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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은정 May 29. 2018

강의를 한다는 것. 부제: 강사의 강의 준비

강의를 하면서 강의하는 일이 참 신기하다는 생각을 한다. 교육 분야에서 특히 강의는 생각할수록 독특한 일이다. 왜냐하면 처음 본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전달하는 일이다.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지금부터 강의를 시작하겠습니다."
오늘 처음 만난 한 사람과 다수가 2시간 정도의 시간을 보내면서 무언가를 나누고 공감하고 배운다는 것은
신기하고 독특한 일이다. 강의는 어느 사람의 인생에 살짝 들어가는 일이다. 그 사람의 인생 중에서 2시간 혹은
4시간, 1박 2일 잠시 들어갔다 나오는 일이다. 그래서 강의를 쉽게 그리고 우습게 하는 사람들을 보면
심히 불쾌하다. 적어도 15년의 강의 경력으로 내가 깨달은 것은 강의는 정성스럽게 해야 한다.

강의를 하다보면, 같은 주제로 여러번 하다보니 이전에 했던 내용을 그대로 해도 무방하다. 그리고 그 이전에
크게 공감을 일으켰던 혹은 빵 터지게 웃었던 것들이 이미 검증이 되어 있어서 다음 강의에 하는 것은 매우
안전한 장치가 되기도 하다. 똑같이 말할 수 있지만 지금의 교육생들과 호흡하고 있는가가 더 중요하다.
지금 내 강의를 듣는 사람들과 교감을 하고 호흡을 하고 있다면 그것은 같은 말을 하더라도 다른 강의가 된다.
그렇다면 강사의 강의 준비는 '말을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호흡을 준비하는 것'이어야 한다. 호흡을 준비한다는 것은 삶이 그렇게 몰입되어 있어야 하고 자기 수양이 일상에서 이루어져야 가능하다.

얼마 전에, 영화 인문학 전문가 과정 때 나눠준 교안 안에 들어있는 커리큘럼을 그대로 사용하는 한 강사님을 보게 되었다. 사실 그 강사님 뿐만 아니라 그런 일은 그 이전에도 그 이전이전에도 많았던 터라 약간의 마음 쓰임 정도로 넘어갔었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참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 강사 경력이 몇년이 되어가는데 자신의 강의를 강의계획서나 커리큘럼으로 만들 정성이 안되는 건지.. 다른 강사들이 오랜 세월 누적해온 강의 내용과 언어를 그대로 옮기는 것이 과연 '강의'인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통해서, 동영상 강의를 통해서, 다른 강사님의 내용을 듣고 응용할 수 있고 내 언어가 되도록 사색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것을 그 언어와 방식 그리고 개발된 프로그램까지 자기 강의처럼 하는 '무성의한' 강사는 없었으면 좋겠다.

강사가 강의를 준비한다는 것은, 아직 만나지 않은 대상들과의 호흡을 미리 머릿속에 떠올려보는 일을 한다. 그런데 이것은 가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그 가상이 실제 강의에서 그대로 적용될 수 없다. 어쩌면 전혀 다를 수도, 생각지도 못한 일이 발생할 수도 있다. 그러면 이내 당황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그 어떠한 상황에서도 함께 호흡할 수 있는 자기 훈련이 강의 준비가 되는 것이다. 나 역시 이것이 안될 때의 당혹스러운 기억을 가지고 있지만 그렇기 때문에 지금도 항상 강의 전에 강의 내용을 점검하고 그동안 메모해놓은 것들을 참고해서 예상과 다른 모양이 펼쳐졌을 때를 대비하게 된다.

강사과정, 전문가 과정을 그동안 열다가 올해부터 멈추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이렇듯이 정성없이 연구없이 가져다가 강의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을 보며 회의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프리랜서 강사 시절 너무나 치열하고 어려운 시기를 보내다가 그렇게 꿈꾸던 안정을 찾았기에 그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다. 내가 그러했듯이 강의 아이디어를 나누면 그들이 성장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런 강사들보다 그냥 그대로 심지어 토씨 하나 안 틀리고 그대로 사용하는 강사들을 보면서 내 생각이 얼마나 이상적인 생각이었는지를 본다. 
강의는 내가 재미있다고 하는 것이 아니다. 듣는 사람들이 재미있고 듣는 사람들이 발견하는 것이 강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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