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여기
어제 점심께 바르셀로나에 도착해서 짐을 풀었다. 큰형내외, 큰누나, 작은누나, 시엄마, 조카 모두 집에와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마어마한) 짐도 같이 옮겨주고 시엄마가 만들어둔 미트볼도 같이 먹었다. 오랜만에 보는 얼굴들이 반가웠다. 안부도 묻고 밀린 소식들도 듣고. 복작복작 왁자지껄한 오후를 보냈다.
아리아는 오랜만에 만난 가족들을 알아보지 못하는 눈치다. 거의 매일 통화한 시엄마는 알아보리라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나보다. 안기기는 커녕 자기 안으려고 손만 뻗어도 울고 불고 난리가 난다. 자기 만진다고 울고, 다가온다고 울다가도 내 품이나 남편 품에서는 다시 벙긋벙긋 웃으면서 이젠 자기 만져보라고 손을 뻗는다.
새로 난 아랫니 두 개도 자랑하고 기어가는 재주도 자랑하고. 울엄마와 갈고닦은 짝짜꿍도 선보였다. 애가 짝짜-꿍,짝짜-꿍, 하는 소리에 웃고 반응하며 박수를 치니 한국어도 모르는 모두가 짝짜-꿍을 따라 부른다. 오후 내 가족들과 신나게 놀면서 깔깔대고 웃으며 잘 있다가, 다들 집으로 돌아가고 조용해진 분위기에 스믈 스믈 잠이 밀려오는지 눈을 비비길래 얼른 안아 재웠다. 요람에 살짝 뉘여서 옆에서 지켜보다가 깊이 잠든 것을 보고 우리는 주방에서 거실에서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음식은 냉장고에, 옷은 방에, 애물건은 애방에, 캐리어에서 꺼낸 짐들을 대충 분류해두고 거실에서 혼자 티비를 보다가 잠들었는데 갑자기 통곡소리가 나서 방으로 뛰어들어왔다. 긴 여행에 지치고 새로운 환경에 힘들고 몸은 졸린데 낮이고, 자다 일어나서 아침이어야 되는데 아직도 깜깜하고. 쉬었는데 아직도너무 피곤하고. 그랬던 것 같다. 처음 듣는 울음소리였다. 길고 낮게 곡을 하듯이 울었다. 어찌나 서글프게 우는지 내 마음도 슬펐다. 품에 꼭 안고 엄마 여기 있다, 다 괜찮다, 지나갈 거다, 하면서 달래주는데도 쉽게 진정이 되질 않았다.
우는 소리가 너무 구슬퍼서 아직 어린아이를 데리고 너무 긴 이동을 한 것이 후회스럽기도 했다. 내 이기심에 애를 데리고 그 먼 길을 오고 간 것이 아닌가 싶었다. 비행기에서, 공항에서, 환승을 하며, 짐을 찾느라, 입국수속이니 검사니 하면서 아이를 낯선 환경에 너무 과하게 노출시킨 것 같아서 미안했다. 내가 미안하다, 잘못했다 사과하고 끌어안고 진정시켜줘도 울음소리가 멈추질 않았다.
겨우 겨우 잠이 들었나 싶었는데 한시간 반, 두시간 마다 깨서 그렇게 울었다. 밤새 끊어 자느라 피곤했는지 여섯시쯤 다시 잠든 아이는 아홉시가 넘어서 깼다. 다행히 이번에는 개운하게 깼다. 일어난 애가 나를 보고 다시 벙긋 하고 웃었다. 마음이 안정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