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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은정 Jun 03. 2018

'행복' 대한 4가지 中에서.

사람들은 저마다의 신화를 가지고 있다. 여기에서 신화란 영웅들의 탄생기나 하늘이 열리고 땅이 만들어지는 건국에 대한 신화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그것처럼 사람들을 강력하게 지배하고 있는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인 것처럼 믿는 것을 표현하고자 하는 단어이다. 알피 콘의 '경쟁에 대한 신화'라는 글을 아주 인상깊게 읽으면서 영감을 얻기도 하였다. (오래 전부터 알피 콘의 팬이다)


행복에 대한 4가지 신화.
1. 미래에는 행복할거야
2. 행복은 내가 마음 먹기 나름이야
3. 좋은 날엔 행복해야지
4. 행복한 일이 있어야 행복하지

이 중에서 첫번째 이야기를 나눠보려고 한다. 행복에 대해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신화가 바로 이것이다.
"미래에는 행복할거야."
자, 이것은 '행복하고야 말겠어!'라는 결심일까? 아니면 '아마도 행복하지 않을까?'하는 짐작일까? '미래에는 분명 행복할거야.'하는 확신일까? 이 셋중 나는 어느 것에 해당될까? 어떤 것에 해당되든 이 문장의 시제는 '미래'에 가 있다. 시제가 미래에 있다는 것은
'현재'나 '과거'는 아니라는 이야기다. 그리고 세 시제 중 가장 안타까운 것은 '현재'가 부정되고 있다는 것이다.(과거야 이미 지나간 거라 어찌할 도리가 없으니)
그런데 항상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행복한 오늘'은 언제쯤일까? 정확하게 3년 뒤 하루 전까지는 '미래에는 행복할거야'하다가 '오늘부터 행복해'가 되는 것일까? 과연 언제부터가 미래에서 오늘도 행복이 인수인계가 될 것인가?
저 문장을 들여다보면 얼마나 막연한 말인지 느껴진다. 그리고 행복을 굳이 미래로 미뤄두고 있다. 지금 내가 이렇게 사는 것은 혹은 지금은 안 행복하지만 '미래에는 행복할거야.' 그래서 나의 지금은 미래(언제일지 모르겠지만)의 행복을 위해서 희생하고 저당잡히고 있다. 왜냐하면 나는 지금은 말고 미래에만 행복할거니까. 무엇보다 이 문장이 무서운 것은 미래는 결코 오늘이 될 수 없다. 
미래는 내일 이상이 미래이고, 저기에서 말하는 미래는 요 근래의 미래를 말하기 보다는 3년 이상의 거리감이 느껴진다.
무서운 것은 이 신화가 현 시대 청소년들에게 강요되고 있다는 것이다. 대학에 가면, 어른이 되면, 꿈을 이루면 마음껏 살 수 있다고 말한다. 대학에 가고 어른이 되고 꿈을 이루는 것은 지금 청소년 입장에서는 적게는 1년, 길게는 10년 뒤의 일이다. 그것도 대학을 기준으로 해서 그렇지 꿈을 이루는 나이까지 생각하면 개개인별로 느끼는 세월은 다르다.
그리고 대학을 가고 어른이 되고 꿈을 이루고 나서 "난 이제 더없이 행복하다"라고 사람들을 많이 만나보지 못했다. 도대체 그런 근거는 어디에서 얻었길래 아이들에게 강조하는 것일까?
대학을 가고 나면 졸업을 위해서 취업을 위해서 또 행복은 미래로 미뤄지고, 취업을 하고 나면 인정받고 승진하고 다른 일을 꿈꾸며 행복은 미뤄진다. 어른이 되어서도 꿈과 행복에 대해서는 끊임없이 모르겠고 끊임없이 고민한다. 우리가 다 그러지 않은가.
그런데 왜 유독 아이들에게 어떤 근거와 확신도 없이 행복은 미래로 미뤄두라고 강요하는지 모르겠다.
아이들에게 청소년 시기에 미래에 무엇을 할지의 양만큼 무엇을 경험하면 좋을지 알려주고 권유하고 있는가? 지금 하면 안되는 것들만 얘기하고 있지는 않은가? 지금 하면 안되는 것들의 수만큼 지금 하면 좋은 것들을 아이들은 알고 있을까? 
청소년 시기는 '공부'말고는 아무것도 하면 안되는 시기로 우리 어른들이 얘기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게다가 그 공부 역시 지금이 아닌 미래를 위해 하는 것이라면 청소년들은 그들의 지금을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지금 내 행복을 위해 무엇을 하면 좋을지, 지금을 어떻게 바라보면 좋을지, 지금을 살아가는 법을 알 기회가 없는 한 
미래에도 여전히 그 다음 미래를 위해 지금의 행복을 돌보지 않게 될 것이다.
이것이 어쩌면 내가 이 책을 쓰게 된 가장 큰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어른들마저도 아직 행복하지 않는 미래에 대한 기대로만 살고 있는데 그 길을 그대로 따라오는 것은 물론 더 굳게 강요당하는 아이들에게 미안해서.


원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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