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 있는 여자는 대기업 퇴사도 두렵지 않다.

가슴 뛰는 순간 내 마음에 저장, 파일명은 '꿈'

by 도쿄짱상

꿈을 만난 적이 있으신가요? 제게는 그 누구도 보장해 주진 않았지만 대기업의 임원이 되고 싶은 야망 아니 로망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꿈의 씨앗을 발견한 저는 그 욕망을 내려 놓을 수가 있었습니다. 바로 나다움을 실현할 두려운 꿈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저는 화학 제조업체에서 일어일문과 전공을 살려 주로 일본, 동남아 지역 일본 고객사를 대상으로 한 해외 영업을 업으로 했었어요. 출산과 육아휴직, 거기에 사고까지 겹쳐 몇 개월간의 병가까지 냈었지만 당당하게 남자 동기들과 같은 해에 대리, 과장, 차장까지 승진하는 제 밥그릇 잘 챙겨 온 커리어 우먼이자, 초등학생 아들을 키우는 열혈 워킹맘으로 18년을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말이지요... 이 업과는 전혀 상관없는 곳에서 저의 비전은 싹이 트고 있었습니다.


퇴사 4, 5년 전쯤이었던 거 같아요. 어느 맑은 평일 점심시간이었었습니다. 저를 잘 따라줬던 워킹맘 후배와 점심시간에 산책을 하던 중에 선배 워킹맘으로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만... 훅 느껴버렸습니다. '내게 가슴 뛰는 일이 바로 이런 것이구나'라는 것을요.


속깊은 대화를 한다는 것은 사실 꽤 많은 정신적 에너지를 쓰는 일이잖아요, 그런데 그 후배와의 대화가 힘들기는커녕 대화가 진지해 질 수록 제 에너지는 샘솟고, 눈이 초롱초롱해지면서 얼굴에도 살짝 열기가 올르며 가슴이 차오르는 느낌이었습니다. 바로 그 물리적인 신체의 변화 순간이 제 맘 속에 저장되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저장 파일의 이름을 "꿈"이라고 붙였습니다.



'아! 나는 누군과와 나의 경험을 나누고,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공감하고 지지하며 마음을 돕는 일을 정말 좋아하는구나! 나로 인해 누군가 조금이라도 힘을 얻고 성장해 나갈 수 있다면 내 삶이 정말 충만할 것 같아!'


길을 걷는 것의 첫 번째는 바로 이 가슴이 뛰는 순간을 발견하는 것인 것 같습니다. 분명 우리에게는 이런 순간이 선물처럼 찾아오고 있으니, 항상 스스로를 살펴본다면 누구라도 그 특별한 순간의 셀카를 찍어 저장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처음 느끼는 감정이었지만 막연하게나마 저는 살아가면서 하고 싶은 일, 그리고 해야 할을 마음에 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꿈의 씨앗일 뿐 여기에 아침 저녁으로 들여다 보고 물도 주고 비료도 주면서 가꾸어야 그 꿈이 싹이 트고 자랄 수 있는 법이지요. 저는 그것을 위해 리더십과 코칭이라는 MBA 과정을 선택했습니다.


사실하고 싶은 일이 있다고, 막연한 꿈만 가지고서는 하루하루의 숙제를 하며 달리는 현실의 챗바퀴 같은 삶에서 1도 벗어나기 힘들잖아요. 그런데 나름 큰돈을 들여 2년간 리더십과 코칭 석사과정에 투자할 수 있었던 계기가 아이러니하게도 제가 애정하며 다니던 회사였습니다. 제가 다니던 회사가 갑자기 매각되고 합병되어 어떤 자회사로 편입된 것입니다. 당시 저에겐 제2의 가정 아니 어쩌면 제 우주와 같던 회사가 하루아침에 나에게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사라져 버린 것이지요. 파란색 피가 철철 넘쳐 언젠가는 한자리하고 싶은 열망에 이끌려 달려왔는데... 회사 대강당에 모여 태어나서 처음 데모라는 것을 하면서 옆 사람 부끄러울 정도로 뭐가 그리 서러웠는지 엉엉 울기도 했는데요, 몇 년 되지도 않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참 어리고 순수했던 마음입니다.


그렇게 회사에 대해한 배신감으로 기운이 빠져있던 차에 마침 새 회사에는 초등 돌봄 엄마 휴직 제도가 막 시작되었습니다. 인생사 새옹지마라는 표현이 참 잘 맞아요. 1학년에 아이를 입학시키는 엄마가 쓸 수 있는 휴직 제도, 제가 그 첫 번째 타자로 과감하게 1년을 질렀습니다. 명분은 그동안 하루 12시간 어린이집에서 지내온 아이에 대한 보살핌 이었지만, 뭔가 배신당한 나와 그동안 빡세게 달려온 나를 위한 보상을 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 저도 제 꿈을 키울 수 있는 대학원 코칭 과정에 입학했습니다. 우연하게도 일련의 부정적인 외부 환경의 변화가 저의 꿈을 키워 나가는데 양분이 되기 시작한 것이지요.


그리고 만 3년 후 갑자기 찾아온 남편의 일본근무로 인한 퇴사의 선택이라는 갈림길에서 저는 아직은 미지의 길이자, 답이 정해진 길이 아니기에 두렵지만, 용기를 내어 타인의 오늘을 돕는 코치의 꿈을 품고 제 안전지대에서 스스로 걸어 나와 일본행 비행기를 타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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