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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목수 Jun 23. 2019

목공 교실 짓기

수작업으로 해치우는 놀라운 인도네시아 건축술

 교육을 위해서 자카르타 지방 정부 건물의 교실 한 칸을 쓸 수는 있었는데, 목공 교육을 하기에는 턱없이 좁았다. 목공 기계를 설치할 기계실과 목공 작업대를 놓고 가구 조립 등을 연습할 작업실, 그리고 학생들에게 기술을 설명할 강의 공간 등이 필요했다. 하지만 기존 교실은 목공 기계 몇 대 설치하면 꽉 찼다. 우리 NGO 프로젝트에서는 다행히 기존 교실에 덧붙여서 교실을 추가로 신축할 예산이 잡혀있었다. 현지 건설업체와 미팅을 통해 신축 교실을 어느 방향으로 어떻게 붙여지을지를 결정했다. 외국까지 와서 팔자에 없는 건축주 노릇을 하게 됐다. 옛날 건물의 교실에는 무거운 목공 기계를 설치하고, 새로 붙여 지은 볕이 좀 더 잘 드는 교실에는 목공 작업대를 놓고 수작업과 강의를 병행하는 용도로 사용하기로 용도를 정하고는 교실 신축을 시작했다.


 새 교실을 짓는 건축 현장에서 현지 목수들과 함께 나도 목공기술을 뽐내며 나름 목수 노릇을 해보려 했다. 한국에서 경량 목조주택 짓는 일도 했었기 때문에 단층 교실 한 칸쯤 올리는 일이라면 나도 한 몫할 자신 있었다. 그런데 인도네시아의 건축현장은 한국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모든 작업이 전통 방식으로 철저히 수작업으로 진행되었다. 거푸집을 만들기 위해서 손에 톱을 들고 일일이 수작업으로 합판을 자르는 것을 보고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톱다이와 대타카를 가지고 나 혼자 아침에 시작해서 점심시간 전에 끝 낼 분량의 거푸집 틀을 현지 목수 두 명이 수작업으로 3일 내내 만들었다. 그것도 땡볕이 내리쬐는 섭씨 33도의 인도네시아 풀밭에서 말이다. 정말이지 가혹한 작업 환경이었다. 기계톱을 작업 테이블 밑에 거꾸로 달아서 쓰는 현장용 간이 톱다이라도 하나 만들어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아, 그런데 기계톱도 없다는 것이 문제?!  


먼저 자를 부분을 자로 재고, 연필로 길게 일직선을 그리고 나서 연필선을 따라 슬금슬금 톱질을 한다. 하아, 정말 정겹다.


 골조를 세울 때나 문틀을 설치할 때 수직을 맞추기 위해서 레이저 레벨기가 아니라 무게추를 사용했다. 꼬질꼬질한 실에 물은 채운 물통을 감아 만든 무게추를 기둥 위쪽에 매달아서 주욱 늘어뜨린 다음, 흔들거리는 물통이 완전히 멈출 때까지 나도 같이 숨죽이고 옆에서 기다려봤다. 보는 내 속이 답답해서 터질 것 같았지만 이게 이 사람들의 방식인걸 어쩌랴? 사실 수직을 맞추는 방식으로 따지자면 무게추를 사용하는 전통적 방식이 레이저 레벨기를 사용하는 방식보다 기계상의 오류를 배제하고 더 정확히 일 할 수 있는 방식이 맞긴 하다. 다만 좀 많이 불편해서 그렇지.


수직으로 늘어뜨려진 실과 거푸집 기둥 사이의 거리를 맞춰서 벽체의 수직을 정확하게 만든다. 


 모든 못을 손망치로 때려서 박는 것부터 시작해서 인간이 기계의 도움 없이 건물을 지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약 3개월에 걸친 공사 기간 동안 내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했다. 아, 건축 공사 과정에서 기계를 사용한 장면이 있긴 했는데, 바로 시멘트를 섞는 부분이다. 이 흥미로는 시멘트 반죽 기계는 구식 경운기 모터에 연결된 커다란 반죽통이 경쾌하게 돌아가는 장관을 연출했다. 그렇게 잘 버무려진 시멘트 반죽은 조그마한 바구니에 담겨서 작업자들에 의해 한 땀 한 땀 릴레이로 옮겨졌다. 바구니가 너무 작아 보여서 불만이었는데, 생각해보니까 저만한 바구니에도 콘크리트 반죽을 가득 담으면 꽤나 무거울 터였다. 


릴레이로 전달하는 시멘트 반죽 / 오른쪽 구석에 시멘트 반죽 기계가 돌아간다 


 5월 초에 시작된 공사가 7월 말에야 끝났다. 생각보다 가구 교실을 만드는 일정이 많이 늦어졌다. 공사 기간이 라마단 기간과 겹쳐서 그런데, 이슬람 국가에서 라마단 기간인 5월과 6월은 일의 효율이 평소의 50%정도 밖에 안된다고 보면 된다. 5월은 금식 기간으로 무슬림들은 거의 한 달 내내 해가 떠있는 낮시간 동안 금식을 한다. 음식만 먹지 않는 것이 아니라 물도 마시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해가 지고나면 음식을 다시 먹는다. 일찍 자고, 해가 뜨기 전 아주 일찍 다시 일어나 아주 이른 아침을 먹으며 새로운 하루 동안의 금식을 준비한다. 물론 예외는 있다. 임산부나 환자, 또는 월경을 하는 여성들은 영양섭취가 필요함이 인정된다. 


 이 기간 동안 교실 공사 현장 작업자들도 금식을 하며 일 하느라 힘이 없어 보였다. 너무 덥고 목이 말라서 가끔 목을 축이는 모습도 볼 수 있었는데 마치 나쁜일이라도 저지르는 것 처럼 뒤에 숨어서 물을 조금씩 마셨다. 금식이 끝나는 6월 초부터는 약 2주간 연휴다. 한국으로 치면 설날과 추석을 합친것 만큼이나 긴 연휴였다. 라마단은 이슬람에서 가장 큰 명절이라 이 곳 사람들도 대부분 고향을 방문한다. 라마단 연휴에 고향에 돌아가서는 직장으로 돌아오지 않는 사람도 있고, 또 한 명이 갔다가 형제 또는 친구들과 함께 여럿이서 상경하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라마단은 자카르타 수도권의 인구 변화가 상당히 심한 기간이다. 아무튼 이들의 중요한 명절에 공사를 재촉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공사 기간이 좀 길기는 했지만 큰 사고 없이 목공 교실이 완공되었다. 


자카르타 드림센터 프로젝트 목공 교실 신축 현장 전경



 건물이 지어지는 동안 나는 목공 장비를 알아보고, 3상 전기도 35Kw 용량으로 인입해서 기계를 설치할 준비까지 마쳤다. 이제 기계를 세팅하고 연장을 정리하면서 제대로 된 작업실을 꾸밀 순서다. 자카르타 목수들이 교실 짓는 일을 마쳤으니 이제 정말 내가 나설 차례다. 자, 힘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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