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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목수 Jul 14. 2019

슬픈 눈을 가졌던 친구, 루크만

가구 교실의 첫 번째 학생, 루크만 하킴


 오늘은 좀 감성적인 글이 될 것임을 미리 밝히고 시작합니다.



 자카르타 우리 목공교실에는 첫 번째 학생인 루크만이라는 친구가 있었다. 루크만은 가족에게 돌봄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자란 아이였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 정규학교를 다니지 못했고, 집에는 먹을 것이 없어서 고아원 같은 복지시설을 전전했다. 그러다 열여섯 살쯤 되어 사회에 나갈 준비를 위해 우리 시설에 들어왔다. 우리가 목공 교실을 만든 곳은 자카르타시 사회부에서 운영하는 복지시설이다. 정규학교를 가지 못 한 고등학생 나이의 학생들이 1년간 기숙사에서 지내며 기술을 배우는 곳이다. 기숙사 생활비와 교육비 모두 무료다.


루크만이 마이클(인턴)과 함께 공구 정리대를 만들고 있다. 

 루크만은 목공 교실이 미처 완성되기도 전에 목공반에 들어왔다. 루크만과 나는 목공실 설비 세팅부터 같이 하면서 일단 수업을 시작해보기로 했다. 목공 기계 설치와 세팅도 같이 하고, 공구 정리대도 만들고 작업대도 함께 만들었다. 조금 난이도 있는 목공 작업대도 같이 만들었는데, 어쩌다 보니 도제식 수업처럼 일대일 수련이 되었다. 


루크만은 커다랗고 슬퍼 보이는 눈을 가진 아이였다. 눈동자에 담긴 감정이 투명해서 마치 송아지 눈을 보는 것 같았다. 참 야리야리하고 상대방의 말을 귀담아듣는 아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는 수업이 없을 때면 항상 이어폰을 끼고 건물 처마 밑에 혼자 앉아서 음악을 듣곤 했다. 



완성된 공구 정리대 모습

 그는 나를 '선생님, 선생님' 하면서 매우 잘 따랐다. 그런데 조금 더 같이 지내면서 보니 이 아이는 상대방의 말을 듣기만 할 뿐 자기주장을 말하지 않았다. 살면서 한 번도 누군가에게 자기 의견을 제대로 말해 본 적이 없는 것 같았다. 자기 의견을 귀담아 들어주는 사람이 평생 한 명도 없었던 것이다. 루크만처럼 가진 게 없는 사람들은 사회에서 잘 보이지 않고 그 목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자기 말을 들어주는 사람이 없다는 것은 그저 슬프기만 하고 끝날 일이 아니다. 삶의 의욕이 점점 사그라지는 불안한 일이다.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 혹자는 사람은 정으로 산다고 했고, 혹자는 추억으로 산다 했다. 정이든 추억이든 사랑이든 그것을 쌓으려면 사람 간에 소통을 하고 서로 감정을 주고받으며 부딪혀야 한다.



 그런데 이 아이를 보면 한 번도 자신을 세상에 부딪혀서 어울리며 살아보지 못한 것 같아 보였다. 이렇게 조용하고 희미한 존재가 있을 수 있다니... 문득 루크만이 그렇게 살 수밖에 없었던 환경에 대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목공 기술을 가르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루크만에게는 자신감 있는 태도를 먼저 가르쳐 주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수업시간에 루크만에게 자꾸 질문을 했고, 나한테도 무슨 질문이든 자꾸 질문을 하라고 요청했다. 의사소통도 자꾸 해봐야 느는 법이니까. 


 둘이서 수업을 같이 한지 며칠 되지 않을 때였다. 루크만이 커터칼로 포장 박스를 자르다가 손가락을 베었다. 칼을 쓸 때는 칼날이 향하는 방향에 칼을 쥐지 않은 반대쪽 손이 와 있으면 안 된다. 어깨에 힘을 주고 칼을 잡아서 힘이 어긋나는 것을 버티는 요령을 알면 칼날의 방향을 좀 더 자유롭게 움직일 수도 있다. 하지만 조그마한 커터칼이라도 다뤄 본 요령이 없으면 쓰다가 손가락을 베이기 일쑤다. 칼에 베인 루크만의 손을 움켜잡고 사무실로 데리고 와서 소독을 하고 약을 바르고 밴드를 붙여줬다. 목공 교실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고는 선생인 내 책임이다. 목공 수업에서는 자칫하면 손이 잘릴 수도 있는 무서운 기계도 조작하기 때문에 안전 교육이 매우 중요하다. 루크만에게도 그렇게 말하면서 앞으로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각별히 조심해 달라고 타일렀다. 


루크만과 함께 만든 첫 번째 학생용 목공 작업대 


 목공 작업을 하다 보면 커터칼에 베이는 정도의 사고는 큰 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 일을 계기로 안전의 중요성에 대해서 짚고 넘어가야 다음에 더 큰 사고를 예방할 수 있을 터였다. 혹시나 모를 사고에 대응하기 위해 현지 직원들에게 인도네시아의 119나 911 같은 긴급 구조 전화번호는 몇 번이냐고 물어봤다. 아무도 몰랐다. 인도네시아에는 긴급구조가 없는 것 같았다. 누군가가 말하길 인도네시아에도 긴급구조 번호가 있기는 있는데 자기는 몇 번인지 모른다고 했다. 또 다른 직원은 구조 요청을 해도 어차피 차가 막혀서 제시간에 못 온다고 했다. 웃프지만 거의 사실이다. 자카르타에서는 119 구급차를 기다리는 것보다 오토바이 뒤에 냅다 태워서 병원으로 달리는 게 훨씬 빠르다. 다행히 3년이 지난 지금까지 사고가 나서 병원에 간 학생은 없다. 오히려 목공반의 현지 강사가 부주의로 손가락을 조금 깊게 베어 병원에 간 적은 있다. 

  

 루크만은 다친 손가락에 약을 바르고 밴드를 붙여주는 내가 고마웠나 보다. 그 날 이후 유독 나를 더 따르고 좋아하는 것이 느껴졌다. 나에게 문자를 자주 보냈는데 문자 끝에는 항상 '항상 가족이 먼저다'라는 문장을 썼다. 나는 처음에는 자기 가족을 잘 챙기자는 뜻인 줄 알았는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나를 가족으로 생각한다는 뜻이었다. 나는 그가 나를 너무 친밀하게 대하는 것이 좀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와 가까워지고 싶은 루크만의 행동은 아무도 저지할 수 없었다. 그는 내가 없는 자리에서는 나를 'Father'라고 부르며 다녔고, 모든 직원들이 나를 루크만의 대부쯤으로 여겼다. 내가 지나가면 저 쪽에서 아이들이 '저기 루크만 아빠가 지나간다'라고 말하며 시시덕거리기도 했다. 


 내가 지내는 숙소는 자카르타 시내의 작은 아파트였다. 10평 남짓한 작은 아파트였지만 단지 내에 넓은 수영장이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NGO 활동을 나와 혼자 지내기에는 충분한 곳이었다. 하루는 루크만이 우리 아파트에 수영장이 있다는 것을 알고는 수업이 없는 토요일 아침에 수영장에 놀러 오고 싶다고 했다. 나는 토요일 오전에 늦게까지 잠을 자기 때문에 같이 놀아줄 수는 없지만, 루크만이 와서 수영하는 것은 괜찮다며 승낙을 했다. 


 루크만은 정말로 토요일 아침 일찍 아파트 수영장에 찾아왔고, 금요일 밤에 술까지 한 잔 걸친 나는 그날 아침 내내 침대에 있었다. 루크만은 수영장에 온다는 문자를 분단위로 보내와서 토요일 아침잠을 설치게 만들었다. 그렇게 루크만이 알아서 수영을 잘하고 갔으리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 후로 월요일이 될 때까지 루크만과 연락이 되지 않았다. 하루에도 수십 통의 문자를 보내오던 아이가 갑자기 문자를 끊다니 별일이었다.



 알고 보니 아파트 경비원이 루크만이 외부인이라서 그를 수영장에서 쫓아내버렸단다. 그렇지 않아도 남들에게 거절당하고 상처 받는 것이 두려워서 웬만해선 말도 잘하지 않는 아이가 우리 아파트에서 수영 한 번 하려다 쫓겨나 버린 것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별 일 아닌 수영 한 번 하는 일이 이 아이에게는 얼마나 특별한 일이었을까? 나는 모른다. 얼마나 상처 받았을지 헤아릴 수는 없었지만 그만큼 막연히 미안했다. 수영 한 번 같이 하는 게 뭐 그리 어렵다고, 같이 시간을 보내며 지켜주지 못해서 너무 미안했다. 



 루크만은 나이는 16살이었지만 인지능력이나 사고능력은 초등학교 저학년 수준이었다. 한 번은 수업시간에 공간 박스를 만들었다. 박스의 크기는 40cm x 40cm 정 사각형, 박스를 만드는 나무의 두께는 2cm. 판재끼리 조립을 할 적에 안쪽에 붙는 나무는 양쪽으로 2cm씩 빼서 36cm로 재단을 해야 한다. 그래야  40cm짜리 정사각형 박스를 만들 수 있다. 그런데 루크만에게 이 것을 그림을 그려가며 아무리 설명해도 이해를 하지 못했다. 오늘 실컷 설명을 하고 내일 작업을 이어가면 40cm짜리 긴 판재와 36cm짜리 짧은 판재의 차이를 또다시 헷갈렸다. 이건 초등학교 저학년 수준의 기초 산수인데, 이걸 이해 못하면 어떻게 해야 하지? 암담했다. 통역 선생님도 자기가 대신 설명해 주려다가 포기했다. 나는 그저 박스를 반복적으로 만들면서 정 사각형이 되는 구조를 자꾸 보여줬다. 지금 와서야 드는 생각인데, 루크만은 왜 박스를 정사각형으로 만들어야 하는지 그 이유나 필요성을 알지 못했던 게 아닌가 싶다. '박스가 있으면 됐지 정사각형은 뭐고 직사각형은 또 뭐란 말인가?' 

 

학생들이 공간 박스를 만들고 있다


 가구반에 학생이 한 명, 두 명 늘어나면서 수업이 제법 자리를 잡아갔다. 그럴수록 나는 학생들에게 신경을 고루 나누어 써야 했기 때문에 루크만과는 예전처럼 많이 소통하지 못했다. 루크만은 자기를 다른 학생들과 다르게 특별하게 대해주지 않으면 나에게 섭섭해했다. 그리고 수업시간에 잘 못 해서 조금만 꾸짖어도 크게 토라져서 다음 수업 시간에 빠지곤 했다. 루크만은 너무 마음이 심약해서 남에게 꾸중을 듣는 것을 무서워했는데, 수업과 관련된 잘못을 지적해도 상처를 받고 힘들어했다. 잘 못이 있어도 바로잡아 주기가 힘든 친구였다. 루크만과 나는 구글 번역기를 활용해 문자는 보내곤 하지만 통역 선생님이 없이는 서로 대화도 어려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루크만은 아무 이유 없이 나에게 가까이 다가왔고, 그때마다 나는 주춤주춤 뒤로 한 발씩 빠지곤 했다. 어느 날 수업시간에 루크만이 같은 잘못을 반복해서 조금 크게 꾸짖었다. 그 후로 루크만은 한 동안 수업에 오지 않았고, 며칠 뒤 전공을 조리반으로 옮겼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루크만이 나를 향해 갑자기 열었던 마음을 갑자기 닫아버린 것이다. 



 말이라도 통했으면 속 깊은 대화라도 해 봤으련만, 서로 언어가 다르다는 이유로 대화 한 번 제대로 못 해보고 루크만을 보냈다. 루크만과의 모든 추억은 내가 인도네시아에 처음 왔던 2016년도에 있었던 일이다. 그 후 시간이 흘러 루크만은 직업교육 센터를 수료하고 사회로 나갔다.  





 2019년 5월 26일, 우리 NGO 현지 직원들의 그룹 채팅방에 갑작스러운 비보가 올라왔다. 루크만이 시내의 한 건물에서 뛰어내려 생을 마감했다는 것이다. 루크만에게는 연고가 없어서 예전에 머물던 우리 기관으로 연락이 온 것이다. 


 그 순하고 착한 아이가 이 험난한 세상을 버티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버리는 극단적인 결정을 했다. 내가 좀 더 보살펴주고 잘 가르쳤으면 잘 살 수도 있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타들어갔다. 내가 좀 더 그를 끌어안았다면 그의 인생이 바뀔 수도 있었을 텐데... 나는 그가 슬픔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알아봤다. 그런데 그 슬픔을 헤아려 주지는 못했다. 그의 죽음이 내 탓이고 내 잘못인 것 같아 너무 가슴이 아팠다. 아무도 루크만과 나와의 관계를 모른다. 누구에게도 자세히 말 한적 없기 때문이다. 이 갑작스러운 소식에 마음이 부서지는 소리를 들으며 혼자 속으로 신음했다.


 '루크만, 이 한 세상 평탄하게 살아가기가 그다지도 힘이 들었나 보구나. 내가 널 도와주지 못해서 정말 미안해. 내가 조금만 더 따뜻한 사람이었다면 한 번 더 손을 내밀었을 텐데. 전공을 바꾸지 말고 목공을 계속 배워보라고 붙잡을 수도 있었을 텐데. 그랬더라면, 어쩌면 네가 좀 더 인생을 수월하게 잘 살아갈 수도 있지 않았을까? 어쩌면... 어쩌면 말이야.'

 

 그는 마른 체격에 키는 제법 커서 마치 야리야리한 미루나무 같은 아이였다.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는 나무처럼 조용하고 키만 큰 아이. 미안해 루크만. 다음 세상에서는 너의 말을 귀담아듣는 좋은 사람들 사이에서 태어나 그들과 함께 어울려서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게 되길 바라. 



미안해 루크만. 


생에 마지막 순간에 아무도 너를 기억하지 못할 거라 생각했을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널 기억해. 

그리고 앞으로도 널 기억할 거야.


이제 편히 쉬렴.



 - Lukman Hakim을 추억하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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