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연의 삶을 거부한다.

사실은 주인공 병일지도..

by 도쿄짱상

남편 따라 일본에 온 나는 조연의 삶을 살고 있나?




지금의 상황이 저의 가슴 설레는 꿈이니 세컨드 커리어니 뭐니 어떤 수식어를 가져다 붙여도 결론적으로 내가 여기 일본 땅에서 살게 된 것은 비자발적인 사유에 따른 자발적 선택. 그래서 이 곳의 삶이 어떤 의미에서는 조연의 삶인 것 같습니다.


남편이 직장일에 매진할 수 있도록 집안일을 도맡아 하는 아내라던가, 새로운 환경에서 국제 학교에 다닌 아이가 학교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숙제를 돕고 영양가 있고 맛있는 도시락과 간식을 챙기는 엄마라던가... 누군가를 지원하는 일 자체가 온전히 주인공일 수도 있을 텐데, 18년간 자신의 일을 가진 직장인 본캐를 갓 벗어난 저에게는 그저 주인공을 서포트하는 조연의 역할로 느껴집니다.


남편이 출근을 하고, 아이가 학교로 떠난 후 홀로 침묵의 맨션에 남겨집니다. 분명 누군가에게는 평온한 나만의 시간일 텐데... 저는 공허합니다. 괜한 아메리카노만 빈속에 들이 붓다 보니 역류성 식도염만 심해지고 말이죠, 이렇게 살려고 물 건너온 것이 아니니 이제 뭐든 하기 시작해야 했습니다.



자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까?

아니, 자 지금 내가 여기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일본 코로나 자숙기간, 집구석에 앉아서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끌리는 대로 시도해 보기 시작합니다.


제일 먼저 노트북을 펴고 시작한 것이 블로그였습니다. 거의 15년 만에 다시 로그인해 본 오래된 저만의 공간이지요. 소소한 일상과 생각들, 일본 생활을 하면서 나눌 수 있는 생활 정보 정도지만 근사하게 네이밍 하면 일명 '블로거'라는 타이틀 하나를 손쉽게 GET 한 것! 물론 블로거라는 말 앞에 당당하게 POWER라는 단어는 가져다 붙이지는 못하지만, 블로그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으니 블로거는 블로거지요.


요즘 유행하는 말로는 온라인 건물주가 되기 위해 건물터를 다지는 것이라고도 의미를 부여해 볼 수 있겠습니다.


매일 블로그에 무엇인가를 글로 쓰며 기록으로 남기고, 자가발전하면서 이렇게 브런치 작가라는 타이틀로 또 하나의 제 자리를 만들게 되었지요. 제 이야기를 계속 써 나갈 수 있는 글감과 글쓰기 근육도 바로 다 8개월 전부터 매일 주저리주저리 쓰고 있는 블로그 쓰기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다만 부작용이라고 해야 할까요? 직장에서 실적 점검을 하던 것이 습관이 되어서 인지, 이제 시작한 네이버 블로그 방문자 통계를 수시로 들여다보게 되더라고요. 마치 주식을 처음 시작한 사람이 한 주사고 주식 시세를 계속 쳐다보게 되는 것처럼 말이지요. 그런데 이것도 시간이 지나니 어느 정도 익숙해지고 사람들은 과연 어떤 경로를 통해, 어떤 검색어로 저의 어떤 글에 관심을 가지고 보는 지를 알게 됩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내가 어떤 콘텐츠를 가진 사람인지 무엇을 팔 수 있는지도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지요. 매일 특별한 주제 없이 그날의 경험, 배움, 생각들을 쓰고 쓰고 또 쓰다가 한번 카테고리를 좀 만들어 볼까 하면서 한 2~3개월쯤 되니까 제가 배웠던 것, 그리고 배우고 있고 경험하고 있는 것으로 큰 덩어리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덤으로는 블로그를 매개로 십여 년 전의 지인과 오랜만에 연락이 닿아 안부를 나누기도 하고, 제가 포스팅을 하고도 까먹은 정보들을 제 블로그에서 검색해서 찾아보기도 합니다. 또한 제가 일본살이를 하면서 경험한 것들을 나눌 수도, 다양하게 각자의 방식으로 뜨겁게 살아가시는 이웃들의 글을 보며 자극을 받기도 합니다.


심지어 이렇게 몇 달이 되니 네이버에서 메일이 오더라고요. 네이버 애드포스트, 그 이름도 생소했는데요 바로 광고를 달 수 있는 블로그가 되었으니 신청하라고 합니다. 한 명도 찾아 주지 않던 블로그에 이제는 하루 방문자 50여 명쯤이 되고, 하루에 10원도 되지 않는 수익이지만, 온라인 세상에서 처음으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기쁨을 처음 맛보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저는 누군가의 써포터즈의 삶이 아니라, 나는 나대로의 타이틀이 있는 주인공 된 삶이 시작된 것입니다.

아마도 저는 주인공병이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남편이 있어야 아내가 있고, 아이가 있어서 엄마가 되는 것이 아닌, 스스로 존재함으로 가치로운 바로 내가 주인인 주인공 된 삶을 위한 첫 발자국을 조심스럽지만 힘차게 내딛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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