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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목수 Jun 30. 2019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것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누군가는 어릴 적 장래희망이 선생님이었을 것이고, 또 어떤 사람은 실제로 교사를 천직으로 삼고 치열하게 살고 있을 것이다. 나는 아니다. 나는 남에게 간섭받는 것을 굉장히 싫어한다. 그리고 같은 이유에서 남에게 폐를 끼치는 것도 엄청 싫어한다. 아마 그래서 목수가 됐을 것이다. 행여 타인에게 작은 영향이라도 나쁜 쪽으로 끼칠까 늘 조심스럽다. 그런 내가 아이들을 가르치게 됐다. 그것도 말도 안 통하는 외국에서.


 가르친다는 것은 여러 가지 의미를 갖는다. 내가 가르치는 분야는 직업교육이기 때문에 가르치는 내용이 단순히 기술적인 부분에 한정될 수도 있지만 실제로 사람 사이에의 관계는 그렇게 기계적으로 형성되지 않는다. 내가 가르치는 학생이 더 잘 되기를 바라고, 안정된 직장에 자리 잡고 행복하게 살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하게 된다. 그래서 일하는 태도, 또는 시간을 엄수하고 약속을 지키는 것의 중요성 같은 부수적인 것들도 함께 가르치는 것이다. 교육자라면 누구나 어떻게 하면 더 좋은 교육을 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 보았을 것이다. 


 새로운 직업 교육을 시작하는 시점에서 교육의 방향성에 대한 고민은 나를 밤 잠도 설치게 만들었다. 일찍이 생텍쥐베리는 이렇게 말했다.


“만약 배를 만들고 싶다면 남자들을 불러 모아 목재를 마련하고 임무를 부여하고 일을 분배할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무한히 넓은 바다에 대한 동경을 보여줘라. 그러면 스스로 배를 만드는 방법을 찾아낼 것이다.” 


- 생텍쥐베리, 어린왕자 -


'올커니! 만약 아이들이 가구를 좋아하게 만들 수 있다면, 그들은 가구 만드는 법을 기쁘게 배우려

 할 것이다!'


 논어에서도 ‘열심히 하는 자는 즐기는 자만 못 하다’했지 않은가? 학생들이 목공을 즐겁게 받아들이도록 할 수만 있다면 교육이 매끄럽게 진행될 수 있을 것 같다.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가구를 좋아하게 만들 수 있을까? 심각한 고민이다. 내가 아는 가구에 관한 지식과 재미있는 사연들을 옛날이야기하듯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지만 언어의 장벽 때문에 어려워 보인다. 물론 수업 시간에는 통역 선생님의 통역이 있다. 하지만 통역을 통해서 각각의 가구에 담긴 사연과 그 풍부한 감정, 그리고 미세한 디자인의 차이에서 오는 묘한 떨림을 아이들에게 모두 전달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오자와 료스케 지음, 박재영 옮김, 덴마크 사람은 왜 첫 월급으로 의자를 살까, 꼼지락 출판사

 학생들과 나는 언어만 다른 것이 아니라 문화도 다르기 때문에 가구에 대한 인식도 사뭇 다르다. 가구에 대한 인식은 한국 사람과 인도네시아 사람이 다르고, 미국 사람도 다르고, 유럽 사람도 제 각각 다르다. 덴마크 사람들은 첫 월급을 받으면 의자를 산다고 한다. 덴마크에서도 좋은 의자는 백만 원이 훌쩍 넘기도 하는데, 그러면 월급이 박봉인 사회 초년생은 몇 년에 걸쳐서 월급을 쪼개고 모아서 의자를 하나, 둘 정성스럽게 사모은다. 그렇게 가구와 함께 자기 삶을 돌보듯이 키워나가는 것이다. 스칸디나비안 스타일의 가구가 전 세계적으로 각광받게 된 배경에는 이와 같은 가구에 대한 스칸디나비아 인들의 사랑이 깔려있다. 그들은 자기가 머무르는 공간이 자신이 누구인지 말해준다고 생각한다. 공간에 대한 애정이 강하고 취향이 뚜렷한 사람들이다. 이와 같은 가구에 대한 덴마크 사람들의 태도는 한국 사람조차도 공감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하물며 월급이 30만 원도 안 되는 인도네시아에서 사람들에게 가구란 과연 무엇인가? 




 인도네시아 아이들에게 덴마크의 가구 이야기를 한다면 몇이나 수긍하고 마음이 동할까? 하지만 나는 어떻게든 시도해보아야 한다. 말로만 전달해서는 충분히 전달되기 어려울 것임을 알기 때문에 멋진 가구 사진을 많이 모아서 아이들에게 보여줄 준비를 했다. 또 실력이 좋은 목수들이 가구를 만드는 멋진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유튜브에서 원목 가구를 만드는 동영상을 찾았다. 가구에 대한 애정을 갖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목공 작업 자체를 즐겁게 받아들일 수 있게 해주고 싶었다. 말이 안통하면 사진과 동영상의 힘이라도 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한국에서 개인 목공방을 운영할 때 내가 진행하던 목공예 취미 강좌에는 젊은 미대생부터 나이 지긋한 어르신까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많은 사람들이 목공예 자체를 즐기기 위해 등록했다. 손에 잡히는 무언가를 자유로운 두 손으로 자신의 의지대로 만드는 것은 상당한 즐거운 일이다. 레고 조각을 가지고 노는 것과 비교할 수도 있겠다. 돈이 모든 것을 대신해주는 21세기에 자기 몸을 직접 움직여 가치 있는 물건을 만드는 행위는 사람을 상당히 기분 좋게 해 준다. 한국에서 취미로 목공예를 가르쳤던 사람들처럼 가구반 학생들이 나무를 만지는 것만이라도 좋아하게 된다면 절반은 성공일 것이다. 


효창동 공방 수업 풍경 2015년 1월 / 예술적 감각이 넘치는 분들과 함께 했던 원목 스툴 제작반


 목공예 직업교육 커리큘럼은 1년 과정으로 기본기에 충실하도록 짰다. 끌과 대패를 다루고 날물을 연마하는 법과 숫돌을 다루는 법 등을 가르치며 섬세함에 대한 인식의 수준을 높이는 훈련부터 시작한다. 그러고 나서 의자, 스툴, 테이블, 서랍장, 캠핑체어와 공간박스를 비롯해 생활에 많이 쓰이는 가구를 직접 만들며 가구의 구조와 각 파트의 가공법을 반복적으로 익힐 수 있도록 커리큘럼을 준비했다. 어쩌다 보니 내가 팔자에 없는 목공예 교본까지 만들게 됐다. 교본은 먼저 한글로 만들고 나서 영어로 번역했다. 현지 강사에게 영문 교본을 전해주면 다시 인도네시아로 번역을 해서 학생들이 볼 수 있는 교재가 완성되었다. 


 흔히들 말하는 밀레니얼 세대는 개성이 뚜렷하고, 직업 선택과 일처리에 각자의 고집과 저마다의 이유가 있다고 말 한다. 같은 시간에 살고 있을지라도 저개발국의 아이들에게 '밀레니얼 세대'라는 신분은 적용되지 않는다. 이 곳 아이들은 한국의 아이들과는 또 다르다. 이들에게는 미래에 대한 꿈이나 특정한 이념보다는 당장의 밥 한 끼, 돈 한 푼이 더 중요하다. 일을 하고 싶어도 임금이 저렴한 일자리 조차 쉽게 구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에 나는 이들에게 막연한 꿈과 희망에 대해 이야기 하기보다는 불안정한 삶의 터널에서 나와 두 발로 디디고 서서 세상에 섞여 살 수 있도록 현실적인 채비를 시켜주고 싶다. 최소한 이 친구들이 밥은 굶지 않으면서 심신이 건강한 삶을 조금씩 일구어 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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