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서가 쓰고 싶을 때 나는 라면물을 올린다
dagegen wird aber auch alle Regel, man rede was man wolle, das wahre Gefühl von Natur und den wahren Ausdruck derselben zerstören!
그러나 모든 규칙이라는 것은 결국 자연에서 우러나는 참된 감정과 마찬가지로 자연에서 우러난 참된 표현을 파괴한다네!
대학입학전형이 진행중입니다. 수시는 결과가 나온듯하고 정시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하네요. 당사자나 부모가 마음 졸이고 있겠지만 나와 자식 모두 대입을 통과했으니 그것이 지금 내게 특별한 관심사가 아닙니다. 그러나 대략 30대 중반까지 입시철이면 입시 우울증 같은 게 있었습니다. 심한 수준은 아니었습니다. 요약하면 삼수를 했고 원하는 대학에 가지를 못했는데, 남달리 자존심이 강한 젊은 날에 이 실패를 떨쳐버리기 어려웠던 것이죠.
어려서 머리가 좋은 편이었습니다. 입시와 관련한, 또 다른 인생 경험까지 포함한 총평은 천재 소리를 들을 만큼 머리가 조금 더 좋게 태어나든지, 조금만 더 겸손해서 더 노력했어야 한다입니다. 하지만 이후에 추가로 든 깨달음이랄까, 누가 물으면 해주고 싶은 말은, ‘조금 더’하면 좋았겠지만 하지 않았어도 괜찮다입니다. 그게 나였던 거죠.
건방진 고3의 건방의 대가
예민한 사춘기를 보내며 고3때 자살 시도로 예민의 하이라이트를 찍은 나는 이미 중3때 학교에서 큼지막한 자해 사고를 일으켜 꽤 장시간 결석했습니다. 지난 화에서 말한 팔의 상처가 중3때의 자해 시도에서 비롯했습니다. 중2무렵이면 진학할 전공이 이미 확고했습니다. 대학은? 당연히 S대였고, 다른 대학은 안중에 없었습니다. S대 법대를 희망한 건 아닙니다. 중1이면 모르겠으나 중2쯤이면 법대나 상대에 대한 멸시 같은 게 마음속에 자리를 잡을 정도로 건방이 하늘을 찔렀습니다.
공부를 열심히 하지는 않았습니다. 대신 책을 많이 또 열심히 읽었습니다. 난독하였고 개중에 일부러 난해한 책을 골라서 독파하곤 했습니다. 대표적인 책이 중3때 청계천 헌책방에서 구입한 마르틴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입니다. 무슨 말인 줄 이해하며 읽었을 리가 없습니다. 나이 들어서 다시 읽어야 했으니 그때 다른 책을 읽는 게 성장에 더 유익했을 것입니다. 나 그 책 읽었어라고 친구들이나, 혹시 어렵사리 기회가 생기면 또래 여학생에게 자랑칠 수 있었던 게 당시의 가장 크고 유일한 효용입니다.
고1때 수업중에 김학준 교수의 <러시아 혁명사>를 읽다가 교사에게 적발당했는데, 책을 보더니 “우아한 책 읽네”라고 하며 “들키지 않게 읽으라”고 돌려주더군요. 이 책은 <존재와 시간>만큼 무익하지는 않았지만 대학에 들어가서 읽는 게 더 낫지 않았을까요. 독서에 신경 쓴 것 말고는 담배 피우고 술 먹고, 길거리 배회하기로 청춘의 상당 시간을 사용했습니다. 싸움은 안 했습니다.
공부에 손을 놓은 건 아니고 대충했습니다. 무슨 근자감인지 그럼에도 내가 원하는 학교, 원하는 학과에 입학할 수 있다는 확신엔 추호의 흔들림이 없었습니다. 고2 겨울방학에 전념하기 시작해 고3 1학기까지는 나름 충실하게 입시 공부를 한 듯합니다.
마침내 학력고사 날. 구세대라 가부장제 의식이 강할 수밖에 없었던 어머니는 어떤 시험이든 시험 날 아침에 아버지를 일찍 깨워서 대문 밖을 나갔다가 다시 집안으로 돌아오게 했습니다. 자신을 포함해서 여자가 먼저 문을 출입하면 부정 탄다는 이유였습니다. 중요한 날이니 그날도 아버지가 새벽에 대문을 일착으로 나가야 했습니다.
워낙 대범한 청소년이었던 나는 하나도 떨지 않고 웃으며 시험장에 가서 학력고사를 보았습니다. 그날 시험은 시험에 관한 한 나에게 전무후무한 날로 남았으니 점심 다음 시간에 졸고 말았습니다. 강심장도 이런 강심장이 없다는 식으로 넘어가기엔 내 평생 시험을 치면서 존 경험은 아직 그때가 유일합니다. 잠에서 깨어 화들짝 놀라서 시계를 보니 답안을 제출할 시간이 임박했고 풀 문제는 많이 남았더군요. 찍기에 돌입했는데 별로 운빨이 좋지 않았습니다.
불길한 징조는 내신에서도 나타났는데, 0.0*% 차이로 4등급이 된 것이지요. 건성으로 학교에 다녀서 내신이 좋지 않을 건 알았지만 4등급은 좀 놀랐습니다. 우리 고등학교에서 그 학교에 원서를 낸 학생 중 4등급은 내가 유일했습니다. 내가 학교 다닐 땐 학력고사를 친 다음에 고3의 2학기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를 몰아서 봤는데 이 시기가 문제입니다. 학력고사라는 중요한 관문을 넘은지라 아이들이 해이해져 애연가들은 한 10분 만에 답안을 적어내고 화장실에 모여 담배를 피웁니다. 게다가 먼저 나간 학생이 교실 밖에서 이름을 부르며 빨리 나오라고 성화합니다. 나 또한 화장실 그룹의 일원으로 시험을 대강대강 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시험지를 붙들고 있는 게 좀팽이처럼 보이니까요. 요즘으론 상상할 수 없는 풍경입니다.
그럼에도 학력고사 점수와 내신 점수를 합해 그 학교 그 학과에 합격할 수 있다고 배치표상 판정받았고, 원서접수 첫날 1ㆍ2ㆍ3지망을 모두 같은 학과로 적어서 시원하게 서류를 냈습니다. 첫날 입시창구가 한산하다 보니 TV에 내가 접수하는 모습이 나왔습니다. 결과는 예상외로 낙방. 그해 의예과보다 물리학과 합격선이 올라가는 등 기초학문 선호 바람이 불었던 거죠. 2나 3지망을 다른 데에 썼으면 낙방까지는 모면했을지도 모르나, 호기로운 고3답게 시원하게 원서를 쓴 뒷감당을 스스로 해야 했습니다.
고3 마지막 학교시험을 얌전하게 보고, 학력고사 날 졸지 않고, 첫날 원서를 내지 말고 눈치작전을 좀 펴다가 융통성 있게 지원학과를 조정했으면 재수나 삼수를 피할 수 있었을 법도 합니다. 지금이라면 그렇게 했겠지요. 내 자식에게는 크게 보아 그런 식으로 지도했습니다. 하지만 그때 나는 누구 말도 안 듣는 세상에서 가장 자존심이 강하고 가장 주체적인 고3이어서 고집을 꺾을 사람이 없었습니다.
재수와 삼수의 양상 또한 비슷했습니다. 공부에 진력하고자 했지만 연애라든지 최선을 다하지 못할 사정이 꼭 생기고야 말더군요. 두 번의 S대 낙방 이후 훨씬 등록금이 비싼 사립 Y대에 입학했습니다. 잠시 사수를 생각했으나 자신의 한계를 알기에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물론 Y대가 명문대학이기에 이런 얘기를 하면 S대 출신을 제외하고는 오해하는 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예컨대 원희룡 의원 같은 사람은 씩 웃고 말겠으나, 그게 실패기냐, 머리 좋다고 자랑치는 거냐, 이런 부류의 감정 상한 반응이 제법 있을 수 있겠지요.
‘평온을 비는 기도’보다 중요한 것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각자는 자신에게 주어진 능력과 한계 안에서 삶을 열어나가는데 능력의 과신과 한계의 경시는 주어진 단계에서 개인에게 더 큰 노고를 부과한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능력과 역량에 부합하게 스테이지를 클리어할 수 있으면 그렇게 하는 게 참으로 유익하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려면 능력과 한계를 식별하는 분별력이 필요합니다. 분별력 또한 어느 정도 타고나는 것이기에 능력에 속한다고 할 수 있어서 사실 도돌이표가 찍히는 곤경에 직면합니다. 식상하게도 겸손이 중요하다고 말할 수밖에요.
이게 참으로 어려운 일임은 20세기의 저명한 신학자 라인홀드 니버(1892~1971)가 다음과 같은 ‘평온을 비는 기도(The Serenity Prayer)’를 남긴 데서도 확인됩니다.
GOD, grant me the serenity to accept the things I cannot change, Courage to change the things I can, and the wisdom to know the difference.
번역하면
“주여, 나에게 내가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평온과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꾸는 용기, 그리고 이 두 가지를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허락하소서”
입니다.
이제 당연히 ‘입시 우울증’에서 벗어났고, ‘평온을 비는 기도’에 관한 생각 또한 바뀌었습니다. 이 기도를 조금 삐딱하게 보면 성취지향적이라는 비판이 가능합니다. 겸손과 지혜가 언제나 유효하다는 전제하에, 두 가지 덕목이 모두에게 또 언제나 가능하지는 않다는 현실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대체로 결과론으로 뒤늦게 평온과 용기를 거론할 수 있을 뿐 바로 그 삶의 현장에서는 내가 그때 졸음을 피하지 못하였듯 사람들은 원하지 않은 길로 가곤 합니다.
그렇더라도 즉 능력과 한계에 관한 판단이 정확하지 않아도, 때로 판단을 그르쳐도 인생에 또 다른 길이 열리는 법이며 그 길이 더 나쁜 길인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때로 더 좋은 길이 열리기도 합니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인용문은 규칙(Regel)을 넘어서므로 얻게 되는 특별한 혜택을 직설적으로 제시합니다. 물론 규칙을 준수하며 얻는 혜택 또한 있습니다. 요체는 두 가지 혜택을 비교해서 큰 쪽을 선택하라가 아닙니다. 크게 보아 사람의 기질에 따라 어느 한쪽의 혜택밖에 얻지 못할 수 있는데 흔히 우리는 비교를 당연시하며 더 나은 선택을 하지 않았다고 자책하거나 비판하곤 합니다. 결과가 아닌 과정에서는, 내가 내린 그 선택이 나였기에 어쩔 수 없었다고 수용해야 합니다. 다음에는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겠지요. 과연 그럴까요. 실제로는 똑같은 선택으로 자책하는 상황이 또 빚어질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우리 인생에 지혜와 겸손이 작동하는 순간이, 참으로 바라지만, 생각보다 많지 않을 겁니다. 브라질 소설가 파울로 코엘료는 “배는 항구에 있을 때 가장 안전하지만, 배는 항구에 머물기 위해 만들어진 게 아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릇된 선택을 내리는 자신조차 자신이므로, 우리는 실수한, 실패한 자신에게 수고했다고 말해야 합니다. 다음에도 그 실수와 실패가 반복될지 모르지만 그래도 매번 다음엔 더 잘할 것이라고 격려해야 합니다. 내가 나를 사랑하고 믿어주지 않는다면 누가 나를 믿어주고 사랑해줄까요. 무엇보다 내가 나를 사랑하고 믿어주지 않으면 다음이란 아예 존재하지 않게 됩니다. 나라는 배는 어떤 종류의 배이든 출항해야 하며 배가 미약하고 항해술이 나쁘다고 정박만을 고수할 수는 없습니다. 바다를 향할 때 매번 겸손과 지혜로 더 나은 항해가 되도록 다짐할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