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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무드 Sep 21. 2022

7개월, 내 아이의 첫 빵

시엄마와 내엄마


바르셀로나 거리를 걷다 보면 유모차에 실려서 산책하는 아이들을 정말 많이 보게 된다. 전에는 몰랐는데 이제는 유모차 형태만 봐도 신생아구나, 6개월은 넘었구나 등을 알게 되었다. 내 눈은 보통 6개월 이상이 타는, 앉아서 가는 유모차를 좇으며 저 아기는 몇개월이나 되었을까, 산책중에 잠은 잘 잘까 궁금해한다. 그러다 아리아와 비슷한 월령의 아이를 마주치면 한번 더 쳐다보고 눈웃음이라도 한 번 더 지어주게 된다.


종종 아기가 바게트 빵의 끄트머리를 빨고 있는 것을 본다. 벌써 바게트를 먹어도 되는지 의아해하면서도 속으로 ‘당연히 안 되지! 저게 소금에 설탕에 버터에 어휴, 절대 안 돼’ 하며 내새끼의 건강한 입맛을 지키는 장한 어미로서의 자부심을 느끼곤 했다.


하루는 시엄마가 통밀로 만든 바게트빵의 꼬다리를 떼어서 아기를 주면 얼마나 쫍쫍 잘 빨아 먹는지 아느냐고 줘보지 않겠냐고 물었다. 내가 그러자 말자 대답이 없자 물론 속의 하얀 부분은 아기가 잘못 삼키면 질식 위험이 있으니 다 발라내고 겉의 딱딱한 부분만 주는 거라고 재차 물었다. 옆의 둘째 시누도 자기도 아기들 어릴 때 그렇게 주곤 했노라고, 그렇게 주면 애들이 한 시간도 그걸 물고 빨면서 엄마에게 쉬는 시간이 생긴다며 줘 보라고 했다.


나긋하게, 하지만 엄중하게 그러지 않겠노라 했다. 아직 소금도 설탕도 주고 싶지 않고 이유식을 진행하고 좀 후기에 넘어가면 생각해 보겠노라 했다. 시누는 바로 내 의견을 받아들여 줬지만 시엄마는 진짜 괜찮다고 한 번만 줘 보자고 했다. 싫다고 다시 거절했다. 그러고 다음 날도 한 번 더, 또 한 번 더, 잊을만 하면 한 번씩 빵을 지금부터 줘야 한다는 말을 하길래 아주 심각한 얼굴로 내 애 입에 들어가는 모든 것은 내가 알아서 시기를 결정할 테니 그만 재촉하라고 말했다. 너무 짜증스럽게 대답한건 아닌지 마음에 걸렸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 권유가 끝나지 않을 것 같았다. 속상한 얼굴의 시엄마는 알겠노라며 그 뒤로 빵 얘기를 다시는 꺼내지 않았다.


그리고 아이를 데리고 한국에 온 지 이 주일, 잘 자고 일어난 아침에 애가 없어져서 거실로 나왔다. 내 엄마와 아빠가 아기를 데리고 놀고 있었다. ‘하하 내가 자는 동안 아기를 데리고 나왔구나! 그렇게나 아기가 보고 싶었어!’ 생각이 드는 동시에, 내 시엄마가 같은 행동을 했더라면 내가 이렇게 부드러운 감정을 느끼지 않을 텐데 싶었다. 내가 생각해도 이중잣대다.

푹 잠 아침이 얼마나 상쾌한지, 꺄르륵거리는 내 아이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커피를 내렸다.


“어이구 그렇게 맛있쪄~”

“으이구 내시끼 이렇게나 잘먹오~”

엄마 아빠의 멘트가 수상하여 다가가 보니 내 아기가 식빵을 먹고 있다.

파리바게트의 버터식빵을 먹고 있다. 그것도 내 엄마가 버터에 또 구운 것을.

옴뇽옴뇽 잘도 먹는다. 지금 내 아이 입에서 버터향이 폭발하고 있다.


내가 뭐하는 거냐며 왜 이걸 주느냐고 하니 엄마가 구운 면은 빼고 속의 부드러운 부분만 골라서 주고 있다고 그런다. 오히려 구운 부분을 줘야 하는 건데…


왜 나한테 묻지도 않고 맘대로 애한테 뭘 주느냐고 하니 내 손주 먹는것도 내가 맘대로 못 주느냐고 화를 낸다. 엄마 손녀이기 이전에 내 딸이라고 하니 별 미친 사람 다본다는 표정이다. 아무튼 이제 나한테 묻지 말고 음식 주지 말라고 했더니 “싫어” 한다.


와… 내 시엄마는 진짜 양반이었다. 양반도 이런 양반이 없었다.


아무튼 이제부턴 식빵 주지 말라고 했더니 나한테는 대답도 안하고 아빠한테 새우깡 좀 가져오라고 한다. 내가 화들짝 놀라면서 무슨 새우깡을 주냐고 하니까 너도 니 동생도 다 그거 먹고 컸다고 별 유난을 다 떤다고 그런다. 그게 이 애한테 얼마나 짜고 자극적이겠냐고 하니까 쳇, 한다. 결국 새우깡은 주지 않았다.


그리고 어제 지하철에서 어떤 아주머니가 아이를 보고 예쁘다면서 사탕을 건네셨다. 그걸 정중히 사양하는  엄마가 하는 말이, “감사하지만 괜찮아요, 애가 아직 어려서 사탕을  먹어요. 제 딸이 워낙 유난이라 애한테 아무 것도 못 주게 하네요. 호호호 별꼴을 다봐요 호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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