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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목수 Jul 06. 2019

목공 실습실 준비하기

모호함의 나라에서 정확함을 추구하다가 온 몸에 진이 빠졌다


 언어도 다르고 문화도 다른 외국 도시에서 한국의 목공방과 비슷한 시설을 만드려고 하니 일이 한국에서 보다 몇 갑절은 힘들었다. 돈을 들고 가서 기계와 연장을 사면 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인도네시아는 한국과 다른 문화가 굉장히 많다. 그 중 한국에는 있고 인도네시아에는 없는 것이 보행권과 소비자 권리다. 자동차와 오토바이가 지나 다닐 도로도 부족한데, 보행권에 대해서는 이 넓은 도시에서 아무도 관심이 없다. 그리고 소비자 권리가 얼마나 무시되는지 어이가 없을 정도다. 백화점에서 물건 값을 계산했으면 환불이나 교환이 일절 안된다. 물건을 산 바로 그 자리에서 다시 환불을 요청해도 안된단다. 왜 안되냐고 물어보면 그냥 안되는데 왜 물어보냐는 식이다. 백화점에서도 이럴진데 소규모 점포에서는 말 할 것도 없다. 인도네시아에서는 돈을 냈으면 끝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물건을 사기 전에 박스를 뜯고 제품 전원을 켜서 작동이 잘 되는지 확인한 후에 계산을 한다. 답답하고 번거롭지만 로마에서는 로마의 법을, 인도네시아에서는 인도네시아의 법을 따라야 한다. 


  우리 NGO 사무실에는 인턴으로 일을 도와주는 인도네시아 대학생이 있다. 그 친구에게 자카르타에서 목공 기계를 파는 곳을 알아봐 달라고 했다. 며칠을 기다려서 괜찮은 곳을 좀 찾았냐고 물어봤더니 인도네시아에 그런 기계를 파는 곳은 없다고 한다. 인도네시아에 사람들은 자기가 잘 모르면 없다고 대답하곤 한다. 한국에 살면서는 평생 한 번 도 겪어 보지 못한 일이다. 300년이나 되는 긴 식민지 역사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모른다고 말하는 것을 겁내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그냥 내가 구글에서 영어로 검색해서 직접 찾아보기로 했다. '아무튼 고마워. 고생했어 인턴 씨.' 우여곡절 끝에 기계와 연장 구입을 위해 밖으로 나갔다. 


 북자카르타 항구 근처에 있는 AKS라는 목공 기계상은 대부분의 기계를 중국이나 대만으로부터 수입해서 판매하고 있었다. 산업용 기계는 하나에 몇 톤씩 나가는 것도 많다. 때문에 운송이 어려운 대형 기계의 특성상 항구 근처에 위치한 것이다. 기계 전시장에는 목공 기계뿐만 아니라 산업 현장에서 사용되는 다양한 용도의 기계들이 드넓은 공간에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그 거대한 규모에 압도되어 '나는 정말 우물 안의 개구리였구나'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 자리에서 원하는 장비를 바로 찾아서 주문할 수 없어서 목공 기계 카탈로그를 받아서 돌아왔다. 취급하는 목공 기계가 어찌나 많은지 카탈로그가 월간지만큼이나 두꺼웠다. 문제는 대부분의 모델이 중국산이고 제품의 퀄리티가 걱정된다는 점. 예산 문제 때문에 마냥 좋은 기계를 살 수는 없다. 품질이 담보된 대만산 기계와 그렇지 않은 중국산 기계 사이에서 몇 날 며칠 공부해가며 비교하다가 결국은 대부분의 기계를 중국산으로 주문했다. 견적서를 받아보고는 너무 값이 싸서 놀랐다. 한국 목공방에서 내가 사용하던 기계 가격의 1/3 수준에 불과했다. 목공 기계가 이렇게 싸기도 하구나. 



인도네시아는 가구의 나라인 만큼 좋은 목공 장비를 많이 찾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하지만 나의 기대는 시장을 둘러보는 순간 산산이 부서졌다. 인도네시아 목수들은 내가 생각하는 것과는 작업 방식도 다르고, 목공예에 대한 개념도 다른 듯 하다. 이 곳에는 좋은 기계와 정밀한 연장을 사용해서 완성도 높은 가구를 만들려고 하는 사람이 없나 보다. 도무지 제대로 된 연장을 찾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완성품에 대한 기대 수준이 낮은 만큼 사용하는 장비의 퀄리티도 낮아 보였다. 자연히 가격도 굉장히 쌌다. 싸도 너무 쌌다. 4000원짜리 톱을 집어 들고 생각했다. '이걸로 나무가 잘리기는 하는거야?'


 한국의 목공방에서는 목재의 거친 표면을 다듬기 위해 대부분 6인치 원형 샌더를 사용했다. 5인치 샌딩기는 보조 장비이거나, 취미로 목공을 하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장비쯤으로 여겨진다. 그런데 인도네시아에서는 원형 샌더가 죄다 5인치다. 눈을 씻고 찾아봐도 6인치 샌딩기를 찾을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이 5인치 샌딩기를 구입하기로 했다. 샌딩기는 시작에 불과했다. 공구상가에 찾은 제일 좋은 톱은 고작 몇 천 원짜리였다. 대패는 5천 원 끌은 3천 원, 이런 식이다. 한국에서 쓰던 연장은 톱이 5만 원, 대패는 9만 원, 끌도 하나에 3만 원 짜리였다. 퀄리티 차이가 나도 너무 났다. 이런 양철 연장을 가지고는 학생들을 가르칠 수나 있을까? 



평범한 인도네시아 공구 상점, 여기서는 내가 원하는 연장을 퀄리티의 찾을 수가 없었다.


 괜찮은 공구를 찾겠다는 일념으로 자카르타 Glodok이라는 동네를 샅샅이 헤매고 다녔다. Glodok은 한국의 청계천과 비슷한 지역이다. 각종 공구 상점이 몰려 있는 지역인데, 골목의 바닥은 찌든 때가 겹겹이 쌓여 있어서 신발을 신고도 땅을 함부로 밟기가 겁났다. 몇 걸음 걸으니 신발에 검댕이 묻어서 금방 까매졌다. 신발은 포기하고 그냥 연장이나 빨리 찾자. 기온은 30도를 훌쩍 넘는데, 호그와트 미로 같은 Glodok 뒷골목에는 바람 한 점 들어오지 않았다. 땀으로 샤워를 하며 골목을 누볐다. 뒷골못 구석진 곳에서 드디어 꽤나 번듯한 공구 상점을 하나 발견했다! 가게에 들어서자마자 일본제 줄자와 버니어 켈리퍼스 같은 연장들이 눈에 들어왔다. 아! 내가 원하던 연장들이다! 한국에서는 그 존재를 당연하게 여겼던 고마운 연장들. 그런데 문제는 상점에 재고가 충분치 않다는 것!



공구 정리 월 스페이스 / 자카르타 목공 교실 

 원하는 제품을 카탈로그에서 찾아서 주문하면 일본에 주문을 넣어서 제품을 받아다가 보내 준단다. 그럼 시간이 얼마나 걸리냐니까 짧으면 2주, 길면 한 달이란다. 인도네시아에서 상대가 이렇게 말하면 그 두배 정도 시간을 예상하면 얼추 맞다. 이제는 시간과 관련해서 안 속는다. 아직 목공 교실을 한창 짓고 있을 때였다. 교실을 오픈까지 한 달 정도 기다릴 시간은 있다. 줄자, 스테인리스 철자, 그리고 끌, 대패와 숫돌까지 수업에 필요한 목공 용품들을 꼼꼼히 챙겨서 주문했다. 


  어떻게 해서든 한국에서 쓰는 것과 비슷한 퀄리티의 연장을 준비해야 교육의 수준도 어느 정도 담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기를 쓰고 몇 날 며칠을 제대로 된 목공 연장을 찾아 헤매었는데, 수업을 준비하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만약 실제 인도네시아 산업 현장에서는 이렇게 좋은 연장을 쓰지 않는다면? 학생들이 전혀 다른 연장으로 기술을 배워서 나중에 실제 현장에 나가면 오히려 적응을 못 하는 거 아니야? 타협이 필요할 것 같았다. 현장을 알아야 제대로 가르칠 수가 있다. 


인도네시아에 대한 공부가 정말 많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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