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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목수 Jun 15. 2019

가구의 나라 인도네시아

목재가 풍부하고 인건비가 저렴한 인도네시아는 세계의 가구 공장과도 같다

 인도네시아는 가구의 나라다. 풍부한 목재와 저렴한 인건비를 바탕으로 온갖 종류의 가구가 쉴 새 없이 만들어진다. 세계의 가구공장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 


 인도네시아에서 빨리 자라는 나무는 한국이 나무에 비해 약 30배나 빠르게 성장한다. 나무가 자라는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한국 사람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여러 수종의 나무들 중에서 단연 눈에 띄는 나무가 있는데, 바로 Teak(티크)라는 나무다. 인도네시아어로는 Jati(쟈띠)라고 하는 이 나무에 현지 사람들은 '100년 200년'이라는 수식어를 갖다 붙인다. 100~200년이 지나도 썩지 않을 정도로 튼튼한 나무라는 것이다. 티크의 장점은 단지 내구성뿐만이 아니다. 황금빛으로 색상도 우아하고 무늬도 아름답다. 높은 밀도 덕분에 나무 표면의 촉감 또한 부드럽다. 동남아 지역에는 수상가옥이 많은데, 강바닥에 티크로 기둥을 박아서 집을 지어 올린다. 티크는 목재에 유분 함량이 높아 물에 잘 썩지 않기 때문이다. 티크 나무의 성장 속도는 한국에서는 빨리 크는 편에 속하는 포플러와 비슷하다. 하지만 나무의 천국과도 같은 인도네시아의 다른 수종의 나무들에 비하면 엄청나게 느리게 크는 편이다. 그런데 바로 이처럼 느린(?) 성장 속도 덕분에 목재의 비중이 높고 목질도 좋다. 그래서 티크는 인도네시아에서 유통되는 가구재 중에 가장 비싼 축에 속한다.  


티크 잎, 팔뚝만큼 줄기가 가는 어린 티크 잎이 내 몸통보다 더 넓다. 

 티크는 가구를 만들기에 너무 좋은 수종이라 일찍이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 대량으로 반출해갔다. 지금은 티크 원목의 무분별한 해외 반출을 인도네시아 정부차원에서 금지하고 있다. 외국에서 티크 목재를 반출해 가려면 합법적으로 벌목되고 깨끗하게 제재된 목재를 상당히 비싼 가격에 사갈 수 있다. 복잡한 서류와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하는 것은 덤이다. 그렇지 않으면 가구든 소품이든 가공된 상태의 목제품만 수출이 허용된다. 일종의 보호무역 정책인데, 자원도 보호하고 나무를 가공하는 제조 산업도 키우는 일석이조의 정책이다. 인도네시아는 300년 동안 식민지 지배를 받으며 오일, 석탄, 금은보화와 향신료까지 엄청난 자원을 서구 열강에 수탈당했다. 그래서 자국의 자원을 보호하려는 정책이 충분히 이해가 된다. 그렇지만 그 좋은 티크 원목을 한국에서 쉽게 만져보기 어렵게 만드는 정책이라 한국 목수 입장에서는 좀 아쉬운 것이 사실이다.



 티크 목재의 공식적인 내수 시장 가격은 제재목 1 큐빅(m3)에 약 250만 원 정도다. (참고로 1m3 는 약 308재) 굳이 비교하자면 한국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북미산 화이트 오크 제재목 가격과 비슷한 정도다. 그런데 중부 자바의 소도시인 즈빠라에 가서 야적장에 널브러져 있는 티크 통나무를 직접 사면 1 큐빅에 약 30만 원 정도다. 가격이 거의 10분의 1 수준으로 떨어진다! 물론 통나무 상태라서 건조가 제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에 제제 과정에서 어느 정도 손실이 발생하고, 건조 과정에서 나타나는 갈라짐 때문에 또 못쓰고 버리는 부분도 있다. 하지만 그 모든 손실을 감안해도 1 큐빅 당 250만 원과 30만 원의 차이는 엄청나게 크다. 


 거의 10배에 달하는 엄청난 가격 차이는 왜 나는 걸까? 자카르타 등 대도시의 목재상에서 구입할 수 있는 목재는 대부분 공식적으로 유통되는 우수한 품질의 목재다. 정부의 허가를 받고 벌목되어 전문화된 제재공장에서 제재와 건조까지 거쳐서 'Legal wood'라는 인증까지 받은 목재들이다. 하지만 산지의 노천에서 파는 통나무는 지천에 널려있는 나무를 동네에서 베어다 파는 것이다. 불법은 아니지만 품질은 들쭉 날쭉이다. 이렇게 인도네시아 시골 노천에서 싼 가격에 파는 티크를 현지 사람들은 'Jati Kampung'(자띠 깜풍)이라고 부른다. 'Kampung'은 인도네시아 말로 시골이라는 뜻이다. 말 그대로 '시골 티크', 참 정겨운 이름이다. 이렇게 저렴한 '자띠 깜풍'은 당연히 외국 사람에게는 접근이 어렵고, 해외 반출도 불가능하다. 나도 인도네시아에 3년 넘게 지내며 비행기를 타고 즈빠라라고 하는 지방 소도시로 날아가서 직접 부딪혀 보고 나서야 구할 수 있었다. 


티크 원목 도마 / 자띠 깜풍을 구해다가 NGO 가구 교실 졸업생들과 함께 수작업으로  만들었다.


 값싸고 우수한 목재 다음으로 인도네시아를 세계의 가구공장으로 만들어주는 또 다른 이유는 바로 저렴한 인건비다. 인도네시아에 와서 이들의 낮은 인건비를 알고는 놀랍고 미안한 마음에 별 생각이 다 들었다. 인도네시아는 수만 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나라다. 아직까지 자기들만의 언어를 쓰고 자기네 문화를 고수하는 소수민족들도 많다. 그래서 필연적으로 지방자치제도가 정착되어 있고, 각 지방마다 그 지방의 최저 임금을 지방 조례로 정하고 있다. 그 중 자카르타를 비롯한 수도권 지역은 최저임금이 가장 높은 편으로, 한 달 최저 임금이 약 30만 원이다. 중부 자바의 지방 소도시에 가면 한 달 최저임금이 약 10만 원 정도밖에 안된다. 하루 일당이 아니라, 한 달 월급이 10만 원인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이 최저임금이 그 지역 노동자 평균 임금이라고 보면 된다. Jepara(즈빠라)는 도시 전체가 가구와 관련된 일을 하는 인도네시아 제일의 가구 도시다. 즈빠라의 목공들은 꽤나 복잡한 구조의 가구도 뚝딱뚝딱 잘 만드는데, 기술자 월급도 한 달에 15만 원 정도밖에 안된단다. 숙련 목공의 하루 일당이 1만 원도 채 안 되는 것이다. 


 뛰어난 품질의 티크가 길바닥에 걷어차이는 나무의 천국에서 하루 일당 몇 천 원 밖에 안 하는 숙련 목수가 고급 원목 가구를 끊임없이 만들어낸다. 그러니 인도네시아를 세계의 가구공장이라 부를만하지 않은가? 스칸디아비안 스타일 원목 의자 하나의 원산지 가격은 약 2~3만 원 정도인데, 한국으로 가져다 팔면 약 10만 원대 후반에 팔린다. 이쯤 되면 인도네시아에서 나도 가구를 만드는 사람입네 하고 말하고 다니기가 겁난다. 내가 아무리 날고뛰어도 이 사람들보다 가구를 더 싸게 만들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사람들과 함께 더 좋은 가구를 만들어 볼 수는 있을 것이다.




 자카르타에서는 매년 국제 가구박람회가 열린다. 2016년에 처음 이 곳에 온 뒤로 4년째 가구박람회를 매년 챙겨보고 있다. 자카르타의 국제 가구 박람회에 가면 싼 가격에 놀라고, 최소 주문 수량이 한 컨테이너라서 놀라고, 퀄리티가 낮은 물건이 많아서 놀란다. 물론 전시회에 참석한 모든 회사의 제품이 싸고 퀄리티가 낮고, 최소 수량이 한 컨테이너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올드한 디자인과 싸구려 니스를 칠한 것처럼 번들거리는 마감을 보면 나는 두통이 생길 것만 같다. 


 또 한 가지 인상적이었던 점은 가구 박람회장 가구 부스에 외국인이 떡하니 앉아서 가구를 팔고 있는 회사가 상당히 많이 눈에 띄었다는 점이다. Made in Indonesia 가구가 분명한데 왜 유럽 사람이 오너일까? 종일 걸어도 다 보지 못할 만큼 넓은 박람회장을 다리가 발에 땀나도록 돌아다니며 그 이유를 생각해봤다. 


자카르타 국제 가구 박람회 2019, 가구 시장의 트렌드를 파악하고 학생들에게 여러 종류의 가구의 특징을 설명해 준다. 


 인도네시아산 가구가 가격이 저렴한 것이 분명 큰 장점이다. 그런데 나라면 가격이 싸다고 해서 제품을 함부로 한국으로 수입해가지 않을 것이다. 가격적인 메리트는 분명 있었지만 디자인이 너무 올드하고, 제품의 마감이 깨끗하지 않아 한국 시장과 맞지 않기 때문이다. 행여 가구를 한국에 가져다 판다 하더라도 낮은 품질 때문에 고객들로부터 컴플레인이 바로 들어올 것이 눈에 선하다. 가구는 가전제품과 달라서 온라인으로 사진만 보고 해외에서 사입을 시도하다가는 곤란한 상황에 처하기 딱 좋다. 그런데 외국인이 부스를 지키고 있는 코너를 가면 퀄리티에 대한 걱정이 사라졌다. 제품의 디자인도 상당히 엣지있어 보였고, 마감도 굉장히 깨끗했다.


 답은 나왔다. 나보다 먼저 인도네시아에 왔던 외국인들도 현지 가구에 대해 나와 비슷한 문제를 느꼈던 것이다. 그중 용감하고 돈 있는 사람들은 인도네시아 현지에서 가구 공장을 직접 섭외하거나 자기 공장을 새로 만들었던 것이다. 그들은 직접 컨트롤하는 공장에서 자신들이 원하는 가구를 만들었다. 디자인은 그들이 고향인 유럽 또는 미주 시장의 취향을 반영해서 고안했고, 제품의 마감 퀄리티도 해외 시장에 맞는 수준으로 관리를 했다. 이 같은 시각을 가지고 박람회장을 돌아다녔더니 이제는 외국인이 앉아 있는 가구회사와 인도네시아 토속 가구 회사의 차이점이 한 층 더 뚜렷하게 보였다. 문제는 이처럼 품질이 좋아 보이는 외국 오너의 가구는 상품 개발과 생산 관리가 꼼꼼히 이루어진 만큼 그 가격이 비싸다는 점이다. 역시, 세상에 공짜는 없다.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가구의 나라 인도네시아에서 가구를 가르치는 외국인이다. 


 그리고 내가 가르친 학생들과 함께 세상에서 가장 멋진 원목 가구를 만들 꿈을 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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