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자리, 제자리, 적합한 자리

디깅 프로젝트 1: 나 알아가기

by 캐러바웃 Carolabout

정세랑 작가, 정세랑 작가 얘기는 많이 들어왔지만 굳이 먼저 책을 찾아보거나 한 적은 없다.

특별히 선호하는 카테고리가 있거나 편식을 하지는 않지만 소설을 주로 찾아보는 편은 아니기도 하고, 그냥 그때그때 책을 읽는 것에 의미를 두지 작가까지 기억하고 특징을 알아갈 만큼의 심적, 두뇌 공간 여유도 없는 사람이다. 최근 에세이를 써서 작은 독립 출판물을 발간하는 모임에 참여하게 되었다. 아는 멤버들이 있어 자연스레 참여하게 됐는데 주제가 ‘에세이 쓰기‘라는 이야기를 듣고 “아…”하는 탄식이 흘러나온 것은 사실이다.


그도 그럴 것이 N 년 전, 코로나 전, 너무 오래된 이야기이지만, 사회 초년생 사회에서 처음 갖게 된 모임이었던 것 같다. 어떻게 발견했는지도 잘 기억이 안 나지만 ‘소설 쓰기’ 모임에 참여한 적이 있다. 작은 회비를 내고 매주 글을 써와서 실제 작가들이 피드백해 주며 소설을 쓰는 모임이었다. 각 잡고 앉아서 글을 써본다는 게 초등학생, 중학생? 이후로는 없었던 것 같고 아! 대학생 때 과제를 하기 위해서는 매번 글을 써야 했구나!!


그러니까 의무감이 아닌 자의로 글을 써본 적이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한 때에 자진해 들어간 모임에서 나는 거의 막내였던 것 같다. 그리고 흐릿한 내 기억이 맞다면 참여자들은 모두 여성분들이었던 것으로 기억. 아무튼 글쓰기보다 후에 작가님들 책 나왔을 때 같이 축하하기 위해 모였던 식사 자리가 더 기억에 남는데 숫자로 그리 어린 나이는 아니지만, 경험도 많지 않고 이런 모임이 익숙하지 않던 어린 나에게 30-40대 선생님들은 각자의 색깔과 분위기가 있었고, 그들이 갖고 있는 수줍은 유머가 멋있어 보였다. 아무튼 자꾸 다른 이야기로 흐르는데 소설 쓰기 반에서 소설을 쓰며 나는 딱 한 가지를 얻을 수 있었다. ’ 나는 소설 쓰기와 잘 맞지 않다는 것‘


그 당시에는 MBTI가 유행할 때도 아니라 정확한 내 성향은 몰랐지만 원래 현실적인 성향의 사람이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이런 내가 현실에 있음 직한 허구를 만들어 글로 표현하려니 얼마나 어려웠던지… 짜내고 짜내어 첫 문장을 적었다. 사실 허구는 아니고 실제로 있었던 일을 약간 변형시켰달까. 어쨌든 사건이 필요하니까. 그렇지만 글을 이어서 쓰는 것은 쉽지 않았다. 결국 말하고자 하는 내용과 스토리가 있어야 되는데 이걸 만들고 맛깔나게 쓰는 게 정말 어려운 일이더라. 아무튼 결론은 기억이 가물가물 하지만 나를 포함 다른 몇몇 사람들도 소설을 완성하지 못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와중에 매번 과제를 해오고 칭찬받았던 분들도 몇 분 계셨던 것 같은데 내가 작가님께 받았던 피드백은 “첫 문장을 보고 너무 재밌을 것 같아 기대했는데 뒤에 잘 이어서 써보라고..” 이 문장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있다. 쩜쩜쩜.. 그리고 나는 그 수업을 통해 상상하고 지어내는 소설 쓰기와는 잘 맞지 않는다는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아무렴 나랑 맞는지 안 맞는지를 알게 되는 것도 하나의 배움이고, 뭔가를 얻는 경험이라고 생각하기에 후회하진 않는다.


자주, 꾸준히는 아니고 종종 이렇게 브런치에 글을 쓰고 이번에 짧게나마 에세이 쓰기에 도전하다 보니 차라리 내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쓰는 것은 조금 나은 것 같다. 글을 쓰다 보면 정리도 되고 몰랐던 감정이나 사실을 알게 되는 재미도 있더라. 이제 겨우 1번 구글 드라이브에 각자 에세이를 쓸 수 있도록 가상의 공간을 마련해 주셨는데 다른 구성원이 재능 있는 것 같은데요?라고 칭찬해 주셨다. 물론 내가 어려울 것 같다, 걱정이다, 자신 없다고 밑밥을 많이 깔았기 때문인데 어쨌든 진심이든 아니든 칭찬은 나를 춤추게는 아니고 기분 좋게 한다.


소설이 나의 1순위 장르는 아니라는 이야기를 하다가 이렇게나 돌아왔다. 가끔 보면 자꾸만 자주 다른 길로 새는 나를 보며 하고 싶은 이야기가 그렇게 많나 싶기도 하고 ADHD인가라는 생각도 든다. 아무튼 그 에세이를 쓰는 모임은 지금 총 2번의 만남을 가졌는데 그중 누군가(A) 구성원 중 한 사람(B)에게 ‘정세랑’ 작가를 좋아할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나 말고) 근데 정세랑 작가 작품도 모르고 정세랑 작가 문체도 모르니 나는 그저 그렇구나 하고 넘어갔지. 그러다가 서고에 정세랑 작가 책이 있길래 뽑아왔다. ’ 피프티 피플’ 몇 년 전에 한창 유행하고 너도나도 이야기했던 작품인 것 정도는 안다. 그게 누구의 작품이냐를 모를 뿐이지. 단편이라서 시간 날 때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고 병원을 배경으로 서로가 연결, 구성원 한 명 한 명의 이야기를 다루는 소설이다. 가볍게 읽던 중 ’ 유채원’이라는 사람의 이야기가 너무 공감된 책을 읽다 말고 타자기를 꺼내 들었다.



소설 속 ‘유채원’은 수술에 천부적 재능을 가진 의사이다. 커피에 빨대 꽂듯 쉽게 관 삽입 수술을 한다는 의미이다. 내가 이 소설에서 공감되어 헐레벌떡 키보드를 연 이유는 너무나 공감되는 문장에서다. 호흡이 잘 맞는 수술실을 가리켜 ‘군무를 춘다‘는 표현을 했다. 그리고 그녀도 나와 같이 효율적인 것을 좋아한다고 직접 기재되어 있다.


“적재적소에 귀신같이 배치된 사람들이 각자의 잠재능력을 극한으로 끌어올리는 풍경이 가장 아름답다고 느끼는 그런 뇌. 채원도 자신의 자리를 오래도록 탐색해 왔다고 말할 수 있다. 아주 어릴 때부터 기다리고 찾았던 그 적소가 어쩌면 여기일지도 모른다고 최근에야 드디어 생각이 들었다.


어려운 구석에 놓여도 기능할 수 있는 조각이니까, 제 역할을 하겠다고 마음먹었고 실제로 해내고 있는 중이었다.


어딘가 정확한 자리, 적합한 자리, 제자리를 찾고 싶었다. 공장에 있는 아주 효율적인 로봇 팔이 지금 거기 서 있는 채원을 들어 그곳으로 옮겨주는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세계를 효율적이지 않지.”“


나에게 가장 와닿고 공감되는 부분을 기재해 봤다.


나는 30 중반인 지금도 직장을 구하고 있다. 다녀봐야 알 수 있는 부분이지만, 똑똑한 사람들과, 일하는 만큼 보상을 해주는, 정상적인 곳에서, 내가 기여할 수 있는 업무를 할 수 있는 곳. 어릴 땐 이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아니 지금도 당연한데 내가 아직 못 찾는 거라고 생각한다. 근데 우선 ‘정상인 곳’이라는 조건에서 많은 옵션들이 사라진다. ’ 정상‘이라는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다. 절대적인 기준은 아니다. 그렇지만…. 뛰어나진 않아도 보통은 가는…. 평균인 내 자리를 찾는 게 너무너무 어렵고 그래서 너무너무 힘들다. 이런 고민을 갖고 이야기를 하다 보면 다들 힘들다고 그 정도는 다 겪는 거 아니냐 다들 존버하는 거다라고 하는 걸 보면 나만 아직 내 자리를 못 찾은 것 같진 않다. 그리고 내 자리라고 생각해 뿌리를 내리더라도 뿌리가 썩기도 하도 다른 변수가 생기기도 해서 인생에 고민은 끝도 없다고 한다. 다른 사람과 비교할 생각은 없다. 애초에 다른 사람들이 다 별로라고 해도 나만 만족스러우면 되거든. 근데 내 자리를 찾는데 시간을 많이 소모한 것 같다.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은 것도 아닌데 말이다. 지금의 자리는 이전의 연봉보다는 낮아졌지만 조직 자체는 나쁘진 않다. 그렇지만 진리의 부바부, 사바사로 인해 비정상인 상사 덕에 매일을 마음 졸이며 보낸다. 다른 동료들과 함께 우리 너무 불쌍한 것 같다고 이야기하면서도 결국 우리는 을이라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다. 최근에는 다 힘든데 이걸 견디고 참지 못하는 내가 어쩌면 비정상적이라는 생각을 했다. 나는 사회생활과 맞지 않는 사람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사실 이미 나는 많이 견디고 참고 있거든 매일매일 하루하루를.


하소연하고 싶은 생각은 없고 그냥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 나 이렇게 이만큼 힘들어. 알아줘. 이런 거 없다. 난 F도 아니다. 그냥 문제를 해결하면 되는데 노력을 해도 결과로 안 이어지고 어렵게 선택해서 들어간 조직과 잘 맞지 않으니 결국 내 문제라는 결론에 도달하고 만다. 하루하루가 고단하고 호프리스라 무기력증에 빠졌다. 근데 또 포기는 못한다. 결국 포기하면 대안이 없으니까. 그래서 나는 나라는 퍼즐 조각이 딱 맞는 곳을 찾는다. 보이는 것은 많은데 표현을 잘 못한다는 말도 맞는 것 같다. 이전처럼 좋은 상사, 동료들과 웃으며 즐겁게 일하고 싶고, 일이 너무 하고 싶다. 내가 있어야 할 곳에서 내가 할 일을 하고 싶다. 이제는 못 가니까 다음 생에는 대기업도 꼭 갈 거고. 모두에게 있는 내 자리가 나에게만 없는 것 같아서 너무 힘들다. 의식주만큼 필수인 게 직업인데 이게 충족이 안되니 연애고 나발이고 마음의 여유가 없다. 그래서 매일 혼자 참고 하루를 견디고, 운동하면서 해소하는 쳇바퀴 같은 삶이다. 이번 주 유난히 힘들었는데 다음 주도 힘든 게 보여서 슬프다. 이렇게 글로나마 털어놓으면 조금은 시원한 것 같기도 하다. 나는 내가 이 나이까지 이런 고민을 하고 방황할 줄 몰랐다. 어릴 적 내가 꿈꿨던 지금의 나는 꽤나 잘 나가는 내 집을 소유한 커리어우먼이었는데. “이제 다 울었니? 그럼 이제 할 일을 하자”의 ‘할 일‘이 무엇인지 모르겠어서 더 무기력한 것 같기도 하다. 성인이 되서의 방황과 해답을 찾는 건 더욱 어려운 것 같다. 시원하게 털어놓을 데도 없거든.


아무튼 책 읽다가 내가 원하는 게 글로 잘 표현되어 있어 공감과 동시에 내 취약점을 또 와라라 쏟아내 버렸다. 채원이도 꼭 맞는 그녀의 자리를 옮겨야 할 수도 있을 것 같은 상황인데 그녀도, 나도 파이팅이지 뭐. 우리 모두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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