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취미를 만드는 것은 분명 의미 있고 두근거리는 일이다. 이번에 새로 들인 취미는 "부릉이"다. 다시 말하면, "드라이브"가 되시겠다. 본인은 평소 서울시 공유 자전거 따릉이를 굉장히 애용했으나 날씨가 추워짐에 따라 자전거 세포도 죽었는지 별로 타지 않게 되었다. 시험기간이라 과한 운동에 체력을 뺏기기 싫었던 조금의 이유도 있었고.
면허 취득 이야기는 19살 겨울 방학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꺼낼 수 있다. 모든 입시가 끝나 한가로운 방학,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운전학원을 등록해 운전대를 처음으로 잡아보았다. 안전벨트를 책임감 있게 맨 것은 그때가 처음일 것이다. 핸들을 붙든 두 손에 나와 강사 선생님의 운명이 걸려있다는 묘한 긴장감 탓인지, 한파에도 땀이 조금씩 흘렀다.
온화한 강사분부터 거친 강사님까지 몇 분을 거쳤을까? 당근과 채찍을 고루 받으며 겨울을 보낸 덕에 운전면허를 갖게 되었다. 그때부터는 사진이 별로인 주민 등록증 대신 면허증을 지갑에 넣고 다녔다. 그리고 속으로는 "옳거니, 나도 이제 운전할 수 있는 사람이야."라는 별난 소속감이 들어 히죽대었던 것 같다.
하지만 면허를 딴 그 해에 운전대를 잡을 일은 없었다. 그렇게 내 면허증은 "사진 잘 나온" 직사각형으로 전락하고 만다.
20년도 5월 중
무료한 코로나 학기에 친구가 톡을 보내왔다.
"와슈해픈?"
왜 저렇게 답장했는지는 모르겠다. 여하튼 내가 톡을 읽었다는 걸 확인한 친구는 나에게 통화를 걸어 드라이브 가지 않겠느냐고 물어봐주었다. 나는 당연히 콜을 했고, 풀던 수학 과제를 내팽개치고 옷을 갈아입었다.
"몇동이야 혹시?"
말투는 윌리엄을 따라한 것 같은데, 친절하게 집 앞까지 찾아와 주는 친구의 센스에 감동했다. 이 친구는 사실 나와 같은 방학에 같은 학원에서 면허를 얻은 친구이다. 하지만 장롱 면허인 나와 다르게 이 친구는 틈틈이 면허를 활용했고, 이미 내가 아닌 다른 친구들을 차로 초대해 여가를 보내곤 했었다. 지금도 동갑내기 친구들 중에서는 운전실력이 제일 프로다.
드라이브 가는 길
친구는 능숙하게 서울의 밤거리를 운전해 북악 스카이웨이로 나를 인도했고 굉장히 즐거운 시간을 선물해주었다. 부모님이 운전하는 차, 혹은 다른 어른들이 태워주는 차는 여러 번 경험해봤건만, 동갑내기 "친구"의 차를 탄 것은 이게 처음이었다. 누가 보기에는 별 것 아닌 경험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이 하루를 통해 운전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다. 이미 1년 이상 묵은 장롱 면허지만, 활용하고 싶다는 마음이 조금씩 들었다.
아들이 운전하고 싶다는 마음을 내비치자 부모님은 처음엔 걱정이 크셨다. 얘가 자전거나 잘 타고 놀면 되지, 왜 자동차에 관심을 갖냐고 말씀하셨다. 아들은 친구 이야기를 꺼내면서, 그리고 나중에 언젠가는 시작할 운전이 아니냐며 부모님을 설득한다. 어차피 경험할 세계라면 빨리 시작을 떼는 게 좋지 않겠냐고. 두 분도 그렇게 운전을 시작한 게 아니냐며 갖가지 이유를 들어 두 분에게 내 논리를 들려드렸다. 결과는 어찌 되었든 성공.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
물론 단숨에 자동차를 허락하신 것은 아니다. 나에게는 1년 이상의 공백을 채울 연습 시간이 필요했다. 감사하게도 아빠가 시간이 될 때마다 나의 운전을 도와주셨다. 조수석에 도합 20만 km는 운행한 아빠가 있다 보니 안심이 되었다. 지구 둘레가 약 4만 km이니, 웃자고 말하면 지구 다섯 번은 운전하신 분이다. 흔히 아는 사람끼리 운전을 가르치고 배우면 사이가 나빠진다는 이야기가 있으나, 나의 경우는 비교적 순탄한 편이었다. 행여나 한 소리 들으면 어쩌려나 싶었지만, 참으로 다행이었다.
확실히 자동차를 타니 먼 곳까지 가는 게 가능해졌다. 친구들과 따릉이를 탈 때는 기껏해야 한강을 조금 지나는 정도가 전부이나, 부릉이로는 서울을 벗어나는 게 기본값이 되었다. 운전 연수를 통해 아빠와의 시간을 정겹게 보낸 것은 덤이다.
부모님께 한 번 더 허락을 구할 시간이 되었다. 이제는 운전 연수가 아니라 정말 드라이브 기분을 내어보고 싶다고. 친구들과 함께 놀러 다녀와도 되겠느냐고 말이다. 어라, 두 분의 의견이 갈렸다. 엄마는 찬성, 아빠는 반대였다. 엄마는 아빠에게 말하기를, 그렇게 연습시켜줘 놓고서 왜 못 타게 하나며 아들인 나를 옹호해주었다. 계속된 엄마의 푸시 덕분일까, 아빠도 마지못해 며칠 만에 오케이를 하셨다. 아내 이기는 남편이 없다.
"너 정말 조심하면서 운전해야 한다."
"당연하죠!"
부모님은 언제나 걱정하는 입장이시겠지만, 허락을 막 받은 마음에 나는 설렘이 더 앞섰다. 그렇게 필자는 따릉이가 아닌 부릉이를 가지고 친구들과 드라이브를 즐겼다. 부모로부터 막 독립한 어린 돌고래가 대양으로 헤엄치는 그 마음을 품은 채로.
친구 하나는 정속 운행하는 나를 보며 꼭 인공지능 같다고 말하더라. 그러고는 졸렸는지 눈을 붙인 채 잠을 자기 시작했다. 그래도 아직 초보 운전인데, 내 운전이 무섭지는 않나 보다. 나 또한 친구들과 드라이브할 때는 크게 두렵지 않았는데, 면허를 갖고 있거나 경력이 있는 친구들이 늘 동승하고 있어서 안심이 되었다.
적당한 취미는 일상에 활력이 된다. 본인은 원래 노래를 굉장히 좋아하는 사람인지라 코인 노래방을 자주 이용하던 사람이었다. 한 달에 2만 원 정도를 코인 노래방에 쓴 적도 있었다. 천 원에 4곡 정도임을 감안하면, 80곡 정도를 부른 셈이다. 물론 전부 혼자 부른 것은 아니지만.
하지만 20년도를 강타한 바이러스 때문에 노래라는 취미는 흥얼거림으로 바뀌어버렸고, 어쩔 수 없이 에너지를 소비할 다른 테마의 놀잇감이 필요했다. 그래서 찾은 새 취미는 "따릉이(서울시 공유 자전거 서비스)"였다. 자전거를 타면 밤 8시에 나가도 9시 전에 한강 야경을 구경하기에 충분했다. 늘어난 기동성 덕분에 이곳저곳을 씽씽 달리다 보면 걱정거리가 사라지는 마법 같은 기분이 들었다.
본인은 따릉이로도 충분히 만족할 만한 취미를 즐기고 있었는데, 몇몇 친구들이 먼저 드라이브의 맛을 본 뒤 나한테 말하더라.
"야, 자동차를 타잖아?
선택지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처음에는 콧방귀를 뀌며 나는 나대로 자전거를 타겠노라고 다짐했었다. 하지만 휴학생 친구가 드라이브로 전국 팔도를 돌아다니며 촬영한 기가 막힌 사진들을 보여 주면 눈이 휙- 하고 돌아갔다. '와, 이건 좀 멋진데.' 이 충격은 마치 이유식만 먹던 아이에게 크림 빵맛을 보여준 것과 같아서 내게 자극이 되었다.
이 글에 담은 것처럼 필자는 따릉이에 이어서 부릉이라는 새 취미에 눈을 뜨게 되었다. 아마 이번 가을과 겨울에는 따릉이보다 자동차를 더 타게 될 것 같다. 계속해서 운전 경험이 쌓이다 보면 <나만의 운전 스타일>이라는 것도 생길 것이다.
하지만 늘 처음 운전대를 잡을 때의 마음으로 다녀야 한다. 블랙박스 영상 모음이나 한문철 변호사님 채널을 보면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 교통사고들이 차고 넘치니까. 차 문을 열기 전 안전을 위해 기도하는 것도 잊지 말아야겠다. 사람 일은 정말 모르기 때문이다.
수년의 시간이 흐르고 흘러 [내돈내산 자동차 운전기]를 적는 그날까지 좋은 추억들을 쌓고 싶다. 그 이후에는 물론이고. 나의 친구들과 세상의 모든 운전자에게 이 글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