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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은정 Apr 02. 2018

영화가 나에게 하는 질문들
<8월의 크리스마스>3

3) ‘멈춤’은 영원을 꿈꾼다 

우리는 어떨 때 사진을 찍는가? 좋은 순간, 기억하고 싶은 순간, 예쁘고 근사할 때, 기념하고 싶을 때 사진을 찍는다. 정원과 다림은 처음으로 사진관을 나와 다른 연인들 같은 아니 마치 연인들 같은 데이트를 한다. 다림의 친구가 일하고 있다는, 그래서 표를 공짜로 준다고 했지만 갈 시간이 없어서 가지 못했다던 놀이동산에서 둘은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다. 아니 근데, 놀이동산에서 기본은 사진 찍기 아닌가? 그리고 정원이 명색이 사진관 사장님인데 데이트에서 사진 찍는 장면 하나 나오지 않는다. 물론 둘의 데이트는 완벽하다. 그 완벽한 데이트는 어디에 찍혔을까? 

그 완벽한 데이트가 그들이 만나는 마지막이 된다.(영화를 보는 내내 한번을 얼굴을 마주하기를 얼마나 간절히 바라게 되는지..) 

이 영화에서 ‘멈춤’, ‘정지’의 의미가 크게 두가지로 드러난다. 하나는 사진, 또 하나는 죽음.  

사진도 현재를 영원히 현재로 머물게 하는 것이지만 죽음 역시 현재를 영원히 머물게 하는 것이다. 정원은 사랑이 변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다. 지금의 감정이 영원할 거라고 믿지 않는다. 하지만 죽음을 통해 그 사랑이 영원히 현재에 머물게 되었다는 것을 안다. 사랑을 하고 있는 동안 맞이한 죽음은 그때의 사랑을 영원히 간직할 수 있게 해준다. 정원에게 말이다. 

아마 정원은 영원히 다림을 사랑할 것이다. ‘현재’에서 멈췄기 때문에 그 현재에 영원히 머물 수 있다. 다림이 재잘재잘 말하던 모습도, 다림이 귀엽게 쳐다보는 모습도, 다림과 같이 뛴 운동장의 기억도, 다림과 같이 간 놀이동산의 기억도 정원의 마음 속에 모두 찍혀있다. 그것은 퇴색되거나 변하지 않고 영원하다. 

정원은 다림에게 편지를 쓴다. 자신이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다림이 놓고 간 편지를 읽고 자신의 마음을 전하기로 결심했는지도 모르고, 사진이 곧 죽게 될 거라는 것을 알려야겠다 마음 먹었는지 모르지만 다림에게 편지를 쓴다. 그리고 그 편지는 직접 전해지지 못한다. 

정원은 사진관에서 홀로 자신의 현재를 남겨진 사람들을 위해 사진을 찍는 것으로 삶을 마무리 한다.  

영원한 사랑은 없다, 라고 말한다. 사랑은 처음과 달리 언젠가는 변하고 언젠가는 잊혀진다. 그러나 사랑하고 있는 그 중에, 사랑이 미처 결론에 다다르기 전에 죽음(멈춤)을 맞이하면 그 사랑은 거기에서 함께 멈춘다. 그리고 멈춘 채로 지속된다. 적어도 죽은 사람 입장에서 말이다. 

그래서 정원은 다림에게 남기는 편지에서 사랑을 간직한 채 떠날 수 있게 해준 당신께 고맙다는 말을 한다. 두 사람의 사랑은 다림 입장에서는 아닐지 모르겠지만 정원 입장에서는 영원한 사랑을 이루게 된 것이다. 

주인공 정원에게 8월은 그런 의미일 것이다. 겨울이 미처 오기 전에 세상을 보냈지만 마치 선물같은 다림과의 사랑을 선물로 받았고 이미 크리스마스를 보냈다. 원래 이 영화는 ‘편지’라는 제목을 생각했었다가 당시 박신양, 최진실 주연의 영화 [편지]가 먼저 개봉하게 되면서 [8월의 크리스마스]라는 제목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인생의 가장 절정이라고 할 수 있는 시점에 세상을 떠나야 하는 주인공의 시간을 반영한 것이라고 하는데 많은 중의적인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를 보는 나의 시점에서 제목이 어떻게 다가오는지를 생각해봐도 좋을 듯 하다.  

이 영화로 영화 인문학 강의를 할 때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부분이 바로 공간과 아날로그의 느낌이다. 영화가 분주하게 흘러가지 않고 관객들에게 공간을 내주고 그 공간에서 많은 사색과 감정이입이 일어나도록 한다. 사건사고가 빠르게 진행되지 않아도 지루하거나 비어있지 않다.  

또한 요즘처럼 연락과 고백이 빠른 시대가 아닌 사진관이 아니면 연락할 방법이 없는 시대라 더 마음 졸이고 그런 시간을 감내한다. 고백은 직유가 아닌 은유로만 이어지고 직접이 아닌 간접으로 이루어진다. 그렇기에 그 추억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때의 기억과 감성을 소환해주는 역할을 한다. 

또한 배우 한석규와 심은하가 주는 느낌도 특별하다. 그들이 보여줄 수 있는 그들의 최상의 편안한 모습을 보여주듯이 정말 군산에서 그렇게 지내고 있을 것 같은 사람들로 분하여 관객들에게 다가온다. 우리의 그때의 ‘현재’에서 아주 중요했던 두 배우를 만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인간은 삶에서 영원을 꿈꾸고 영원한 삶을 갈망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은 죽음으로서 가능해진다. 그 채로 멈추는 것은 그 채로 머물 수 있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되어 우리를 찾아온다. 그리고 말을 건다. 우리의 ‘현재’는 영원하다고. 


<대사> 

“내 기억 속에 무수한 사진들처럼, 사랑도 언젠가는 추억으로 그친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습니다. 당신만은 추억이 되질 않았습니다. 사랑을 간직한 채 떠날 수 있게 해준 당신께 고맙다는 말을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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