된 현실이 된다. 이제 그것은 부인되기 위해서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MZ세대론은 스스로 MZ세대임을 거부하는 'MZ세대'들의 반발에 의해서 역설적으로 자신의 명료한 개념적 구획을 얻는다. 즉, (비판자들은 전혀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무분별한 세대 구분에 관해 계층 내부적으로 공유되는 문제 의식이 단일한 실체로서의 세대 정체성을 구성하게 된다. 새로운 정의에 따르면, 자신의 MZ세대로서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이들이 바로 'MZ세대'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들과 연관된 개념의 내부에서 (그것이 부당하다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그 곳에 있어야 할 자기의 부재를 그러한 범주에 관여하는 것으로서 적극적으로 파악하고 있으며, 나아가 '있어야 할 것이 없다'는 결여를 통해 하나의 가능성으로 표상되는 자신을 기입하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부정확한 범주가 그 대상인 주체를 내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그러한 범주 안에서 주체가 자기를 대조적으로 인식하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요컨대, MZ세대론은 무엇이 아니라는 부정의 형식을 통해 궁극적으로 배제될 수 없는 실체의 윤곽을 포착하는 일종의 부정 신학적negative theology 자기 인식의 매체로 기능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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