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값싼 노동, 값싼 고생

왜 물류 노동자들은 매 여름 찜통 더위에 시달릴까

by Writingonthewall



매년 여름 에어컨이 설치되어 있지 않은 물류 창고에서 온열 질환의 위험과 싸우며 일하는 물류 노동자들의 처우를 개선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많다. 회사가 충분한 냉방 시설을 업장에 설치해서 냉방비 걱정없이 혹서기 내내 풀가동하고 필요하다면 노동자들에게 평소보다 더 많은 휴식을 보장해가면서 노동자들을 그들이 처한 부당한 위험에서 해방 시켜야만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작 누구도 그러한 조치를 취하기 위한 비용이 자신에게 청구되기를 원하지는 않는다. 냉방비를 조상님이 대납해줄리는 없고 기업도 단순히 발생한 손해를 떠안을리는 없으니, 그 비용은 어떤 식으로든 소비자들이 지출하는 서비스 비용의 형태로 전가되기 마련이고, 휴식 시간을 늘리면 자연히 단위 시간당 생산성은 줄어들어 줄어든 생산성만큼의 인력(=인건비)을 더 투입하거나 배송 지연을 불가피한 사태로 받아들이고 감내하는 수밖에 없겠지만, 불쌍한 노동자들을 위해 그러한 대가를 기꺼이 지불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실제로는 쿠팡 와우 구독료가 오천원만 올라도 이 돈 주고는 못쓰겠다며 경기를 일으키고 주문한 물건 배송이 예정보다 한 시간만 늦어도 배송 기사한테 문자, 전화를 열 통 단위로 걸어대면서 재촉하는 고객들이 돈, 시간 안드는 정의를 입으로만 열심히 실천하고 있을 따름이다.


모두가 입으로는 물류 노동자들의 노고를 열렬하게 치하하며, 그들의 고생을 정당하게 대우해주지 않는 기업의 인색함, 내지는 잔혹함을 비난한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고객들 역시도 물류 노동자들의 노동에 회당 배송비 5,000원, 쿠팡 와우 구독료 7,900원 이상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매년 과로로 죽는 사람이 나오는 업계의 살인적인 업무량에 겉으로는 동정과 우려를 표하면서도, 내심 할 줄 아는 게 몸 쓰는 일뿐인 천민들에게 합당한 처우라고 여긴다. 그래서 몇 만원짜리 옷 한 벌 사면서 배송비 몇 천원 붙는 걸 괘씸하게 여기고, 물량이 폭주한다던지 배송 과정에서 어떤 사정이 있었건 간에 '감히' 하늘같은 고객과의 약속에 늦는 것을 용납하지 못한다.


사람들은 다소 막연하면서도 맹목적으로, 값싸고 빠르고 정확한 서비스의 수혜를 기대하기만 하고, 그 이면에 그러한 서비스를 직접 수행하고 그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타인의 존재를 인지하지 못한다. 새벽 배송, 당일 배송이 오늘날 인터넷 쇼핑 업계의 어떤 표준으로 자리잡을 수 있었던 건 고객이 집에서 편하게 클릭, 터치 몇 번으로 물건을 주문하는 동안, 밤낮, 휴일을 가리지 않고 일하는 누군가가 있기 때문이지만, 사람들은 마치 그러한 혜택이 어느 누구의 희생이나 대가를 치르는 일 없이 당연하게 주어진 것인양 받아들인다. 모두가 과도한 노동으로 인해 일상이 소거된 삶을 경멸하고 가능한 한 각자의 일과 일상 사이의 균형을 지킬 수 있기를 바라면서도, 자신이 누리는 편의가 누군가의 '워라밸'을 희생함으로써 가능했던 것임을 알지는 못한다. 그래서 항상 모종의 개선을 요구하지만, 누구도 그 개선의 대가를 치를 각오가 되어있지 않으며, 보다 근본적으로는 개선을 위해 무엇을 바꿔야 하는지도 알지 못한다.


결국 노동자들이 매 여름 찜통같은 물류 창고에서 속된 말로 개고생을 하게 되는 건 단지 기업이 악하고 인색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기업은 다만 고객의 요구에 -물론 자기의 이해를 저울질해가면서- 부응하려 할 뿐이다. 상품을 주문한 날 당일, 혹은 다음날 새벽에 물건을 받아볼 수 있기를 고객이 원하기 때문에 택배 기사들은 야간, 연휴, 혹서기를 가리지 않고 폭주하는 물량과 타이트한 스케쥴에 맞추어 끊임없이 잔업을 해야하고, 고객들이 지불할 용의가 있는 가격과 서비스에 대한 고객의 체감 효용이 맞닿는 선상에서 -저렴하지만, 쓰는 누구도 저렴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건 당 몇 천원 수준의 배송비 단가가 결정된다. 즉, 소비자들부터가 단순 반복 저숙련 육체 노동의 가치를 높게 매기지 않으니, 기업도 그 저렴한 인식만큼의 대우를 하게 되는 것이고 굳이 나서서 근로자들에게 자선을 베풀 필요가 없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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