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감독 '미키 17'
봉준호 감독의 신작 '미키 17'을 보기 위해 개봉 당일 영화관을 찾았다. 그것도 '광음시네마'에서
광음시네마의 존재는 이번에 처음 알게 됐는데 이런 직관적인 네이밍 뭔데ㅋㅋㅋㅋ
개봉 당일 예매해서 볼만큼 해당 작품에 큰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예매 전 예고편으로 사람이 복제된다는 내용이라는 것은 인지했지만 봉준호 감독 팬으로서 개봉 당일 챙겨보는 매니악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설국열차'를 보며 감탄한 관객이긴 하다.
봉준호 감독 또는 그의 작품에 대해 검색해 보거나 전문가는 아니지만 확실히 그는 그의 방식으로 이야기를 전달하는 탁월한 능력이 있다. 특히 설국열차에서 이야기했던 '계급'을 미키 17에서도 다뤘다.(해당 글에는 스포가 아주 매우 많이 포함되어 있으니 원치 않으신다면... 뒤로 가기) 그렇지만 미키 17에서 가장 중요한 이야기는 '죽음'이 아닌가라고 생각한다.
예고편이나 시놉시스에서는 복제인간이 주된 내용이라고 한다. 물론, 영화에 있어 중요한 포인트이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단순히 복제인간에 관한 이야기만 있는 게 아니라 그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다양한 이야기를 많이 보고 듣고 느꼈다. 문제는 이걸 어떻게 글로 잘 표현할 수 있을까이다.
설국열차는 설국을 달리는 열차. 즉 분리된, 고립된 장소에서의 이야기이다.
열차 칸은 계급에 따라 인프라가 상이하다. 즉 머리칸은 상류층이자 진두지휘하는 관리자가 꼬리칸은 늙고 병들고 가난한 사람들이 위치한다. 미키 17도 동일한 조건에서 벌어지는 스토리이다. 새로운 행성에 정착해 새로운 세상을 만들겠다는 큰 꿈을 가진 국회의원과 그 아내, 그리고 그의 추종자 또는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 하지만 행성으로 이주하는 비행선은 한정적이기에 특별한 기술이 없는 미키는 '익스펜더블'이 뭔지도 모른 채 익스펜더블로 지원해 탑승하게 된다.
1. 인간 실험과 계급. 난 성악설이 맞다고 본다.
'익스펜더블'은 쉽게 말하면 인간 복제 기술이다. 공익의 이익을 위해 다양한 환경 조건에서의 실험 대상이며, 최악으로 사망할 경우 그가 가진 모든 기억 메모리를 그대로 장착해 똑같이 복제된 외형의 그에게 장착한다. 해당 기술은 위험성과 범죄로 악용된 사례 등 다양한 이유로 지구에서의 활용이 금지되었고, 지구 밖의 행성으로 향하는 비행선의 익스펜더블로 자원한 미키는 실험대상이 된다.
죽음을 수반하는 익스펜더블은 아무도 지원하지 않는 직책이었다. 오직 사채업자의 쫓김에 피해 우주로 향할 수밖에 없는 미키가, 가진 게 빚밖에 없고 기술도 없는 미키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직책.
물론 쥐 나 동물을 대상으로 하는 실험도 윤리적으로 말이 많다. 하지만 생각하고 표현할 수 있는 인간이 모두가 보는 상태에서 실험이 된다는 것. 아니 무엇보다 그 고통을 가늠할 수 있어 그 아픔이 공감되었다.
익스펜더블은 아무도 지원하지 않는 기피 직책이자 비행선 내 가장 하단의 계급이다. 우주에서 방사선에 노출되면 어떻게 되는지 실험하기 위해 장갑을 벗어야 했고, 새로운 행성에 정착하기 위해 바이러스 및 질병 등에 직접 감염되 수차례 죽음을 겪으며 백신이 완성되었다. 가장 하단 계급인 그를 사람들은 무시했고 죽는 것은 어떤 기분인지 물었다. 첫날 비행선에서 사랑에 빠진 나샤를 빼고.
'니플하임' 행성에서 정착과 비행선을 기획한 사령관 '마샬'의 저녁식사 자리에 초대되었을 때도 그에게만 다르게 제공된 음식은 급작스러운 구토로 이어졌고, 음식에 대한 반응은 물론, 이러한 증상을 보이는 그에게 주입하는 진정제도 실험약제였다. 모두가 보는 앞에서 실험당하고 죽음을 맞이하고, 그렇지만 또다시 미키 2,3,4로 환승하는 시스템.
죽음을 맞이하는 고통을 수차례 겪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면 미키는 익스펜더블을 지원했을까?
아마 원치 않았어도 선택할 수밖에 없었을 거다. 사채업자를 마주해 죽임 당할 때의 고통은 유사하겠지만 부활은 없었으니까.
행성 외계 생명체를 마주, 얼음에 묻혀 여성 요원이 사망하자 사령관 마샬은 그가 죽지 않고 가임기 여성 요원이 사망한 것에 불같은 화를 낸다. 그 대가로 미키는 추가 미션을 부여받게 된다.
미키가 직접 익스펜더블로 지원했고, 다시 살아날 거라는 보장이 있지만 가혹한 실험과 빈번한 죽음은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살아나면 그만인가? 죽음의 결과를 맞이하기까지의 고통과 두려움은.... 오로지 미키의 몫이다.
비행선 안에서의 계급 다른 건 다 그렇다 치는데 사령 부부의 가증스러움과 소스 집착에 토할 뻔....
2.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이야기는 '죽음'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미키를 볼 때마다 수차례 무례하게 질문했던 그 질문. 그를 조롱하고 비웃기 위해 질문한 듯했지만 어쩌면 사람들은 진심으로 궁금했던 것 같다. 맞이해 본 적 없는 죽음과, 가늠할 수 없는 죽음, 죽음을 맞이하는 그 느낌은 정말 내 삶이 끝나는 그 순간 딱 한 번만 겪어볼 수 있으니까.
사람들은 자신이 경험해보지 못했으나 관심이 있거나 자신에게 처할 수 있는 상황에 대해 상상하거나 이미 경험해 본 이들에게 질문한다. 신나는, 생각만 해도 기대되는 일에 대해서도 "합격했을 때의 기분은 어때?" "로또 1등 당첨되었을 때 기분이 어땠어?"와 같이 질문하지만 대체로 "신경치료 많이 아픈가요...?" "혼자 사는 삶은 어때?"와 같이 두려운 상황에 대해 질문하곤 한다.
동료가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본 요원도 그에게 질문한다. 그리고 미키는 수차례 죽었지만 여전히 무섭고 두렵다고 대답한다. 내 환생이 보장되어 있고 여러분 16차례 이상 겪어봤을지라도 죽음은 무섭고 두려운 존재인 것이다.
영화가 막바지로 다다르며 인간 1명의 희생이 필요한 상황에 사령과 미키 18이 대치한다. 아무리 가진 게 많은 총지휘관이자 부유하고 고상한 척하는 사령관 마샬도, 원래의 미키와 정반대 성격인 미키 18도 죽음 앞에서의 두려움은 매한가지였다. 마샬도 미키 18도 사람이었으니까.
3. 행성의 주인은 누구인가.
행성에 정착하고 맞이한 것은 괴상하게 생긴 외계생명체였다. 개인적으로 벌레 같아서 너무너무 보기 싫었지만. 정체를 모르는 외계생명체와 이 생명체를 피하려다 사망한 요원으로 외계 생명체는 한순간에 싸워야 하는 적군이 된다. 하지만 눈더미로 추락한 미키 17을 살려준 것은 이 토착 생명체 '크리퍼'였다. 크리퍼라는 이름도 '소름 끼친다', '흉측한 형체'에서 근원해 사령부부가 명명한 것이었다.(정말 직관, 단순 그 잡체)
정체를 모르는 외계 생명체라는 이유로 크리퍼를 죽였고, 포획된 크리퍼 마저 죽이려 한다. 포획된 크리퍼가 울부짖는 소리에 마마크리퍼를 포함 정착지로 걷잡을 수 없는 크리퍼 무리가 모여든다.
사령은 크리퍼를 죽이고 가스를 살포해 크리퍼를 죽이기로 한다. 하지만 나샤가 말한다.
행성의 주인은 크리퍼고, 우리가 방문자이다. 원주민은 크리퍼라는 것을 말이다.
인간은 확인되지 않았지만, 보기에 흉측하고 위험이 되는 것 같은 존재를 보면 방어하고 제거하려고 한다. 방어기제? 오키 인정. 죽여야 정말 이 행성에 정착했다고 이야기할 수 있어서인가? 아무튼 인간의 본능인 것 같기도 하다.
해당 대목에서는 오래전 과거이지만 원주민을 쫓아내고 정착한 미국인들이 연상되기도 했다.
(근데 개인적으로 설국열차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해충이 연상돼서 보기 힘들었다... 쏘쓰 노노... 우웩..)
4. 권력
오케이. 마샬이 사령관인 거 인정. 단절된 공간에서 그의 권력은 권력이 아닌 독재가 되고 상식에서 벗어난 행위로 이어진다. 급기야 그 부부의 과도한 권력 행위는 인권침해와 인권 모독으로 판단한 일부 요원들이 위원회에 안건을 제기하기 위해 녹화하기도 한다.
사람에게 권력이 주어진다는 것은 무엇일까? 권력의 끝은 결코 아름다울 수 없는 건가?
그를 지지한다는 이유로 그를 추종하는 사람들이 비행선에 탑승한다. 마샬의 지지자들은 지지를 넘어 일종의 광기, 맹신, 추종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그리고 그에 힘입은 마샬은 생방송을 하며 관종이 되어간다.
누군가를 응원하고 지지한다는 것과 맹신이 되는 것은 종이 한 장 차이다. 그리고 정당한 권력 행위와 권력 남용 역시.
내가 읽었던 책 중에 꽤 인상적이었던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가 연상되기도 했다. 분류학에 관련한 도서로 인간이 생물체를 명명하고 분류하는, 그리고 삶에 대한 자세를 이야기하는 책이다. 여기서 분류학자는 생명의 더 나음과(발전) 우위를 이야기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저 다른 종류의 생명체일 뿐 어떤 종이 더 우월 또는 우수한지를 평가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이야기한다. 존재에 있어 우월이라는 자체도 없지만, 인간이라는 생명체가 우월을 판단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거다. 만약 생명체 간의 고저와 더 나음이 있다면, 그것은 신이 결정할 문제라는 것이다.
마샬이 행성에 정착하기 위한 비행선과 이를 진두지휘하는 사령관인 것은 맞다. 하지만, 크리퍼를 크리퍼라고 칭하고, 이들을 몰살해 인간이 행성의 주인이 되는 것이 더 나은 것인지에 대해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은 주어진 적이 없으니깐 말이다.
5. 그중 제일은 사랑이다.
근래 최우식과 박보영 주연의 '멜로무비'를 보고 있던 중이었다. 박보영이 그의 남자친구인 최우식과의 관계를 말할 때 등장하는 멘트이다. "그래도 역시 그중 최고는 멜로예요."
16번의 죽음을 겪고, 매 순간 자신의 죽음을 인지하고 있으며 그 차갑고 험난한 고통스러움을 마주하고 견딜 수 있는 것은 그를 지켜보고 마지막 순간을 지켜주는 여자친구 '나샤'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고통에 공감하고 함께 아파해주는 그녀가 있었기에 그 시간과 고통을 견딜 수 있었고, 비난과 조롱도 이겨낼 힘이 있던 것이다.
멀티플의 상황에 미키 17 그리고 미키 18을 모두 품을 수 있는 그녀의 사랑은 찐이었다. 마지막으로 익스펜더블을 금지시키고 프린트 기기를 폭파시키는 결말까지. 미키와 나샤에 대한 남녀 간의 사랑 외에도 비행선 구성원 간의 존중과 크리퍼라는 생명체를 지키기 위한 목숨을 건 희생까지. 역시 사랑, 믿음, 소망 중 제일은 사랑이 맞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