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등산을 결심하고 짧은 여행을 떠났다. 아파트 뒤는 바로 산책로라 사람이 많지만, 계단을 시작으로 산과 이어지는 길목부터는 그 수가 눈에 띄도록 줄어든다. 여기부터는 사람들의 발걸음 소리와 대화 소리가 끊겨 조용한 자연을 누릴 수 있다.
'좋아, 지금이 막 5시가 됐으니 산도 타고 사진 찍다가 6시 전에 돌아오자.'
머릿속에 나름 괜찮은 플랜을 갖고 계단을 걸어 올라갔다.
산에 들어가자 산책로에서는 옅었던 풀냄새가 마스크를 뚫고 들어왔다. 코에서 녹색을 느낄 만큼 짜릿한 향기였다. 눈을 가린 채 이 냄새를 맡았어도 진한 초록을 보았을 것 같다.
그런데, 가을 아니었나? 가파른 경사를 따라 올라가니 땀이 송골송골 맺힌다. 더위를 많이 타는 내게는 아직 여름 같은 가을이다. 연휴가 지나면 그때는 정말 가을 같은 가을을 느낄 수 있으려나. 아직 동네에서는 단풍 보기도 어려우니 10월은 확실히 되어봐야 알 수 있을 것 같다.
사방이 다 똑같아서 어디로 가야 하는지 진짜 모르겠다.
땀을 닦던 도중, 나는 이상함을 감지했다. 분명히 제일 높은 곳은 지나고 내려가는 길이었는데, 인공물은 하나도 보이지 않고 사방이 똑같았다. 그래, 난 어설프게도 동네 산에서 길을 잃은 것이다.
'으음, 평소에 여기까지는 안 오니까 헷갈릴 수 있지- 길 잃은 김에 여기저기 둘러보고 사진이나 실컷 찍자.'
산속에 들어오니 생각도 어려졌다. 그냥 천방지축 꼬마처럼 뛰어다녔다.
좁은 길
이런 애매한 길을 한 두어 번 건넜다. 분명 사람 한 명 지나갈 너비는 되는데 정식 등산로는 아니고 지나갈 수 있게 길만 터있는 느낌이다. '정품이라고 믿고 샀는데 이거 불량 아냐?' 딱 그런 기분.
하도 헤집고 다녀서 흰색 운동화에 흙색이 묻어나기 시작했다.
'하.. 이거 좀 뛰어다녀야 6시 안에는 돌아가겠는데?'
6시는 나 혼자 궁리한 규칙이었지만, 왠지 모르게 일찍 돌아가야 별 탈이 없을 것 같았다.
그렇게 나는 몇 번을 오르락내리락하다가 인공물스러운 형태를 보았고 새로운 길을 찾는 데 성공했다. 길을 잃었다는 잠깐의 불안에서 빠져나온 게 기쁜 건지, 제 취향의 사진들을 찍어서 좋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난 언제나 그랬듯 즐거운 마음으로 산책을 마치고 돌아왔다.
이번 산책은 집을 떠날 때 계획한 루트는 아니었다. 산에서 헤맬 줄은 더더욱 몰랐고.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오늘 산행은 나름 괜찮은 방황이었다. 울창한 나무 사이에 갇혀서 요새 통 못 느꼈던 어드벤처 느낌도 나고 말이야. 이 정도 방황이라면 가끔은 환영해도 좋을 것 같다.
"학생, 길 잃으면 지도라도 살펴보지 그래?"
동네 산이어서 그런지 지도도 초록색만 보여주고 길까지 알려주지는 않더라. 그리고 보이는 것보다 넓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