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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치용 Feb 21. 2020

쌍팔년 수습기자가 술 먹고 전사한 곳에는


요즘은 달라졌지만 내가 기자가 되었을 때 수습기자 교육의 진수는 '사스마우리'였다. 약간의 엄포와 통과의례를 마친 자의 여유 같은 걸 풍기는 이들은 대체로 1~3년 선배들이었다. 주로 사회부에 남아 있는 선배들이 말하자면 나와 내 입사 동기들의 '사수' 역할을 수행했다.

요즘은 달라졌는지 모르겠지만, 당시에 기자는 술을 많이 먹는 직업이었다. 날 처음 보는 사람은 나름 센 '액면' 때문에 술을 잘 먹을 것으로 넘겨짚었고, 나를 잘 아는 가족이나 친구들은 나의 약한 주량이 내 직업생활에 미칠 부정적인 영향을 걱정했다.

수습기자 교육은 군기잡기로 점철됐는데, 요즘 같으면 인권위에 달려갈 만한 상황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났다. 만주에서 독립운동 하던 시절의 무용담을 늘어놓으려는 건 아니고 통과의례를 대하는 태도가 빚어낼 엇갈린 운명을 얘기하고자 함이다.

수습기자들을 경찰서로 처음 내보내는 밤이면, 캡(시경 출입기자로 사회부 사건기자의 우두머리 역할을 한다. 이른 바 민완기자는 캡을 거친다. 나? 당연히 못 했다.)을 위시하여 '기라성' 같은 선배들이 쭉 포진하고 수습기자들도 긴장한 채 동석한다. 어느 정도 술이 돌고 나면, 각자 맡은 경찰서로 (사스마와리 하러) 보내기 전에 '출정주'라는 걸 마신다. '충성주'와 비슷한 개념이다. 문제는 앞서 언급했듯 내가 술이 엄청나게 약하는 것. 그렇지만 양동이에 필적할 큰 그릇에다 돌려먹는 술이다 보니 내가 조금이라도 기여하지 않으면 다른 동기들이 그 만큼 더 큰 부담을 지게 된다. 하여 나는 최선을 다해 마셨고, 나만큼이나 술을 못 먹는, 지금도 경향신문에서 건필을 휘두르고 있는 아무개군도 최선을 다해 마셨다.


두 사람은 정량을 과도하게 초과한 상황을 어떻게든 해결해야 했는데, 아무개 군은 바닥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서 먹던 식당의 테이블 위에다 그대로 토하는 그야말로 기염을 토했다. 요즘에 정말로 보기 힘든 풍경이지 싶다. 나는 입 안까지 차오른 이물질을 사수하며 아무도 모르게 화장실로 달려가 장엄하게 또 고독하게 홀로 인생의 실체를 확인했다. 이후의 수습 교육과 회사생활이 두 사람에게 판이하게 펼쳐졌으니, 아무개 군은 술자리에서 술을 면제받은 반면 나는 그 뒤로도 10년 이상을 화장실의 실존과 대면해야 했고, 그 정도 성의를 표한 뒤에서야 사역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정말 쌍팔년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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