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은정의 영화 인문학> "삶의 경이로움에 대해" 영화 [조 블랙의 사랑]
나는 아침에 일어나 마른 수건을 개는 시간을 좋아한다. 차를 마시기 위해 물이 끓기를 기다리는 시간도 좋고, 눈을 온전히 마주치고 이야기 나누는 것도 좋다. 말에 생각지 못한 재치가 있는 사람을 발견하는 것을 좋아하고, 맥주의 첫 맛을 좋아하며, 아름다운 풍경에 말을 잃는 것도 좋다.
찬 겨울에 걷는 것을 좋아하고, 영화 시작 전의 극장에 있는 것을 좋아한다. 아무 소리도 없는 곳에서 책 읽기를 좋아하고, 웃는 것과 우는 것을 각별히 좋아한다. 운전하면서 기꺼이 양보하는 나를 좋아하고, 강의 시작 전의 소소한 긴장을 사랑한다. 실은 삶의 매 순간을 거의 좋아하는 편이다.
영화 [조 블랙의 사랑]을 20여년만에 봤다. 20대 초반의 나에게 이 영화는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였는데, 지금 나에게 이 영화는 '삶의 경이로움'을 말하고 있다. 죽음의 사자마저도 인간의 생애에 대해 깊은 호기심이 일었나보다. 그래서 그가 선택한 삶을 강건하게 사랑하는 65세의 한 사람에게 안내를 부탁한다. 처음에는 "그래, 어디 증명해봐" 이런 마음이었을까? 살면서 그토록 강조해왔던 열정, 의지, 사랑, 사명 등에 대해 "그게 정말이야?" 정도의 호기심이었을 것이다. 죽음의 사자는 이러한 것들을 인간의 몸으로 목격하고 체득하면서 삶을 온전히 알아낸 것 같았다. 그가 마지막에 흘린 눈물은 삶의 경이의 눈물이었을 테니. 그리고 마침내 그는 믿음, 책임, 자유에 대해서도 알아버렸다.
65세의 생일에 그가 받은 축하는 태어남의 축하였을까? 죽음에 대한 축하였을까? 나는 후자에 한 표를 던진다.
"두려울까?" 죽음으로 걸어가는 걸음 앞에서 그가 묻는다.
"당신 같은 사람에게는 아니야." 죽음의 사자가 대답한다.
죽음은 인간에게 끊임없이 묻는다. "준비됐어?"라고. 우리는 마치 미래에 모든 것들(심지어 행복마저도)이 있을 것처럼 오늘을 산다. 그리고는 죽음이 다가왔을 때, 죽음에게 이렇게 말을 한다. "아직 못 다 이룬 것들이 있어요."라고 말이다.
삶은 무엇을 이루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이뤄진 것들을 만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영화에서, 아빠에게 딸이 말한다. "아빠가 언제나 사랑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어요. 그거면 됐어요."
딸에게 아빠가 말한다. "이 아빠가 언제나 너를 깊이 사랑한다는 것을 알아주렴."
이처럼 이미 이룬 것들을 보는 것이 삶이다. 다만 우리가 놓칠 뿐이다. 죽음이 늘 준비되어 있음에도 말이다.
이 영화의 속도도 마음에 든다. 빠른 장면의 전환과 사건의 급박함과 빈번함에 익숙한 지금 시대의 영화에서는 찾을 수 없는 사색과 숨이 존재한다. 영화는 대사의 주고받음을 긴 호흡으로, 대사 사이의 묵음마저도 대화임을 보여주고 있다. 그 묵음은 분명 관객들의 호흡으로 채워질 것이다.
오늘 나에게 이런 호흡을 선사해준 이 영화 [조 블랙의 사랑]을 해를 마감하기 전 혹은 해를 시작하면서 꼭 보기를 추천한다.
원은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