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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무드 Oct 10. 2022

궁금해서 기어간다

기기 시작




이삼  전부터 앉아서 궁둥이를 들썩들썩 하다가 슬쩍 떼보고,  슬쩍 떼보고 주저앉고 그랬다. 일어나려고 저러나.. 다리 힘이 부족해서 아직  되는 구나 했다.



지난 주부터는 엉덩이를 떼기는 하는데, 팔을 바닥에 짚고 쭉 밀어버리는 바람에 자꾸 뒤로만 기었다. 앞에 장난감이 보여서 가까이 가려고 하는데 점점 멀어져만 가니 짜증을 내다 울기도 했다. 애미야 날 좀 어떻게 해봐라 하는 눈빛을 보내서 앞에서 기기 시범도 보여줬다. 이렇게 엉덩이를 들고 팔을 딱 짚고 다리를 앞으로 옮기는 거야, 봐봐 이러면 몸통이 앞으로 가지? 그럼 또 팔을 앞에 짚는거야. 말 해주면서 시범삼아 아리아 주변을 빙글빙글 돌며 기어다니다 보면 애가 신기하게 쳐다봤다. 내가 얼마나 대단해보였을까. 대단히 빠르게 기어가는 나를 보며 팔을 위아래로 휘저으며 대단하다고 물개박수도 치고 꺅꺅 응원도 해줬다.



애미야 또 해봐라, 또 기어봐라, 하는 성원에 며칠 애 앞에서 기다가 피곤하기도 하고 흥미가 떨어져 요즘은 잘 안기었다. 또 애가 기기시작하면 지옥이 열린다는 사실을 자각한 후로 굳이 내가 그 지옥문을 서둘러 여는 꼴이 될까봐 그냥 가만히 둔 것도 있다. 그냥 앉아서 이번달 놀고 나중에 바르셀로나 가면 천천히 기라고 말해뒀다. 기기 시작하면 운동량이 많아져서 비행기타고 돌아갈 때도 골치아플 것 같았다.



오늘 베란다창고를 청소한다고 남편이랑 온통 끄집어내고 청소하고 있는데, 못 보던 물건들이 사방에 놓이니 정말 간절하게 다가가고 싶어졌나보다. 앉아서 장난감을 갖고 놀던 애가 점점 장난감을 밀어내고 내가 방금 꺼내 닦은 김치통, 스케치북, 앨범을 주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엉덩이를 들고 비틀비틀 버티더니 한 팔, 한 다리, 한 팔, 한 다리 하며 기기 시작했다.



기기 시작하는데 결정적인 것은 기술이 아니라 호기심이었다. 길 줄 알아서 기는 것이 아니었다. 새로운 것을 탐색하기 위해서 기어가는 것이었다. 스스로 몸을 제어할 줄 알게 되면 그 제어력을 이용해서 행동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욕구를 가지면 그를 충족하기 위한 행동을 하는 것이었다.



인간은 다 이렇겠지 싶다. 선욕구 후노력이 본능이지. 선기술 후성공이 아닌데. 먼저 뭘 하고 싶어해야 그에 맞는 노력을 하는 것이지, 일단 뭘 배운다음 그걸 써먹는 것이 아니구나 생각했다. 화가가 되고 싶어서 미술을 시작한 나와, 일단 그림그리는 걸 배웠는데 이걸 어디다 써먹지 궁리하는 나는 아주 다른 것이었다. 그 두 마음은 아주 다른 것이었다.



궁금함, 흥미, 욕구. 아주 중요한 것이었다. 여기서 시작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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