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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탄생설화6]그리스도의 어머니 혹은 신의 어머니?

by 안치용


예수 탄생에는 많은 논란이 존재하지만, 마리아가 불변의 상수라는 사실만은 확고하다. 부활 사건의 유일한 실체가 ‘빈 무덤’이듯, 탄생 사건의 유일한 실체는 ‘성모’이다. 즉 포유류의 혈통이 오직 모계만으로 확증되듯이, 예수 탄생 사건에서 논란은 마리아란 유대 여성을 예수의 어머니로 확인한 가운데 도대체 그의 생물학적 또는 진짜 아버지가 누구냐는 것이다.


고대 기독교 교회가 발전하고 기독교가 지중해 세계의 세계종교가 되면서 마리아와 관련한 의혹 또는 예수의 혈통에 관한 질문은 원천적으로 금기시되었고, 대신 전쟁을 방불케 할 교리 논쟁이 활발하게 펼쳐진 가운데 마리아의 신학적인 지위 문제가 뜬금없이 대두된 적이 있다. ‘성모’로 뭉뚱그려진 마리아에게 기독교 신학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지위를 부여하는 것이 합당하냐는 토론으로, 마리아가 예수의 어머니인 만큼 불가피하게 다른 신학 주제와 얽히게 된다.


이러한 토론은 기독교가 박해받는 종교에서 지배자의 종교로 변모한 4세기 중반 이후 전개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초기 기독교의 3대 신학 학파 중 안디오키아 학파와 알렉산드리아 학파가 주로 대립하는 양상을 보였다. 두 학파는 등장 이후 끊임없이 대립하며 기독교 신학을 토대를 형성하였고, 학파가 사라진 뒤에도 양대 신학이 맞선 논쟁은 무수히 많은 변주를 통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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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교회에서 성모 마리아와 관련한 논쟁에 불을 붙인 인물은 로마 제국의 콘스탄티노플 교회 감독 네스토리우스(Nestorius, 381∼451년)였다. 이 논쟁에서 겉으로 드러난 것은 마리아의 호칭이었지만 그 내용은 기독교 교리의 근본에 관한 대립이었다.


A.D 428년 성탄절 설교에서 네스토리우스는 마리아를 ‘그리스도를 낳은 분’(크리스토토코스, Χριστοτοκος)으로 불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견 타당해 보이는 ‘그리스도를 낳은 분’ 즉 ‘그리스도의 어머니’라는 호칭이 왜 당시 기독교 사회에서 격렬한 논쟁을 일으켰을까. 왜 이 일로 네스토리우스는 이단으로 몰려 감독 자리에서 쫓겨난 것은 물론 이집트 유배생활 중 사망하게 되었을까.


당시 교회에서 마리아의 공식 호칭은 ‘하나님의 어머니’(테오토코스, Θεοτόκος)였다(테오토코스는 라틴어 ‘마테르 데이(Mater Dei)’로 번역되어 가톨릭교회에서 아직 쓰인다.). 마리아가 그리스도의 어머니이냐, 하나님의 어머니이냐는 것이 논쟁의 핵심이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라고 부를 때 흔히 예수가 인성을 의미하고 그리스도가 신성을 의미한다고도 받아들이는데, 엄격하게 말해 유대인의 어휘에서 그리스도는 ‘기름부음을 받은 자’라는 의미로 임금과 같은 세상의 지배자 성격을 갖는다. ‘예수 그리스도’의 그리스도에 신성이 가미된 것은 사실이지만 신성 자체는 아니며 더군다나 마리아의 호칭을 통한 간접 정의(定義)일 때는 ‘하나님의 어머니’가 ‘그리스도의 어머니’에 비해 예수의 신성을 확고하게 드러낸 게 사실이다. 반대로 ‘하나님의 어머니’로 부르던 것을 ‘그리스도의 어머니’로 바꿔 부르게 되면, 애초에 그렇게 부른 것이 아니어서 신성의 박탈 및 인성의 본격화란 반응을 불러오기에 십상이었다.


기독교 형성기에 단성론과 양성론으로 대변되는 그리스도론이 마리아의 호칭을 통해 불거진 사건이었고, 이후 파장은 만만치 않았다. 신인(神人)인 예수에는 신성(神性)과 인성(人性)이 모두 포함돼 있는데, 두 가지 성격의 조합을 신성 중심으로 파악하면 단성론, 인성 중심으로 파악하면 양성론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설명은 매우 불충분해 상당한 오해를 불러올 수 있지만, 이 책이 신학을 다루는 책이 아닌 만큼 단성론·양성론 논쟁은 이 정도로 넘어가도록 하자. 한국에 전해진 서방 교회의 전통에서는 양성론의 그리스도론이 옹호된다. 양성론을 주창한 네스토리우스가 그 시기에 파문당한 역설적 상황은, 그 논쟁이 꼭 교리의 옳고 그름을 반영하였다기보다는 교회 정치의 수단으로 활용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해되지 싶다.


마리아가 예수의 어머니라는 사실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그리스도론에 따라 마리아의 호칭이 달라진 사건은, ‘빈 무덤’의 의미가 부활과 시체 탈취라는 사전 확증에 따라 달라지는 것과 흡사하다.


물론 형식논리학적 말장난에 불과하겠지만, 흥미롭게도 ‘하나님의 어머니’란 호칭을 통해 마리아는 천지만물 중에서 가장 높은 존재가 되었다. 마리아는 자신 사후에 이런 논쟁이 벌어지리라고 짐작조차 할 수 없었을 것이다. 호칭에 숨은 신학과 교회정치와 무관하게 마리아가 예수의 생물학적 어머니이자 생물학적 아들의 죽음을 비통하게 지켜본, 참척 본 비운의 인물임은 사실이다. 십자가에 못 박혀 매달린 예수가 어머니 마리아를 보는 장면을 「요한복음」 19장 26절은 이렇게 묘사한다. “예수께서 자기의 어머니와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서 있는 것을 보시고 자기 어머니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나는 죽어가는 예수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이 마음 아프지만, 그의 시선 끝에서 죽어가는 아들 예수를 지켜보는 마리아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이 인간적으로는 더 마음 아프다. 마리아는 확실히 예수의 어머니였다.



<예수가 완성한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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