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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ingonthewall Jan 08. 2023

AI는 인간 예술가를 대체하게 될 것인가


최근 몇년간, 인공지능 기술이 실로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이제 인공지능은 수량으로 나타나는 데이터의 종합 및 분석, 다량의 연산 같은, 전통적인 기계 지능의 영역을 넘어, 오랫동안 인간만이 독점적으로 지닌 능력으로 간주되었던 창의성의 영역을 넘보고 있다. 한때 바둑은 우주의 원자 수보다 많은 경우의 수로 게임이 전개될 수 있기 때문에 AI가 영원히 파훼할 수 없다고 여겨졌으나, 이제 알파고, 절예를 필두로 한 바둑 인공지능들이 3점 접바둑으로도 최고의 인간 바둑 기사들을 압도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림 그려주는 AI는 키워드 몇 개만 집어넣으면 (손가락을 이상하게 왜곡된 형태로 그리는 경우가 나오는 등, 아직 지엽적인 디테일의 측면에서 부족한 부분이 있긴 하지만) 사용자가 원하는 화풍으로 수 분 안에 그림을 그려준다. 글을 써주는 AI도 있다. 첫 문장을 입력하거나 질문을 적어 놓으면 알아서 적합한 문장들을 구성하여 글을 완성해 놓는다. 이들 인공지능을 구동하는 데에는 특별한 전문 지식이나 기술이 필요하지 않다. 시간도 많이 들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 결과물의 수준은 오랫동안 관련한 기예를 갈고 닦은 사람의 것에 대응하거나 그 품질을 간단히 능가한다.


흔히 창의력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그렇지 않다면 기존의 것과는 전혀 새로운 무언가를 제시하는 능력으로 이해된다. 그래서 사전에 입력된 명령어, 논리 구조, 데이터에 기반해서 움직이는 인공지능이 이를 모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다. 하지만 실제로 상상력은 누적된 데이터베이스로 부터의 임의적 추출과 결합을 통해서 기능한다. 전에 없이 새로운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모든 상상력의 산물은 그 나름대로의 기반에 위치한다. 그래서 뛰어난 창작자들은 모두 박식가다. (쿠엔틴 타란티노는 걸어다니는 영화 대백과고 무라카미 하루키는 재즈, 야구광이다.) 그리고 인공지능은 그 과정을 이미 몇몇 분야에 한해서는 인간보다 월등하게 효율적으로 수행하고 있다. 인간과는 달리, 인공지능의 경험적 기반은 개별적 삶의 조건에 의해 한정되지 않으며, 무한히 많은 시행을 거듭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인공지능은 상상을 실제로 구현함에 있어서 선입견에 구애받지 않는다. 시간과 자원의 한계로 모든 가능성을 고려하고 실행에 옮길 수 없는 인간은 부득이하게 빠른 탐색을 위해 여러 부가적인 가능성을 배제하는 도식적 절차를 마련하여 거기에 자신을 종속시킨다. 바둑의 포석, 체스의 오프닝, 소설/시나리오 작법, 여러 디자인 분야들에서 유사하게 나타나는 미학적 지침 등이 그 예시로, 이들 방법론은 일체의 창조 과정이 '검증된' 최적의 경로를 따르게 하는 데에 목적을 두고 있다. 자연히, 아웃풋의 안정성이 보장되는 만큼 창작의 자유는 제약되고 만다. 반면, AI는 특정한 정석, 방법론에 구애받지 않으면서 말 그대로 모든 경우의 수를 실험해 볼 수 있다. 예컨대 바둑 인공지능은 인간이 만들어 놓은 정석, 포석에 집착하지 않고 매 국면마다의 유불리를 정교하게 계산하여 판단을 내린다. 작화 AI는 인간의 눈에는 단순한 오류로 보일 정도의 탈-관습적 이미지의 결합을 시도하고 작문 AI는 문법 규범과 주어진 문장으로 부터의 확률적인 파생 가능성만을 작문의 기준으로 삼는다.


물론 아직 세부적인 디테일의 측면에서 인공지능 예술은 허술함을 보인다. 특히 작문, 자연어 처리 영역에 있어서, 인공지능 기술은 여전히 갈 길이 멀다. 즉, 완성된 글이 사람의 것이 아니라는 위화감을 자아내고 기본적인 상식에 위배되는 경우가 많다. 인공지능의 작문은 자연어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고 일반적인 조건 하에서 단순히 어떤 문장이 이후에 잇따를 가능성에 대한 판단, 확률적인 개연성만을 근거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인공지능 기술의 발달 추세로 미루어 볼때, 이러한 약점은 머지않아 극복될 가능성이 높다. 당장에 그런 약점이 극복되지 않더라도, 인간 작가의 감수와 수정, 보조를 통해, 인공지능 예술은 충분히 인간 예술가를 대체할 만큼의 높은 생산성을 발휘할 수 있다. 인간의 창작은 값 비싸고 고도의 예술적 기교의 체현을 요구하고 많은 시간과 고뇌를 필요로 하지만, 인공지능의 창작은 그렇지 않다. 인공지능은 너무나도 손쉽게, 그리고 무엇보다도, '값싸게' 작품을 만들어 낸다. 그렇다면 하나의 질문이 떠오른다. : 인공지능 예술이 인간의 예술을 모두 대체할 수 있을 것인가. 인간 예술가들은 모두 인공지능에 밀려 직장을 잃게 될 것인가.


예술의 기술적 양산을 가능하게 하는 인공지능 기술의 발달은 자기만의 고유한 오리지날리티, 네임 밸류를 갖지 못하는 대다수의 예술 기술자들을 낙오 시키며, 인간 예술가의 입지를 전에 없이 축소시킬 가능성이 높다. 대중적인 차원에서 예술이 표현을 통해 체현되는 정신이라기 보다는, 무언가를 그리고 쓰며 표현하는 기술 자체에 불과한 것으로 인식되는 반면, 예술가의 예술적 기교 자체는 그것이 얼마나 고도화 되어 있는지와는 관계없이, 더 이상 예술로서의 궁극적인 비교 우위를 산출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예술가의 기교는 이제 각자가 익힐 필요없이 누구나가 빌려 쓸 수 있는 것이며, 높은 수준의 예술적 기교 자체가 더는 희소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그림 잘 그리고 글 잘 쓰는 사람은 세상에 널리고 널렸다. 그래서 인공지능 예술의 가능성이 제시되기 훨씬 이전부터, 이미 제프 쿤스와 같은 작가들은 자신은 작품의 기획, 프로듀싱만을 담당하고 실제 작품의 구현은 전문 기술자들에게 일임하는 관행을 정착시켜 왔다. 그림을 그리거나 조각을 하면서 작품을 구현하는 과정 자체는 그만한 기술을 갖춘 누구나가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인간이 예술의 소비 주체로 존속하는 이상, 아마 인간 예술가라는 직업 자체가 소멸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시 말해, 인간이 하는 예술의 가치가 전적으로 퇴색되지는 않을 것이다. 크게 두 가지 이유에서 그렇다.


첫째로, 인간은 비록 질적으로 차이를 빚어내지 못하거나 심지어는 질적인 열화가 초래되는 경우에도, 인간이 무언가를 했다는 사실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수제와 공장제 재화 간의 품질 차이가 없다는 것을 알아도 전자에 더 높은 가치를 부여하며, 최고의 인간 바둑 기사조차 절예나 알파고에게는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도 인간 바둑 기사의 대국에 매료된다. 기계의 힘과 스피드에 인간이 대적할 수 없다는 걸 알아도 인간 운동 선수의 퍼포먼스에 특별한 감상을 느낀다. 이는 인간이 인간으로서 어쩔 수 없이 인간에 대한 편향적인 관점을 함양하게 되기 때문이다. 예술에도 근본적으로 똑같은 메커니즘이 작용한다. 캔버스에 점 하나 찍고 선 하나 긋는, 누구나 그릴 수 있을 것 같은 개념 미술 작품이 경매에서 수백억을 호가받으며 각광받는 이유는 그것이 '익명의' 기교에 의해 구체화된 표현 자체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특정한 인간 작가의 의지와 정신 과정을 직접 반영한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즉, 작품 자체가 아닌, 그것에 전제된 아이디어, 의식이 오리지널리티의 원천이 되는 것이다.


둘째로, 특정하고 구체적인 이미지, 결과물을 상상하고 그것을 구현하는 능력이 아직까지는 인간의 전유물이기 때문이다. 즉, 오직 인간만이 자기의 행위에 관한 이데아적 상을 가지며, 그것을 현실에 이행할 수 있다. 자기가 원하는 것, 자기 자신의 의지를 인식하고 그러한 인식에 입각하여 현실에 투사한다는 사실이 인간의 창작, 지적 활동에 특별한 지위를 부여한다. 인간의 창작은 어떤 산물의 생산에 불과하지 않고 인식된 자기에 입각하여 인간이 자기를 상징적으로 재생산하는 과정이자, 개인의 개별적 욕망에 외부 현실을 역으로 최적화하는 과정인 것이다. 무엇보다 결과물에 대한 구체적인 상을 수반하는 창작을 통해서만 개인은 자신의 적확한 지향을 취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러한 상상 자체가 작품에 선행하며 창작의 계기가 되는 개인의 취향을 세부적으로 결정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반면 인공지능은 어떤 산물을 효율적으로 생산해내기는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주어진 조건에 의거하여 개연적으로 산출된 것에 불과하다. 인공지능의 예술은 데이터베이스로 표현되는 불특정 다수의 일반화되고 추상화된 취향을 반영할뿐, 자신의 결과물에 대한 구체적인 예상을 가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구동하는 사용자의 취향조차 파악하지 못한다. 인공지능은 익명의 모호한 욕망만을 반영하는 집단 무의식의 구현에 불과하다. 인공지능은 예술을 진정 개인적인 것으로 만드는 단일한 맥락의 자기 의식을 가지지 않는다. 따라서 그것은 일반적 취향의 결합체만을 제시할뿐, 그에 선행하여 존재하는 개인의 개별적이고 특정 취향, 이미지를 예시하지는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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