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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달리즘의 신학

믿음의 부정변증법

by Writingonthewall


성상을 파괴하려는 자는 그에 앞서 성상이 단순한 조형물 이상의 무언가라는 것을 믿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성상을 파괴하는 일은 의미가 없다. 그는 자신의 행동을 통해 무언가를 증명해보이기 위해 그 일을 벌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보이는 것 이상의, 여러 사람의 믿음을 매개하고 신성의 존재를 증거하는 성물임을 믿지 않으면 성상의 파괴는 '사건'일 수 없다. 성상파괴자는 성물을 파괴함으로써 그것이 다만 취약한 사물에 불과함을 입증하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그것에 깃들어 있다고 가정된 신성을 역설적으로 믿지 않으면 안된다. 따라서 반달리즘vandalism은 궁극적으로 성상의 존재를 완성시킨다. 깨어진 성상은 그것이 신성하다고 믿어지기 때문에, 믿어지는 신성의 부재를 입증하기 위해 파괴되어야 했음을 드러낸다.


우상이 실로 우상에 불과할 뿐이라면, 우상이 실재하지 않는 신성의 존재를 지어내고 있을 뿐이라면, 왜 '진짜 신'의 신도임을 자부하는 이들이 그것을 의식해야 할까? 실제로는 그 우상들 모두가 진짜 신의 형상으로서, 유일하게 참된 신성의 본질을 의심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시나이 산에서 야훼의 계명이 새겨진 석판을 받아 내려온 모세가 자신이 이끄는 백성들에게 그들이 섬기던 금송아지 우상을 철저히 파괴하고 모독하도록 강요했던 건 그것이 실제로 백성들 사이에서 야훼의 위상을 대체하는 것을 목도했기 때문이었다.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 위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속에 있는 어떤 것이든지 그 모양을 본떠 새긴 우상을 섬기지 못"하게 한 야훼의 계명은 우상의 형상이 무한하고 한정 지어질 수 없는 신성의 본질을 그 자체의, 사물로서의 물성 안에 가두고 한정지을 위험이 있기 때문에 제정되어야 했다. 다시 말해, 우상은 단순한 원본의 모방, 형상으로서가 아닌, 외화entäusserung, 물질화한 실제의 신, 물리적 현실이라는 존재 형식상의 제약을 통해서만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불완전한 신으로 생각되어 신의 지고한 존엄을 실추시킬 우려가 있기에 금지 되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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