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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은정 Apr 30. 2018

[영화 인문학 칼럼] 나의 작은 숲. <리틀 포레스트>


영화를 보면서 이렇게 생각을 안 한 적이 있었던가. 사건이 어떻게 해결될지, 주인공은 괜찮을지, 결말이 어떻게 될지, 심지어 주인공과 비슷한 나는 어떻게 살고 있는지조차생각하지 않은 것 같다.


그 이유를 다음 세가지로 정리하고 싶다.


첫 번째는 영화가 여러 질문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주인공 그리고 주인공 주변 인물들을 이용해 여러 질문을 던지며 나를 돌아보게 하는 영화가 아니라, 그저 주인공의 이동을 따라가면서 자연스럽게 녹아 들고 굳이 지금 당장 대답하지 않아도 될 질문을 바람이 불듯이닿게 한다.


‘그대의 작은 숲은 무엇인가?’라고 묻지 않고 주인공의 작은 숲 안에서 같이 숨쉬게 한다. 답도강요하지 않고 질문도 강요하지 않는다


두 번째, 놀라게 하지않는다. 서사는 계속 이어지고 있고 변화도 분명 일어나고 있는데 그것들이 관객을 놀라게 하거나 당황스럽게하지 않는다. 분명 시선을 계속 붙들어두려면 필요한 기법이련만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엄마가 떠나는 큰 변화 역시 주인공이 덤덤하게 받아들이는 것으로 그곳에 잠시 정체하는 것으로 충분히 묘사한다. 전조-사건-충격-이완 이런 식의 전개가 아니라 ‘그런 일’이 일어난 것 마냥 흘러간다.


세 번째, 신뢰가 간다. 처음 시작부터 관객들은 어떤 분위기를 감지한다. 자극적이지 않고자극적인 일이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그래서 미리 놀랄 준비를 하지 않아도 되고 예측하지 않아도 되며잘못되면 어떡하지 동동거리지 않아도 된다. 주인공이 잘못되지 않을 리 없고 잘못되더라도 아니라 어떻게되더라도 다 괜찮음일 거라는 안도감을 준다. 이미 구축된 신뢰는 서서히 단단해져서 마음을 놓아도 된다. 그리고 영화는 그 자체가 작은 숲이 되어준다.


오랜만에 만난(이전에만난 적이 있었는지 분명치는 않지만) 자극이 없는 영화였다. 뭘안 하는데 뭘 하고 있는 평안한 영화였고 주인공이 연애를 하지 않아도 사랑을 느꼈고 주인공이 성취를 하지 않아도 희열이 느껴졌다.


빛깔, 색채, 목소리, 묘사들이 다 경험해봄 직한 그러면서도 낯선 반가움을 준다.


임순례 감독의 리틀 포레스트를 보고 일본판 리틀 포레스트를 봤는데이건 더 무슨 일이 없다. 그저 여름 가을과 겨울 봄을 살아가는 주인공을 본다. 주인공은 일상을 살고 우리는 영화를 보는 일상을 산다. 일상과 일상이만난다.


영화 제목이 왜 리틀 포레스트일까?나만의 리틀 포레스트를 만들자, 발견하자, 마련하자의청유형 권장이 아닐 것이다. 분명 그 질문을 던지고는 있지만 그것보다 그대의 일상 자체가 작은 숲이되기를 바라는 사람을 향한 애정일 것이다. 공허하고 분주한 민산에는 메아리가 살지 않는다. 자신 안에서 들려오는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고 외칠 곳이 없다. 음식은맛보지 못하고 넣기 바쁘며 친구랑은 다툴 새도 없이 단절된다. 미래에 뭐가 되기 위해서 지금은 뭐도아니다. 그저 미래를 위해 나의 작은 숲은 파괴되고 그리움의 대상이 된다.


우리들이 살아가면서 정체도 모르는 그리움을 느끼는 것은 바로 이런것이 아닐까? 언제 파괴되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 작은 숲을 알고 있는 것이다. 경험해봤지만 낯선 작은 숲은 그리고 있다.


천천히 고요히 산다고 해서 작은 숲이 생기는 것이 아니다.


얼마 전 한 학교 선생님이 처음으로 연구년을 하게 되었는데 하루하루가 몹시 불안했다고 한다. 뭐라고 해야 하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는 자신을 못 견디겠더란다. 연구년을 마치니 그렇게 신나고 그러면서 연구년 동안 미용 자격증을 딴 다른 선생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뭘 했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이 사회에서 가장 과격한 삶은-자본주의에 가장 편승되지 않은 삶이란-무엇을 이루려고 하지 않으면서천천히 자기 걸음을 걷는 것이라는 말을 한다.


무엇을 이루지 않으면 나는 ‘쓸데없는’ 사람이 되는 것 같은 확신 비슷한 착각 속에서 우리 자신을 오해하지 않고 살아갈 자신이 있을까? 실은 하루 하루를 일어나고 먹고 걷고 매고 자는 것들 것 가장 근사한 성과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다.


주인공은 언제라도 이 시골을 떠나 뭔가를 이루기가 좋은 곳으로 가는것을 이루고 싶어한다. 지금 나의 삶은 잠시 회피이거나 쉬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작은 숲 안에 있지만 아직은 그러하지 못하다. 일상을 작은 숲으로받아들일 힘이, 자신이 없다. 왜냐하면 세상이 자꾸 자기자신을 오해하라고 말을 걸고 있으니 말이다.


우리는 모두 작은 숲을 가지고 있다. 그 작은 숲에는 새가 지저귀고 냇물이 흐르며 나뭇잎이 푸르고 천둥이 치며 눈과 비가 내린다. 꽁꽁 얼다가 봄이 되고 몹시 덥고 열매를 맺고 삶이 흘러간다. 그작은 숲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다.



원은정. 영화가 나에게 하는 질문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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