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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탄생설화5]예수는 정말 베들레헴에서 태어났을까

by 안치용


예수 탄생 사건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탄생의 시간과 장소다. 시간보다는 장소에 관한 논란이 더 첨예하다. 주지하듯 세계의 많은 곳에서 사용하는 B.C는 ‘Before Christ’ 즉 주전(主前)을 뜻하며, A.D는 ‘Anno Domini’를 줄인 말로 주후(主後)를 뜻한다. 여기서 ‘주(主)’는 그리스도이다. A.D와 B.C는 그리스도의 탄생 이전과 이후를 기원(紀元)으로 정한 서력(西曆) 연대 표기의 기준으로 9세기 샤를마뉴 시대에 일반화하여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A.D, B.C가 기독교 기원이기 때문에 비기독교 세계까지 사용할 수 있는 중립적인 표현으로 CE(Common Era, 공통시대), BCE(Before Common Era, 공통시대 이전)란 표기가 제안되어 병행하여 사용되고 있다. 상식으로 A.D와 B.C 사이에는 0년이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면 좋다. 착오라면 착오인데, 관행이 너무 오래돼서 바꿀 수가 없다. 특히 세기 표현에서 1세기는 현행으로 1~100년까지인데, 만일 A.D 0년이 생기면 A.D 0~99년이 1세기가 되고 A.D 100년은 2세기가 된다.


이러한 혼란과 함께 또 하나 당황스런 사실은, 실제 예수 탄생연도가 A.D 1년이 아니라 B.C ‘몇’ 년이라는 점이다. 주(主)의 탄생이 주전(主前) 시기에 있었다는 난센스가 오래전부터 상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어 큰 문제는 없지만, 사실 A.D, B.C보다 CE, BCE가 기독교의 관점에서도 더 논리적인 기원이긴 하다. 정확한 탄생연도는 모르지만 만일 BCE 4년에 예수가 탄생하였다고 말한다면 주(主)가 주전(主前) 시기에 탄생하였다는 논리적 꼬임은 피할 수 있다.


예수 탄생연도가 A.D 1년이 아니라는 것이 거의 정설로 받아들여진다고 할 때, 그렇다면 태어난 일자, 즉 성탄일은 언제였을까. 결론적으로 예수 탄생일은 누구도 모른다. 기독교인이 예수 탄생을 기념하는 날을 성탄절로 간주하여 축하할 뿐이다. 널리 알려진 12월 25일은 태양신 숭배와 관련된 축일로 전해진다. 중동과 로마의 이교도 축일이 성탄절로 전환한 셈이다. 초대교회에서는 1월 6일을 성탄절로 기념했다고 한다. 지금도 아르메니아 교회는 1월 6일을 성탄절로 쇤다. 예수가 탄생한 연도와 일자를 두고 수많은 연구가 있었다. 이른바 ‘역사적 예수’를 구명하는 중요한 출발점이긴 하지만, 더 뜨거운 논쟁거리가 많으므로 이제 탄생지로 넘어가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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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기독교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한 예수의 출생지는 베들레헴이다. 「마태복음」은 “헤롯 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라고 별다른 설명 없이 예수의 베들레헴 탄생을 기술한다. 갈릴리 나사렛에서 베들레헴으로 극적인 이동을 설명한 「누가복음」과는 대조적이다. 「마태복음」은 동방박사 경배 이야기를 시작하며 2장 6절에서 구약성서의 예언을 인용함으로써, 구약 예언의 실현과 하늘의 별의 인도를 받은 동방박사들의 경배를 통한 구주의 탄생을 입체적으로 표현하였다. 「마태복음」이 인용한 구약성서는 「미가서」 5장으로, 기독교인은 「미가서」의 이 부분을 예수 탄생을 예언한 것으로 느끼게 된다.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 그러므로 여인이 해산하기까지 그들을 붙여 두시겠고 그 후에는 그의 형제 가운데에 남은 자가 이스라엘 자손에게로 돌아오리니 그가 여호와의 능력과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의 위엄을 의지하고 서서 목축하니 그들이 거주할 것이라. 이제 그가 창대하여 땅 끝까지 미치리라. 이 사람은 평강이 될 것이라.

(「미가」 5장 2~5절)


“이 사람은 평강이 될 것이라.” 이 구절은 아름답다. 이 표현에 어울리는 사람이 있다면 두 말 할 필요 없이 예수 말고는 없다. 그러나 베들레헴에 원적을 둔 나사렛 예수가 아닌 그저 갈릴리의 나사렛에서 태어난 예수만으로는 평강이 되지 못하는 것일까. 신약의 사건을 구약의 구절 혹은 예언과 무리하게 연결지어 예수의 정통성을 제시하는 태도는 불편한 유대주의가 아닐까.


실증적인 기술 방식을 취한 「누가복음」의 베들레헴 탄생 이야기는, 별 다른 설명 없이 베들레헴 탄생을 선언한 「마태복음」보다 그 실증성으로 인해 더 논란이 되었다.


그 때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 하였으니 이 호적은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이 되었을 때에 처음 한 것이라. 모든 사람이 호적하러 각각 고향으로 돌아가매 요셉도 다윗의 집 족속이므로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서 유대를 향하여 베들레헴이라 하는 다윗의 동네로 그 약혼한 마리아와 함께 호적하러 올라가니 마리아가 이미 잉태하였더라. 거기 있을 그 때에 해산할 날이 차서 첫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누가복음」 2장 1~7절)


여기서 가이사 아구스도는 로마의 초대 황제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B.C 63~A.D 14)를 말한다. 구레뇨는 예수 탄생 즈음에 두 차례 수리아 총독을 지낸 로마인이다. 그의 총독 재임기에 인구 조사가 실제로 두 번 실시되었다. “모든 사람이 호적하러 각각 고향으로 돌아가매”라는 표현은 인구조사를 의미한다. 옥타비아누스란 이름을 가진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가 재위에 있을 때(B.C 27~14)에 예수가 출생하였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다만 로마의 인구조사에 맞춰 나사렛을 떠나 베들레헴으로 임신한 아내를 데리고 여행했다는 기술에는 상당한 이견이 존재한다. 베들레헴 탄생설을 의심하는 가장 큰 근거는, 로마의 인구조사가 있기는 있었지만 예수 출생시점에는 인구조사가 시행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베들레헴 탄생설을 지지하는 쪽에서 역으로 베들레헴 탄생을 뒷받침하는 ‘역사적’ 근거 또한 당연히 제시하였다.


예수가 실제로 베들레헴에서 태어났는지 아닌지는 개인적으로 관심이 없다. 물론 사료에 근거하여 합리적으로 추론할 수는 있겠지만, 최선을 다한다고 하여도 그 추론이 현재 시점에 확보된 사료를 근거로 하기에 항상 잠정적 결론일 수밖에 없다. 예수 출생 후 너무 많은 시간이 흘렀다.


다만 나사렛과 베들레헴 사이가 너무 멀다는 점은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인터넷에서 잠깐만 검색해도 두 지점 사이의 거리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확인할 수 있다. 나사렛~베들레헴의 직선거리는 약 120km로, 지형과 당시 도로여건을 감안하면 요셉과 마리아 부부가 200Km 안팎을 여행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종교화에는 임신한 또는 만삭인 마리아가 나귀를 타고 이동하는 것으로 그려지지만 「누가복음」에는 교통수단이 언급되지 않았다. 그리하여 혹자는 걸어갔을 것이라고도 말한다.


결과적으로 예수를 낳기 위한 이 긴 여정을 어떤 기독교인들은 감동적인 풍경으로 받아들이지만 베들레헴 탄생설을 믿지 않는 이들은 믿지 못할 근거로 활용한다. 알고 지내는 몇몇 신학자는 대놓고 말하길 꺼려도 사적으로는 “아마도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지 않았을 겁니다.”라고 말한다. 아마도 베들레헴 탄생설을 철석같이 신봉하는 신학자 또한 많을 것이다.


둘 중의 하나를 고르라고 하면 나는 예수가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지 않았다는 쪽이라고 할 수 있다. 베들레헴 탄생 여부가 나에게 크게 중요하진 않지만 베들레헴 탄생에 대한 약간의 심정적인 거부감은 있다. 예수는 그 천한 나사렛의 예수인데 실제로는 고귀한 베들레헴 태생이라는, 말하자면 반전이 나에게 너무나 세속적인 짜맞춤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갈릴리와 나사렛은 당시 유대인으로부터 천대받은 지역으로,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요한복음」 1장 46절)는 언급이 성서에 나올 정도다. 목수의 아들로 태어나 노동자의 삶을 산 나사렛 사람 예수가 알고 보니 베들레헴 태생이더라. 어쩐지 후대의 창작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으며, 오히려 예수에게서 예수를 지워버린 불경 같기도 하다.


이러나저러나, 즉 예수가 베들레헴에서 태어났든 나사렛에서 태어났든, 예수가 예수임에는 하등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이 사람은 평강이 될 것이라!


이제 베들레헴 탄생설과 관련한 제3의 관점을 살펴보자. 예수 탄생지 베들레헴이 지금 알고 있는 팔레스타인의 베들레헴이 아닌 다른 장소일 가능성이다.

2012년 12월 24일 �더 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이스라

엘 고고학자 아비람 오시리는 “예수가 탄생한 곳은 기존에 알려진 것처럼 팔레스타인에 있는 요르단강 서안지구의 베들레헴이 아니라 이스라엘 북쪽에 있는 갈릴리의 베들레헴일 가능성이 크다.”라고 밝혔다. 오시리는 “갈릴리의 베들레헴에는 예수 탄생 당시 많은 유대인이 살았지만 팔레스타인의 베들레헴엔 1세기에 사람이 살았다는 흔적이 없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예수 탄생 당시 갈릴리의 베들레헴에서 유대교 의식들이 행해졌다는 증거가 발견됐다.”라고 덧붙였다.


그는 “갈릴리의 베들레헴은 예수가 유년 시절을 보낸 나사렛에서 5마일 거리지만, 팔레스타인의 베들레헴은 100마일 넘게 떨어져 있다.”라고 지적했다. 또한 “임신한 마리아가 나귀를 타고 100마일 넘게 이동했다는 것보다는 5마일 거리의 장소에서 출산했다는 것이 더 납득할 수 있지 않는가”라고 말했다.


정리하면, 예수 탄생 후보지는 예루살렘에서 멀지 않은 예수탄생교회가 있는 팔레스타인의 베들레헴, 요셉·마리아와 예수의 고향 나사렛,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멀리 떨어진 갈릴리 지방의 베들레헴의 3곳이다. 당연히 정설은 남쪽 베들레헴이다. 어디에서 났든 예수 탄생은, 탄생 자체만으로도 복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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