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을 올리는 삶이 멈췄다.

인생의 사다리에서 내려와, 내 길을 만들 시간.

by 도쿄짱상

코로나 자숙의 시간, 인기있었지만 미쳐 챙겨보지 못했던 드라마 한편 정도는 정주행 보지 않으셨나요? 저의 선택은 현빈 주연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이라는 드라마 입니다. 주인공 현빈은 스페인 알함브라 궁전을 배경으로 한 가상현실 게임에 갖혀 살아남기 위해 끊임없이 전투를 벌이며 마지막회까지 아이템을 업그레이드 시키며 자신의 레벨을 올려야 했지요.



저의 첫번째 퇴사까지의 삶이 바로 그런 레벨을 올리는 삶이었습니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냥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당연한 것 처럼 말이죠.


명문대 졸업장이라는 아이템을 장착하고, 부모님이 자랑스러워 할 만한 대기업에 취업을 하기까지 끊임없이 스펙이라는 것을 쌓아가며 살아온 것입니다.


취업 후 직장인의 삶은 또 어떤가요, 남들보다 더 좋은 평가를 받고 싶고, 빠르지는 않더라도 제때에 대리, 과장, 차장, 부장 승진이라는 것을 하고 싶었습니다. 10년 전 30대 초반의 임신 중이었던 저는 제때 과장을 달고 싶은 그 욕심이 얼마나 과했는지 우리 아기는 7개월만에 세상에 나오기도 했습니다.



레벨 올리기에 집중한 삶은 높은 사다리를 한 발자국씩 오르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위로 위로 오로지 위만 바라보고 살았다 싶습니다.


덕분에 얻은 것도 많습니다. 누구보다 열심히 하루하루 충실하게 살아내려고 노력했고 그만큼 정당한 댓가 혹은 그 이상의 것을 운좋게 받아왔기도 합니다.


그런데 퇴사한 지금은 그 사다리에서 다음 발자국을 둘 곳이 없습니다. 좁고 아슬아슬한 사다리를 안간 힘을 주고 한 발씩 올라오던 저였기에, 다음 발딛을 곳이 없다는 것이 당황스럽기도 하고 무섭기도 합니다.


이제 그 무서운 사다리에서 내려와야 겠습니다. 그리고 퇴사한 스스로에게 선언해 봅니다.


"레벨을 올려야 살아남는 STAGE 1 게임이 종료되었습니다."



비자발적 상황에서 자발적 선택으로 넘어온 일본에서의 프리랜서의 삶 STAGE 2 가 시작됩니다.


하지만 STAGE 1의 끝자락에서 그려본 STAGE 2 는 여전히 레벨을 올리는 것만 떠오릅니다. 커리어 쌓기 프레임 안에 갖혀 있는 저를 바라보게 됩니다. 여기 일본에서 더 괜찮은 간판이 될 수 있는 유명 대학원에 간다거나, 더 있어보이는 자격증을 딴다거나 하는 것 말이지요.


그런데 말이죠, 가슴뛰는 일을 업으로 하는 STAGE 2의 삶우 주어진 책임을 다하면 약속된 레벨로 올라가는 그런 수준이 아닌 것을 눈치 채 버렸습니다. 본 게임에 들어온 지금은 일련의 미션을 수행하며 짜여진 스토리를 타고 가는 STAGE 1과는 확실히 판이 다릅니다. 명문 대학원의 간판을 딴다고, 업계에서 유명한 자격증을 딴다고 확신할 수 있는 길이 짠 하고 열리는 것이 아니니까요.


미로 속을 헤메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여러갈래의 길이 있는 미로 속을 헤메이고는 있지만, 분명한 것은 레벨 올리기 프레임을 확실히 버려야 나만의 나다운 의미있는 삶이 될 것이라는 예감이 듭니다.


이런 마음을 붙잡고, 이제 저는 어디로 제 발을 내딛어야 할까요?


다시 제가 가고 싶은 길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봅니다.


정말 무엇을 위해 무엇을 하고 싶고,

과연 안하면 어떻게 되는 건 지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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