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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은정 Jan 15. 2018

영화 <페넬로피> 저주를 푸는 가장 완벽한 방법

영화 <페넬로피> 저주를 푸는 가장 완벽한 방법. “내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것의 의미”

1) 자존감의 조건은 무엇인가?
수많은 영화가 수많은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짐작하건대 가장 많이 다루는 주제 중 하나가 자존감일거라 생각된다. 방법이나 내용은 다르더라도 주인공 스스로 진정한 자신을

찾아가는 이야기가 전반적으로 큰 틀을 유지하는 경우가 많고 큰 주제는 다른 키워드를 가지고 있어도 주인공의 각성과 정체성을 찾아가는 부분은 영화의 한 꼭지로 꼭 다루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 영화 [페넬로피]는 자존감 영화 중에 아주 대표적인 영화로 꼽히는데 특히 청소년들 대상으로 자존감이 무엇인지를 아주 보편적인 방식으로 알려주기 좋은 영화이다. 자존감에 대해서 먼저 알아볼까 한다. 자존감은 시대적으로 그리고 사회적으로 아주 많이 거론되고 있어서 이제는 모든 곳곳에서 등장하는 특별하고도 진부한 단어처럼 느껴진다.
그 증거 중에 하나가 무엇이냐면, 청소년 대상으로 자존감 강의를 해달라는 요청을 가장 많이 받고 강의를 가서 ‘자존감’이라는 말을 꺼내면 아이들은 이미 기대를 접는다. 분명 특별한 단어지만 항상 언급되고 있으니 진부한 단어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자존감은 자신의 존재 가치에 대한 스스로의 인정으로서 인문학에서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는 주
제이기도 한데, 그렇다면 자존감의 진정한 뜻은 무엇일까? 자존감과 자신감의 차이는 무엇일까? 
자존감과 자부심의 차이는 무엇일까? 그리고 자존감과 자존심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그리하여 먼저 사전적인 의미를 찾아보겠다.
자존감은 자아존중감의 줄임말로서 자신이 사랑 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소중한 존재이고 어떤 성과를 이루어낼 만한 유능한 사람이라고 믿는 마음을 말한다. 

근거가 있는 객관적인 사실이나 중립적인 판단이라기보다 주관적인 느낌이자 감정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러니까 자기 자신을 스스로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느냐의 차원이 크다. 자존감과 자존심의 차이는 자존감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에 대한 긍정‘을 뜻하고 자존심은 경쟁 속에서의 긍정을 뜻하는 등의 차이가 있다고 할 수 있으며 자신감은 “나는 할 수 있다”의 개념, 자부심은 “나는 그것을 해낸 사람이다”의 개념이다. 그리고 자신감과 자부심의 근간은 자존감이기 때문에 자존감이 자아인식에서 아주 중요한 심리적인 요소도 작동된다. 자존감은 결국 외부적인 자극과 상태와 상관없이 내 스스로 나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느냐의 차원이라서 내부적으로 올라오는 감정들과 연결이 되어있으면서도 외부적인 자극과 상태와도 어떤 식으로 조우하느냐와도 연관이 있다..


여기 페넬로피는 자존감을 가질 수 없는 조건(이런 조건이라고 말하면서 양심이 울컥)을 가진 한 여자가 있다. 그리고 그 조건이라는 것이 자신의 선택과는 별개로, 태어날 때부터 집안 대대로 걸린 저주에 걸렸기 때문에 이 여자의  존재는 저주에 걸린 아이가 된다. 그 저주는 본인 스스로도 힘든 일이지만 가족을 포함한 주변에서 저주로 인식하기 때문에 밖에도 나가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과 만나지도 못하고 집에 갇혀서 책과 음악만이 친구가 되어 성장하게 된다. 그 저주는 바로 코가 돼지코로 태어난 것이다.
사람인데 코가 누가봐도 명백하게 돼지의 코 모양이라 보는 사람들은 모두 깜짝 놀란다.
그리고 그 저주는 많은 저주가 그러하듯이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을 해야 풀리는데 다른 사람을 만날 기회가 없으니 저주가 풀리는 일이 보통 일이 아니다. 그래서 부모들은 아이를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지 않은 상태에서 남자들을 데려오고 돈으로 유혹해서 딸과 결혼시키려고 한다. 그리고 번번이 돼지코의 모습을 보여주면 남자들은 괴물이라며 놀라서 도망가는 일이 발생한다.
자, 조건이 완벽하지 않은가? 돼지코로 태어난 어느 명문가의 딸, 어릴 적부터 세상에 나가보지 못하고 갇혀서 성장하였고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을 해야만 풀리는 저주. 딸의 저주가 알려질까 전전긍긍하는 부모들, 여기까지의 구성을 보면 앞으로의 전개가 대충 짐작이 가능하다. 분명 여자 주인공이 집을 뛰쳐나와 우연히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고 저주는 풀릴 것이다. 모두가 괴물이라고 소스라치게 놀라는데 괴물이라고 놀라지 않는 단 한 사람, 진정한 사랑을 만나게 될 것이다. 이렇게 짐작되지 않은가? 아니 적어도 얼른 진정한 사랑을 만나면 좋겠다고 영화 초입부터 주인공을 응원하게 되어 있다. 
그리고 이때 남자 주인공이 등장하는데 어딘가 우수에 찬 눈빛과 누가 봐도 외모가 출중한 동화 속에 나오는 왕자를 연상시키는 얼굴과 표정을 지녔으며 무슨 사연인지 돈이 필요하다. 처음에는 돈 때문에(어느 기자로부터 사주를 받아 단 한장의 사진을 찍으려고) 페넬로피를 만나려고 했는데 아마도 모두가 짐작하겠지만 곧 사랑에 빠질 것이다. 
서울에 있는 한 여자고등학교에서는 75년 전통의 인문학 시간이 있다. 전교생이 모여 인문학 강연을 듣고 학생들이 무대에서 시나 노래를 선보이는 것인데 그 자리에서 페넬로피로 강연한 적이 있다. 아이들이 페넬로피의 남자주인공에 열광하던 모습은 아직도 생생하다. 나는 그때 아이들과 페넬로피 이야기를 나누면서 ‘일희일비’가 참 사랑스럽다는 생각을 했더랬다. 작은 거 하나에 기뻐하고 작은 거 하나에 안타까워하는 모습이 마치 ‘살아있는’ 것 같은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영화가 나에게 하는 질문들]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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