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성장흐름 Feb 02. 2021

달콤한 것과 좋은 것은 다르다.

무엇을 전하고 따라야 하는가?

달콤한 것과 좋은 것은 다르다. 이 둘을 구분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먼저 이 개념을 확립하기 위해 커다란 가지를 먼저 적어둔다.


1. 달콤한 것은 좋은 것일 수도 있고, 좋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2. "자신"에게 달콤한 것은 "자신"에게 좋다.

3. 자신에게 달콤한 것이 실제로는 나쁜 것일 수도 있다.

4. 자신에게 달콤한 것이 실제로는 좋은 것이면 으뜸이다.


- "달콤한 것"은 개인의 취향에 따라 달라지는 것, "자신"은 한 명의 개인을 말한다. 실제로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는 선악과 도덕률이 정립된 세계에서 판별된다.




 빙수나 와플처럼 단 간식을 좋아하는 소년이 있다. 소년에게 있어서 빙수는 달콤한 것이다. 그는 달달한 맛을 즐기니 그에게 빙수는 당연히 "좋은 것"이 된다. 즉, 자신에게 "달콤한 것"은 무조건 "자신에게 좋은 것"이 된다. 하지만 초콜릿, 빙수가 달달하다고 좋아라 먹으면 어떻게 되는가? 그 아이는 이가 썩게 되어 치통을 앓게 될 것이다. 이것을 방지하기 위해 아이에게 좋은 것은 "양치질"이다. 아이는 다시 선택할 수 있다. 이전의 욕심대로 단 음식을 먹고 이를 아프게 방치할 수 있으며, 양치질을 고름으로써 치통을 예방할 수 있다. 물론 내가 아이에게 한 마디 할 수 있다면 당연히 양치질을 권할 것이다.


 횡단보도를 통하지 않고 도로를 가로질러가면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 건너는 사람 입장에서는 무단횡단이 달콤할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좋은 것일까? 보행자의 일시적인 달콤함이 운전자 가족에게는 평생 운전하지 못할 트라우마를 선사하기도 한다. 이때 좋은 것은 신호를 잘 보고 횡단보도로 걷기이다. 생각해보면 너무도 당연한 것이다. 


 한 가지 더 이야기 해보자. 지금 시대는 미디어가 워낙 활성화된 탓에 음란물의 유포가 쉽게 이루어지고 있다. 이를 통해 개인은 성적인 만족을 누릴 수 있다. 하지만 이 달콤함은 결코 좋은 것이 아니다. 아이가 와플을 먹다가 충치를 얻는 것처럼, 부적절한 성 관련 게시물은 개인을 자극하며 나쁜 곳으로 안내한다. 달콤한 것을 계속해서 좇다가 결국은 범죄를 저지르고 TV에서 종적을 감추게 된 연예인들이 있지 않은가? 그들뿐만이 아니다. 화제가 되었던 N번방 관련 사건들 역시 성의 가치를 더럽힌 증거이다.




으뜸의 모형

자신에게 달콤한 것이 "세상"에서 좋은 것이면 으뜸이다.


 최고의 모형은 자신에게 달콤한 것이 세상에서 좋은 상태이다. 공자는 70세에 종심(從心), 마음에 따라 행동하여도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경지에 이르렀다. 자신에게 달콤한 것을 따라 행하여도 법에 저촉되지 않으며, 오히려 주변에 선함을 끼치는 것이라면 그의 삶은 주변에 건강한 에너지를 준다. 필자가 목표로 하는 삶 역시 이 으뜸의 모형이다. 


 따라서 우리는 달콤한 것과 실제로 좋은 것을 확실히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이 능력을 얻기 위해서는 먼저 최소한의 교육이 필요하다. 신호등의 원리를 가르쳐주지 않고 도로를 건너라고 말할 수 없다. 신호등의 각 색상이 무얼 의미하는지, 횡단보도를 건널 때는 좌우를 살피고 천천히 걸어야 함을 가르쳐주어야 한다. 이 단계까지는 교육의 몫이다.


 교육을 통해 어느정도 성숙을 이룬 개인은 관찰과 경험을 통해 스스로 올바른 것을 따를 수 있다. 이 수준부터는 교육의 힘보다는 그 사람의 의지와 노력이 으뜸의 것을 발견해나가는 동력이 된다. 다만, 성숙을 이룬 개인은 올바르지 않은 것을 의도적으로 택할 자유 또한 갖고 있다. 무서운 것은 양치질 하지 않고 초콜릿을 먹는 아이가 아니라 타성에 젖어 무단횡단을 반복하는 어른들이다. 뒤늦게 "어른들이 미안해."라는 말을 하지 않기 위해서 먼저는 윤의에서 이탈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어떤 것을 전하고 따라야 하는가?


 메신저, 교육자는 "달콤한 것"과 "좋은 것"을 구별하여 전해야 한다. 필자가 고등학생이었을 당시, 담임 선생님께서 학급에 피자를 돌린 적이 있었다. 학생들에게 그 피자는 달콤하다. 선생님은 베풂으로 기쁨을 느끼고 학생들은 맛있는 간식을 먹을 수 있으니 모두가 기분은 좋았을 것이다. 여기서 교사는 한 가지 더 가르쳐주어야 한다. 피자를 다 먹었으면 상자는 어디에 버려야 하는지, 남은 콜라는 어떻게 처분해야 하는지, 뒷정리는 어떻게 하는 게 바람직한지 알려주어야 한다. 


 기본적으로 우리가 따라야 하는 것은 공동체의 가치이다. 공동체가 오랫동안 유지되었다는 것은 그 구조를 지켜낸 규칙이 있기 때문이다. 위에서는 학급이라는 하나의 공동체를 예로 들어 설명했지만, 우리는 사회를 이루어 살고 있다. 성문화 된 법들이 규칙이고, 수많은 도서에서 반복되어 강조되는 도덕적 가치들이 규범이다.


 하지만 공동체의 가치 역시 올바르지 못할 때가 있다. 애초에 그 집합의 성격이 불건전하거나, 혹은 건강한 모임인데도 불구하고 융통성을 핑계삼아 규칙을 어기는 경우다. 이때는 공동체에 맞서 불복종할 때가 온다. 본인이 최우선으로 여기는 가치가 공동체가 추구하는 것보다 정의롭고 공의롭다면 공동체를 넘어 외쳐야 하며, 옳지 못한 조직의 행동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항의하는 것이 옳다.
















작가의 이전글 "아무개 씨"와 "아무개 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