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엄마와 내엄마
바르셀로나 거리를 걷다 보면 유모차에 실려서 산책하는 아이들을 정말 많이 보게 된다. 전에는 몰랐는데 이제는 유모차 형태만 봐도 신생아구나, 6개월은 넘었구나 등을 알게 되었다. 내 눈은 보통 6개월 이상이 타는, 앉아서 가는 유모차를 좇으며 저 아기는 몇개월이나 되었을까, 산책중에 잠은 잘 잘까 궁금해한다. 그러다 아리아와 비슷한 월령의 아이를 마주치면 한번 더 쳐다보고 눈웃음이라도 한 번 더 지어주게 된다.
종종 아기가 바게트 빵의 끄트머리를 빨고 있는 것을 본다. 벌써 바게트를 먹어도 되는지 의아해하면서도 속으로 ‘당연히 안 되지! 저게 소금에 설탕에 버터에 어휴, 절대 안 돼’ 하며 내새끼의 건강한 입맛을 지키는 장한 어미로서의 자부심을 느끼곤 했다.
하루는 시엄마가 통밀로 만든 바게트빵의 꼬다리를 떼어서 아기를 주면 얼마나 쫍쫍 잘 빨아 먹는지 아느냐고 줘보지 않겠냐고 물었다. 내가 그러자 말자 대답이 없자 물론 속의 하얀 부분은 아기가 잘못 삼키면 질식 위험이 있으니 다 발라내고 겉의 딱딱한 부분만 주는 거라고 재차 물었다. 옆의 둘째 시누도 자기도 아기들 어릴 때 그렇게 주곤 했노라고, 그렇게 주면 애들이 한 시간도 그걸 물고 빨면서 엄마에게 쉬는 시간이 생긴다며 줘 보라고 했다.
나긋하게, 하지만 엄중하게 그러지 않겠노라 했다. 아직 소금도 설탕도 주고 싶지 않고 이유식을 진행하고 좀 후기에 넘어가면 생각해 보겠노라 했다. 시누는 바로 내 의견을 받아들여 줬지만 시엄마는 진짜 괜찮다고 한 번만 줘 보자고 했다. 싫다고 다시 거절했다. 그러고 다음 날도 한 번 더, 또 한 번 더, 잊을만 하면 한 번씩 빵을 지금부터 줘야 한다는 말을 하길래 아주 심각한 얼굴로 내 애 입에 들어가는 모든 것은 내가 알아서 시기를 결정할 테니 그만 재촉하라고 말했다. 너무 짜증스럽게 대답한건 아닌지 마음에 걸렸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 권유가 끝나지 않을 것 같았다. 속상한 얼굴의 시엄마는 알겠노라며 그 뒤로 빵 얘기를 다시는 꺼내지 않았다.
그리고 아이를 데리고 한국에 온 지 이 주일, 잘 자고 일어난 아침에 애가 없어져서 거실로 나왔다. 내 엄마와 아빠가 아기를 데리고 놀고 있었다. ‘하하 내가 자는 동안 아기를 데리고 나왔구나! 그렇게나 아기가 보고 싶었어!’ 생각이 드는 동시에, 내 시엄마가 같은 행동을 했더라면 내가 이렇게 부드러운 감정을 느끼지 않을 텐데 싶었다. 내가 생각해도 이중잣대다.
푹 잠 아침이 얼마나 상쾌한지, 꺄르륵거리는 내 아이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커피를 내렸다.
“어이구 그렇게 맛있쪄~”
“으이구 내시끼 이렇게나 잘먹오~”
엄마 아빠의 멘트가 수상하여 다가가 보니 내 아기가 식빵을 먹고 있다.
파리바게트의 버터식빵을 먹고 있다. 그것도 내 엄마가 버터에 또 구운 것을.
옴뇽옴뇽 잘도 먹는다. 지금 내 아이 입에서 버터향이 폭발하고 있다.
내가 뭐하는 거냐며 왜 이걸 주느냐고 하니 엄마가 구운 면은 빼고 속의 부드러운 부분만 골라서 주고 있다고 그런다. 오히려 구운 부분을 줘야 하는 건데…
왜 나한테 묻지도 않고 맘대로 애한테 뭘 주느냐고 하니 내 손주 먹는것도 내가 맘대로 못 주느냐고 화를 낸다. 엄마 손녀이기 이전에 내 딸이라고 하니 별 미친 사람 다본다는 표정이다. 아무튼 이제 나한테 묻지 말고 음식 주지 말라고 했더니 “싫어” 한다.
와… 내 시엄마는 진짜 양반이었다. 양반도 이런 양반이 없었다.
아무튼 이제부턴 식빵 주지 말라고 했더니 나한테는 대답도 안하고 아빠한테 새우깡 좀 가져오라고 한다. 내가 화들짝 놀라면서 무슨 새우깡을 주냐고 하니까 너도 니 동생도 다 그거 먹고 컸다고 별 유난을 다 떤다고 그런다. 그게 이 애한테 얼마나 짜고 자극적이겠냐고 하니까 쳇, 한다. 결국 새우깡은 주지 않았다.
그리고 어제 지하철에서 어떤 아주머니가 아이를 보고 예쁘다면서 사탕을 건네셨다. 그걸 정중히 사양하는 내 엄마가 하는 말이, “감사하지만 괜찮아요, 애가 아직 어려서 사탕을 못 먹어요. 제 딸이 워낙 유난이라 애한테 아무 것도 못 주게 하네요. 호호호 별꼴을 다봐요 호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