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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쿄짱상 Apr 25. 2021

퇴사 후 #6. 육아(育兒)로 육아(育我)하다

성장의 재발견


저는 초등학교 5학년 아들 하나를 둔 엄마입니다.


20여 년 직장을 다니면서 항상 00회사의 대리, 과장이라는 직함이 내 이름 앞에 있는 것이 너무나 당연했던 저에게퇴사 만 1년이 되니 누구 엄마라는 자기소개가 익숙해지기 시작했습니다.  



퇴사를 하자마자 제 마음이 향했던 곳은 '엄마'라는 자리가 아니었습니다. 엄마 노릇하려고 퇴사했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지요. 정신없이 제 다음 커리어와 꿈을 고민하는데 온통 마음을 뺏겼었거든요. 일본으로 전학을 와서 학교 급식이 너무 맛이 없는 탓에 다른 한국 친구들은 다 엄마 도시락 들고 다니는데 우리 아이만 차가운 학교 급식 도시락을 먹게 했으니 할 말 다했죠. 그렇게 1년이 지나고 제 미래에 대한 고민들의 먼지가 가라앉으면서 보지 못한 일들이 보이기 시작했고, 지금 여기서만 할 수 있는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강해졌습니다.


지금 내가 여기서만 할 수 있는 일...

늦었지만 바로 '육아'였습니다.


직장과 가정에서 그 날의 책임을 다하면서 매일을 살았던 워킹맘 시절에는 애를 본다는 것이 그저 정신없고 바쁘고 피곤한 일상이었을 뿐이었어요. 하지만 '아이를 본다'는 것은 아이를 잘 관찰하고 공감하고 위로하고 응원해 주는 일임을 이제야 알게 된 것 같습니다.


아침저녁으로 달라지는 얼굴을 봐주고, 학교 다녀온 아이의 표정을 알아차려 어떤 일로 시무룩해지고 열 받아하는지 이야기를 나누며 같이 속상해 해기도 주고 해결책도 고민해 보고, 힘들 때 껴안아주고 출출할 때면 손 잡고 나가 맛있는 간식을 함께 먹는 사이..


최근에 이렇게 아이와 지내다 보니 이제야 아들과 친해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깨달았습니다.


"아! 이런 것이 엄마 노릇이구나! 나는 지금 아이를 보고 있구나"


육아(育兒)를 하면서 육아(育我)를 합니다. 커리어의 멈춤에서도 우리는 성장할 수 있습니다. 위로만 올라가는 것이 성장이 아닌 것 같아요. 성장의 재발견, 나의 또 다른 역할을 온전히 수용함으로써 나의 세상을 수평으로 확대하는 것도 성장입니다.




다만 요즘 저의 성장 욕구의 폭발로 아들이 욕을 보고 있는 것 같아요. 아기 때부터 맞벌이 부부 외동아들답게 자립성이 강한 스타일인데 엄마 역할해보겠다고 제가 교육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고부터 갈등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아들아, 수학 문제집 다 했니? 틀린 것은 고쳤어? 왜 자꾸 똑같은 걸 틀려?

"영어 일기는.. 책 읽고 독서록은 썼어?"

"왜 네 숙제를 엄마가 더 챙겨야 하는 거야? 오늘 스스로 한 게 뭐가 있어?"


제 성에 안차는 아이의 학습량과 태도에 요즘 매일같이 아이랑 눈만 마주치면 하는 잔소리들입니다. 말하는 저도 지겨운데 듣는 애는 얼마나 더 지겹겠어요. 한참 정신 교육을 하고 나면 눈물을 글썽이며 시무룩하게 자기 방에 들어가 문제집을 펴는 아직 너무 순한 우리 아들, 그러다 제가 좀 너무 심하게 대했나 싶어 후회할 때쯤 다시 살갑게 다가와 애교를 부리며 안아달라고 하는 착한 아들입니다.


내일 아침은 이런 아들을 위해 따뜻하고 더 맛있는 도시락을 준비해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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