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년이라는 짧지 않은 조직생활에 종지부를 찍고 일본으로 건너와 세컨드 커리어를 가꾸기 시작한 지 어언 4개월이 다 되어갑니다. 물론 순진하게 마음먹은 대로 다 될 것이라는 장밋빛 환상을 가지고 퇴사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0년쯤 후에는 한국에서 강연자, 코치라는 타이틀로 제 역할과 자리가 있을 것이고, 그것을 위해 차근차근 하나씩 준비하고 뭐든 하다 보면 그 방향에 서있지 않을까라고 스스로를 다독였지만, 스타트 라인에서 출발하고 보니 구체화된 계획이 없는 퇴사는 막상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참 막막합니다.
회사 다닐 때는 제때 출근해서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다 보면 인정도 받고, 칭찬도 받고 길을 헤매는 일이 없던 저였는데 말이지요.
여기 일본에서 뭐든 해야 한다는 조바심만 가득하고 하루하루 이래저래 시간도 잘 안 가는 것 같고 답답하고 무거운 마음으로 보냈었는데, 어느 날 달력을 보니 아니 벌써 시간이 흘러 만 4개월이 다 되었더라고요.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아마도 이제 출퇴근의 분주함이 없는 이 루즈한 삶에 제 몸이 그리고 정신도 조금씩 익숙해지고 있는 모양입니다.
퇴사와 동시에 일주일 만에 일본으로 건너왔고, 국제 이삿짐 박스를 풀고 있는 와중에 일본 코로나 상황은 점점 심각해져 왔습니다. 타국에서의 코로나에 대한 공포로 감옥살이 4개월을 하며 심장에는 전에 없던 가슴 두근거림증을 시작으로 우울감, 불안감, 때론 초조하고 답답함으로.. 부정적인 감정들이 여러 가지 얼굴로 저를 찾아왔다 가곤 했지요.
하지만 얼마 전부터는 일본 도쿄도 어느 정도의 안정을 찾은 건지 공식적으로 자숙 해제가 되고, 닫혀있는 가게 문들이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아직 마스크는 필수지만, 이제 모두들 예전의 일상으로 돌아가는 모습입니다. 오늘따라 날이 좋아서인지 저희 집 앞 공원에서 산책하는 연인들이, 가족들이 심지어 주인 손에 목줄을 메고 가고 있는 애완견까지도 자기의 일상을 기억하고 있는 듯합니다.
하지만 나는 여기에서 돌아가야 할 일상이 없다.
남편도 출근을 하고, 아이도 학교를 가는데, 저는 돌아갈 수 있는 예전의 일상이 없습니다. 목줄은 멘 애완견들도 일상으로 돌아간 것 같은데... 홀로 산책을 하다 왠지 마음이 슬퍼져 눈물이 고여와 소매로 눈을 비볐습니다.
직장인에게 퇴사라는 것이 바로 이런 것입니다. 돌아가야 할 익숙한 일상이 없다는 것.
매일 같은 일상이 때론 지겹고 참기 힘들고 어떨 때는 벅차서 도망치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직장생활은 익숙함이 주는 안도감이 분명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떤 식으로든 이제는 조직생활을 떠나 홀로서기를 시작한 이상 제가 스스로 일상, 매일의 삶의 루틴을 만들어 가야겠지요. 여전히 걱정되고 이렇게 하고 있는 것이 맞는지 두려운 마음도 가득하지만 그래도 제가 품은 꿈이 저를 지지해주고 가야 할 길의 방향을 가리킵니다.
스스로 가고 싶은 아니 가야 할 길이 있을 때, 조직에서 당신의 길로 갈아탔다면, 분명 두려운 마음속에도 적어도 10%쯤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그 일에서 나다움을 실현할 수 있는 삶을 시작한다는 설렘이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그 설렘의 에너지를 붙잡고 지금의 상황을 이렇게 한번 재정의해 보기로 했습니다.
드디어 나는 내 삶의 조물주가 되어 나만의 세상을 창조해 가는 것이다.나를 발견해 나가며, 나의 가치를 만들어 내어 가는 과정, 아마도 이제 나는 신의 영역에 들어서는 것이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