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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장흐름 Sep 29. 2020

지금 가진 것을 부정하면

사실 감사할 것 투성이다.



하는 일에 진척이 없다며 툴툴 거리는 사람-
자신은 원래 못났다고 깎아내리는 사람-
하도 바빠서 스트레스 느끼는 사람-

"최근 감사했던 일은?"이라는 질문에 막연함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이 글을 보냅니다.





지금은 힘들고 지겨울만하지.


 "힘들어, 지겨워, 재미없어." 


 바이러스로 인해 일상이 제한되고 즐거움을 좇지 못하는 환경이 계속되면서 사람들에 입에는 피로감을 표현하는 말들이 늘었다. 코로나 이전보다 할 수 없는 영역이 넓어진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실제로 내 고등학교 벗 중 한 명은 가족의 염려를 받아 올 2월에 계획된 동남아 여행을 취소했었으니. 


 겨울로부터 계절이 세 번 바뀐 지금도 마스크를 쓰는 우리의 일상은 그 전과 비교해 보면 어딘가 비참하고 우울해 보인다. 그리고 이 바이러스가 언제 지구에서 떠날지 알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코로나가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과거와 비교하는 것은 무의미해질 것이다. 지금은 1년 전과 비교하면서 '그때는 마스크도 쓰지 않고 참 좋았는데..'라며 생각할 수는 있다. 다만 바이러스가 앞으로 2년- 3년씩, 혹은 그 이상으로 길어진다면 그때도 이전을 떠올리며 비교할 수 있을까? 그때에도 '3년, 4년 전에는 참 좋았는데..'라고 생각하고 있을까?


 새로운 무언가가 일상이 될수록 그 이전을 떠올리는 것은 힘들어진다. 첫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학생은 힘들 때마다 일을 하지 않았을 적을 떠올리며 땀을 닦을 것이다. 하지만 같은 일을 3개월, 6개월 하면 그 삶이 일상이 되어 이제는 이전을 떠올리라면 일을 하지 않았을 시절보다는 1개월 차의 자신을 떠올리지 않겠는가. 이 말이 무슨 말인고 하면, 사람은 시간이 지날수록 새로움을 받아들이고 적응하게 되어 새로움 자체를 생각하기보다 새로움에 적응한 자신을 생각하기가 더 쉽다는 것이다. 


 올 3월, 4월에는 마스크를 쓰지 않았던 19년도를 떠올리며 아쉬워했지만, 9월이 끝나가는 요즘은 외출 시 마스크를 챙기는 게 당연해졌고 일상이 되었다. 지금도 19년도, 18년도를 떠올리며 한탄하는 사람은 적을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이 몇 달 동안 새로운 일상에 적응한 결과이다.




과거와 비교하지 말고 지금 가진 것 자체를 거꾸로 생각해볼까.


 위에서 이전과 비교하는 것은 점점 가치가 떨어진다고 설명했다. 추천하는 것은 우리를 감싸고 있는 일상적인 것들의 존재를 깊이 묵상하는 것이다. 


지금 가진 것을 하나씩 부정해보자. 그것이 물체이든, 어떠한 시간이었든 간에 존재 자체를 부정해보자.


..
지금 입고 있는 옷

방금 마신 커피

어제 읽은 감명 깊은 책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탄 자전거


친구와 밤새 떠든 영상통화




고민하다 맛있게 먹은 야식



나를 흥얼거리게 만든 노래들



언제나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
..


 이것들을 갖기 이전과 비교하지 말고 '이 존재가 애초에 세상에 없었다면..'하고 떠올려보자. 이전과 비교하면 앞으로 더 갖고 싶다는 욕심이 들기 때문에 존재 자체를 지우도록 생각해야 한다.


 눈을 감고 곰곰이 생각하다 보면, 우리 주위에는 감사한 것 투성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놀라운 것은 그 가짓수가 한두 가지가 아니라는 사실. 이 짧은 묵상 후에는 우리를 감싸고 있는 모든 것이 감사의 제목이 된다. 


 사람은 긍정적인 신호 50과 부정적인 신호 50을 동시에 받으면 부정적인 것에 주목하는 존재이다. 그래서 누군가 인간은 나약한 존재라고 말하면 나는 그 말이 맞다고 인정하며 손을 들어줄 것 같다. 그러므로 우리는 각자의 삶에서 긍정적인 신호를 스스로 찾아 늘려야 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덕이 되고 본을 보이는 사회라면 굳이 감사할 것을 찾지 않아도 될 테지만, 아직 우리 사회의 모습은 그리 밝지 못하기 때문이다.


 감사 제목을 찾고 삶의 만족도가 높아졌다면 그 묵상 시간은 틀림없이 귀한 시간이었을 것이다. 이제는 정신을 곧바르게 차린 것도 감사한 일들에 포함된다는 놀라운 사실. 한 번 더 적용점을 세우자면, 그 긍정 에너지를 다른 사람에게 흘려보내 주는 것이 서로에게 유익이 될 것이다. 이런 정신적 에너지는 전해준다고 소멸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건강한 쪽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따라서 필자는 기쁨은 나눌수록 배가 되고 슬픔은 나눌수록 줄어든다는 말이 옳다고 믿는다.)




감사에 관하여


 "모든 것에 감사하라"는 말은 삶에 바로 적용하기 어려운 말이다. 어떻게 사람이 슬픔마저도 감사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시간이 지나서 돌아보면 비로소 알 수 있다. 나에게 주어진 잠시 잠깐의 어려움도 나의 성장을 위해 꼭 필요한 과정이었음을 말이다. 


 이 글에 소개한 '가진 것 부정하기'는 감사 제목을 떠올리는 방법론 중 한 가지일 뿐이다. 실은 이 방법으로는 슬픔마저 감사하기에는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감사한 것을 하나라도 더 찾기 위해 힘을 내야 한다. 언급했듯이 사람은 긍정적 신호와 부정적 신호가 똑같이 있으면 부정적인 것에 사로잡히는 약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감사는 해독제와 비슷한 역할을 한다. 첫째로, 우리 개인의 원망을 덜어주는 해독제이다. 원래는 실수를 했을 때 "아.. 나 왜 이렇게 멍청할까.." 하며 자신을 비관했다면, 감사를 함으로 "아, 차라리 지금 알아서 참 감사하다. 다음번에는 실수 안 해야지."라며 자신을 다독일 수 있다. 둘째로서는, 타인의 잘못을 중화시켜주는 해독제이다. 상사가 후임의 잘못을 꾸짖는 게 아니라 "그럴 수 있어, 나도 예전에는 그랬으니까."라며 한 번 더 믿어준다면 후임은 긍정적인 신호를 얻어 힘을 낼 것이다.


 감사가 한 명 한 명의 마음에 깊이 내면화되어 세상을 향한 원망을 덜어내고, 자신의 감사를 세상에 나눠줄 수 있다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조금씩이지만 우리가 삶 가운데 숨은 감사 제목을 찾아갈 때마다 세상의 온도는 높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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