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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쿄짱상 Sep 02. 2024

10월 말일 오제 국립공원 목로를 걷다

일본에서 4년, 4계절 3인 가족의 첫 번째 가을 이야기


엄마

우리 가족의 여행 스타일을 MBTI 유형으로 표현하자면, INFP가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끼리 오붓하게 다니는 것을 선호하며, 목적지가 어디든 마음 가는 대로 여행을 즐깁니다. 효율성보다는 감성에 따라 움직이며, 가끔은 사진 한 장에 이끌려 여행이 시작되기도 하지요. 새롭고 멋진 자연에서 감동을 느끼고, 함께 하는 것에서 행복을 찾는 가족입니다. 아마도 10월 마지막 날에 방문한 오제 국립공원이 우리 여행 스타일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장소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가볍게 10월의 가을 단풍을 구경하려고 갔지만, 이미 그곳은 기온이 영하로 떨어져 겨울산이 되어 있었습니다. 멋모르고 깊은 숲 속으로 끝까지 들어갔다면, 센과 치히로처럼 어디론가 사라졌을지도 모릅니다.


다행히도 우리는 생존하여, 이듬해에 다시 찾아가 오제를 제대로 만끽할 수 있었습니다.


아들

10월의 어느 날, 우리 가족은 오제국립공원에 갔습니다. 다행히도 입산 금지 전날 도착하여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총 4시간을 걸었지만, 제가 기대했던 다양한 풍경과는 다르게 들판만 보였습니다. 그때 도톰한 등산복 차림의 사람들을 보며 ‘어쩐지 춥더라…’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두 번째로 날씨가 따뜻할 때 다시 방문했을 때에는 기대했던 풍경이 펼쳐졌습니다. 늪지대, 큰 짐을 메고 산장으로 나르는 봇카, 그리고 푸른 호수들도 볼 수 있었습니다.


어쨌든, 제 다리는 박살났지만요.


아빠

한국의 한 다큐멘터리에서 소개된 오제 국립공원. 끝없이 펼쳐진 고원 습지 위에 목로로 이어진 이곳은 사전 조사 없이 방문해 조금 늦은 시간에 도착하게 된 곳입니다. 기대 이상으로 꿈속의 길을 걷는 듯한 착각에 빠질 만큼 근사한 풍경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한두 시간 남짓 걸어 산장 휴게소에 도착했을 때, 전문 등반객으로 보이는 일본인 무리가 우리에게 랜턴을 건네며 혹시 필요하지 않겠냐고 걱정의 말을 건넸습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이곳은 도쿄와 달리 10월에도 영하로 떨어지는 날씨라고 합니다. 하산해야 하는 늦은 오후에 적절한 복장과 장비도 없이 오제 고원의 더 깊은 곳을 향해 걷는 우리 가족의 모습이 아마도 위험하게 보였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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