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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은정 Mar 12. 2018

연극 [아마데우스] 이충주 살리에리, 조정석 모차르트

내 인생에서 가장 자유로웠던 때가 언제냐고 묻는다면 첫 생각으로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오직 대학을 가겠다는 일념으로 버텨낸 고등학교 3년을 마치고 아빠의 유언대로 대학에 합격했을 때 무엇이든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밝은 나의 에너지는 학우들과 교수님들한테도 통했고 과대표를 맡아 학과에 충실하는 듯 했지만, 전망이 좋다고 해서 선택한 전공이 나에게 좋을 리가 없었다.

그렇게 1학년 2학기 때 나는 연극 동아리에 빠져들었다. 학교 앞 작은 놀이터에서 선배들과 새우깡에 소주를 마시면서 극예술을 외치며 감정 선을 유지하기가 힘들다는 둥, 주인공이 미친 연기를 어떻게 하면 더 미쳐보이겠냐는 둥 반은 울고 반은 멋진 우울에 빠져 있던 그 시기가 나에게는 가장 큰 자유였다. 연극을 하는 사람들이 어쩌면 모두가 탐낼지도 모르는 <귀로>의 주인공을 맡았기 때문이었고, 그렇게 대학 성적은 장학금에서 all F를 받는 사태에 이를 만큼 연극에 빠져 있었다. 연극 동아리 담당 교수님은 나보고 대학로로 진출하는게 어떻겠냐고 했고, 고등학교 때 모아두었던 천만원이 모두 소진되었을 때 학교를 휴학하면서 연극도 그만두었다.
그래서 늘 무대가 그리웠고 그립다는 말이 회의감이 들 정도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지만 그 숨결이 취미가 된 것이다.

연극과 뮤지컬을 내 돈을 내고 볼 수 있는 형편이 되고 나서 대학로에서 일주일에 4편씩 연극과 뮤지컬을 봤다. 하도 많이 보니 출연하는 배우들과 친해져서 길가다 만나면 아는 척을 할 정도였으니 그건 뭐였을까? 연극 무대를 향한 혹은 내 이른 포기에 대한 보상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그때 대학로는 1만원이면 다 됐는데 이제 뮤지컬의 전성기에서는 좋은 자리에서 보려면 10만원이 훅 넘는다.
이제는 정말 간간히 꼭 보고 싶은 뮤지컬을 꼽아서 몇 달에 한번씩 보는 것을 감히 '취미'라고도 말하지 못하지만 여러 낙 중에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연극이라니. 이건 너무 반가운 거 아닌가? 뮤지컬이 아니라 연극.
내가 가지고 있는 원칙 중에 아주 무너지기 쉬운 얆은 원칙이 유명 연예인이 나오는 뮤지컬 캐스팅은 보지 않는다, 꼭 뮤지컬 배우들이 나오는 캐스팅을 본다는 원칙이 있다. 그것이 내가 배우를 보러 간 것이 아니라 극을 보러 간 것이라는 비용에 대한 예의 같은 거다.
연극 [아마데우스] 소식을 접하고 캐스팅이 배우 조정석이라는 소식을 접하자마자 바로 컴퓨터 앞에 앉았다. 남아있는 표 중에 가장 앞자리를 예약하고 얼마나 설렜는지 모른다. 저녁 강의나 지방 강의가 잡힐까봐 조마 조마. 다행히 서울에서 미팅과 강의를 마치고 연극을 본다. 뮤지컬도 나름의 매력이 있지만 극의 전부를 대사와 움직임으로 채운다는 것이 너무나 설레서 기다리는 시간 동안 누가 보면 초조한 사람 같았을지도 모르겠다. 배우 조정석은 원래 연극과 뮤지컬을 했던 배우이고 평소 호감도가 매우 높은 배우라 언제 나올지 몹시 기다려졌다. 그런데 이건 무슨 일인가. 살리에리를 맡은 배우 이충주의 무대 흡입력이란..!!! 어느새 그저 감탄만 하면서 무대를 바라본다. 살리에리는 거의 퇴장도 없이 잠깐의 암전만 있을 뿐 무대에 머문다. 극을 이끌어가는 당사자로서 관객들을 숨을 고요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그러면서 과잉되거나 소박하지 않고 강건한 중심과 내면에서 울려오는 에너지가 느껴진다.
배우 조정석이 나오고 처음에는 조정석을 봤다. 좋아하는 배우를 보니 좋아서 봤다. 그리고 그 자리에 한 시대에 한 사람으로 살다 간 모차르트가 있다. 눈물이 많이 났는데 가장 큰 것은 모차르트가 음악가로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한 인생으로 다가왔기 때문이고 살리에리와 모차르트 그리고 조연들과 앙상블까지 무대에서의 움직임이 감명적이어서 눈물이 났다.
배우 조정석은 맡은 배역이 그러하기도 했지만 무대를 말 그대로 휘젓고 다닌다. 온통 내 세상이고 온통 내 무대라는 것을 증명한다.
그의 연기는 연기라기 보다는 무대에서 인생을 사는 느낌이 짙다. 몰입이 아니라 그냥 그 곳을 살아낸다. 우리가 관객으로 그 시간만큼 인생을 살아가고 있듯이 그도 그 시간만큼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 연극을 가장 칭찬하고 싶은 것은 연극답게(답게를 정의를 내려보자면) 극 인물의 고뇌와 번민과 두려움을 처음부터 끝까지 잘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대본을 썼다고 해서 그렇게 표현되는 것이 아니다. 거기에는 분명 배우들의 고뇌와 번민과 두려움이 준비되어 있어야 가능하다. 그 배역을 향해서 말이다. 배우 송강호가 말한 것처럼 배역을 향한 '진심'이 있어야 그런 것들이 드러난다.
뮤지컬이 끝났을 때 마음이 차오르고 격양되는 그런 커튼콜이 아니라 무한 지지와 경탄을 보내고 싶은 한 켠을 툭 내려놓은 것 같은 커튼콜이었다. 사실 무대가 계속 되어도, 저 삶 속에 계속 묻혀 있어도 괜찮겠다 싶을 정도로 촘촘한 연극이었다.
연극 <아마데우스>, 배우 이충주와 배우 조정석 그리고 살리에리와 모차르트에게 감사를 보내며.

원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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