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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쏠SOL Sep 01. 2020

쓰는 게 좋니?

말로만 다짐을 반복하는 나에게



어느 해인가,

내게 꽤 중요했던 이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너의 칼날은 충분히 날카롭다고 생각해. 칼날이 뭉툭한 게 아니라, 그 칼날이 어디를 향해야 할지 방향을 잘못 잡은 것 같아



듣자마자 서럽게 울었다, 속으로.

겉으로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다.

글은 쓰지 않고 사진만 가다듬는 내 모습도 미웠고, 팔로워 수를 비교하며 쉽게 화를 내는 것도 싫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보이는 것에 더 집착하고 있었다는 걸 그때야 깨달았다.


중요한 이의 말이었기에 더 아팠다.

작은아씨들의 조세핀 마치처럼 -프레드리히의 지적을 받고 다시는 말도 섞지 않을 거라고 포효했던 그녀처럼- 그렇게 패악질을 부리고 싶었으나 그럴 수는 없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의 말이 애정에서 비롯된 것이었기에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내일부터 달라지겠다고 다짐하며 그 자릴 나섰다.



그로부터 2년이 더 지난 지금, 대체 나의 무엇이 달라졌는가.





나는 정말 쓰고 싶은 걸까.

아니면 쓰는 일을 한다고 말을 하고 싶은 걸까.




이제는 접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여행을 다녀온 지 벌써 5년이 돼가는 때였다.


독립출판 한 권, 공저한 책 한 권. 그렇게 100페이지 조금 넘는 얇은 책 두 권을 끝으로 작가라는 이름은 젊은 날의 추억쯤으로 접어두자, 이렇게 게으른 거면 안 쓰고 싶은 거다, 코로나 때문에 여행 이야기는 팔리지도 않고 팔 수도 없는 지경인데 언감생심 이제 와서 다 지난 여행 이야기를.


솔직히 말해 코로나는 꽤 좋은 핑계였다.


그러다가 자신의 글을 꾸준히 연재하는 연재 노동자의 글을 받아보게 되었다. 꾸준히 글을 쓴 사람은 글 근육이 자란다고들 하지, 정말 그 글 근육이 만져지는 글이었다.

부끄럽고 부러웠다. 대체 난 무얼 두려워하고 무얼 후회할까 봐 겁냈던 거지.


그냥 쓰는 일이 좋은 거면 쓰면 되는건데

뭘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했는지 이제와 보니 헛웃음이 난다.

정말 내 칼날은 엉뚱한 곳을 향하고 있었던 것임을 그 말의 의미에 백퍼센트 동의할 수 있게 됐다.




뭐라도 쓰자.


나의 글만 보이는 이 브런치 안에서 뭐라도 써 보자.

마지노를 정해두지 말고, 아무 글이라도 말이다.


나중에 후회해도 괜찮을, 이 시기 나의 흔적을 남겨보기로 했다.


부족하고 서툰 글일 것이다.

당신의 시간을 잡아둘 것이나 다행히 인쇄되지 않을 활자들이다. 그래, 부담 갖지 않을 테다.

주제를 잡고 여행에 국한되지 않는 글을 쓸 거다. 사진 없는 글을 -아니, 사진이 있으면 또 어때- 찍고 싶으면 찍고 보태고 싶으면 보탤 거다.



그런 생각을 9월 첫날, 오늘 해봤다.

벌써 첫 글을 썼으니 생각은 현실이 됐고, 매일 연습을 이어가는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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